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은 이미 붉은색의 향연이었다. 핑크빛을 주문한 아내의 안목이 빛났다. 들뜬 마음으로 카네이션을 건네받고 나니 다발이 좀 작아 보인다. 좀 더 크게 주문할걸.
아마 기분탓이리라. 꽃을 받을 분들께 받은 사랑이 커서 이 작은 다발로 존경의 마음이 전달될까 싶어 아쉬운 것일게다.
사랑하는 아내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장인어른, 장모님.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사시면서도 딸에게 바르고 고운 심성을 심어주셨다. 그 덕을 이 못난 사위가 보고 있다. 감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은퇴하신 후에도 손자 돌보시느라 가뜩이나 짧은 하루가 더 짧았으리라. 무거웠던 책임 내려놓고 자유를 만끽하셔야 할 계절에 아픈 사위의 짐을 나누어지시느라 마음은 더 무거우셨을 것이다.
틈틈이 블로그를 쓰며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말씀은 올렸었는데, 그동안 보여드리진 못했었다. 가까이 계시기에, 내 삶의 소소한 일화들을 생중계로 보고 계시기에 정작 블로그를 보여드리기 부끄러웠던 것 같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두 분께 블로그를 보여드렸다. 그러니 오늘의 일기가 공개 감사편지쯤 되는 셈이다. 사소한 일로는 한바닥을 쉽게 써 내려가지만, 이렇게 가까운 가족에게 쓸 말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법이다. 가끔 감사를 표할 계기에 드리곤 했던 손 편지에 쓴 괴발개발 글씨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유도 같다.
하루하루를 보낸 사위의 기록이 힘든 시기 가장 많이 응원해 주신 두 분께 위로가 되길 감히 소망해 본다.
병을 알게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안긴 것은 아버님, 어머님의 품이었다. 절망하고 좌절하여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내가 병원으로 가기까지 모든 절차 하나하나를 아버님이 이끄셨다. 수술, 그리고 항암의 모든 과정에서 두 분의 자문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가족이자, 동시에 의료진이셨기에 난 온전히 나를 내맡길 수 있었다.
희망 비슷한 분위기나 냄새만 풍겨도 냉소하던 나를 대신해 건강한 미래를 꿈꾸시고 말씀해 주셨다. 물려주신 깊은 신앙의 유산 덕에 아내도, 나도 멀리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의 도움과 지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분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계보의 일원이어서 기쁘고 영광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좀 유별나게 티 나게 인사드리고 싶다.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20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