잊혀지는 것, 기억해 주는 것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시작

by 혁이아빠

슬의생 시즌2가 시작되었다. 병원에 갈 일이 자주 없었던 시기에 아내와 편안하게 봤던 시즌1은 상대에 대한 속 깊은 배려와 애잔한 사연, 유쾌한 우정을 버무린 요리가 맞춤한 음악에 포장되어 제공되는 드라마였다. 같은 기대를 갖고 소파에 몸을 맡겼다.


아차 싶었다. 병원에 자주 갈 일이 없던 시기, 웃으며 즐겼던 시즌1이 지나고 시즌2가 준비되는 동안 내가 꽤나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다는 것을 잊었다. 수술 후 공불기를 열심히 하지 않는 환자가 혼나는 장면에 내가 오버랩되었다. 간쓸개 내주고 깨어나자마자 억지 숨을 몰아쉬며 공을 불었지, 폐가 잘 펴지길 염원하며. 하지만 곧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 공을 불어본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나만 비련의 주인공이 아님을 알기에.


드라마에서 관심이 가는 건 은근하고 우직하게 오가는 사랑의 작대기보다 환자들의 사연과 의료진의 마음 씀이었다. 현실에서는 이런 장면 연출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굳이 3차 병원까지 와서 사활을 걸고 진료받는 환자의 중압감, 의료진이 그 무게를 잘 알고 있다는 공감의 뜻을 5분 안에 다 전하기는 어려운 노릇일 게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전하지 못한 의료진의 속내가 저런 걸까 하고 상상해본다. 어쨌든 의료진을 신뢰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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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마지막에는 소아병동에서 평생을 보내다 하늘로 간 연우의 어머니가 자꾸 병원을 찾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처음엔 의료진들이 의심한다. 연우 치료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증거를 모으는 것 아닌가 싶어. 하지만 사실 연우 어머니는 연우를 기억하려 병동에 자주 온 것이었다. 병원에서만 생을 보낸 연우. 밖에서는 그를 기억해 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없다. 드라마에선 그 짧은 생애 중 3년을 병동에서만 산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붉어졌다. 3년이 아닌 2주뿐이라 감히 공감을 표할 처지도 못 되지만, 수술 전후 병상에 누워 가장 두려웠던 건 죽음의 공포였다. 그 공포 안에는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잊혀지는 삶에 대한 격한 섭섭함도 섞여 있었다. 가족들은 잊으라지만 연우를 쉽게 보내고 싶지 않다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지금도 병원을 배회한다는 어머니의 실토에 탄식이 나왔다. 나도 실은 잊히는 게 너무 두려웠나봐.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아주 보통의 삶에도 잊히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그 보통의 삶 중 기억해 줄 누군가가 없거나 극히 소수일 삶들.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모든 버킷 리스트를 항암 이후로 미루고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그중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비록 연기였지만 그 기억해 주려는 진심의 몸짓을 알려준 연우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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