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아빠 May 18. 2022

왜 하필 나였을까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9


1년 전 발병부터 수술까지. 벌써 희미해지는 기억을 대신하기 위한 기록



2월 27일, 주말에 입원했다. 주말이라 한산한 편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6인실은 언제 자리가 날지 모른다는 상황 설명을 듣고 2인실을 택했다. 수술 예정일은 이런저런 검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마음을 최대한 비우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암에만 집중하겠다고 다짐하며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진단 후 입원실에 오기까지, 불과 1주일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겪어낸 감정의 변화와 강도는 나의 경험이라 할 만한 것들 중 가장 밀도 있었다. 일찍 죽을 운명이라면 차라리 암보다 사고사가 낫지 싶었다. 이렇게 감정과 끝없이 싸우지 않아도 되고, 죽음의 탓을 내가 아닌 불운에 철저하게 돌릴 수 있을 터였다.


불운을 탓할 수 없으면 나를 탓해야 하거늘, 나는 비겁하게 화살을 신에게 돌렸다. 겉으로는 신의 뜻이 있을 것라고 믿는다며, 진지하고 성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부탁했다.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기에 허락된 것 아니겠냐며 그저 맞설 용기를 달라고. 그 와중에 가증스럽게 연기라니. 난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성실한 신앙인이어야 했던 것이다.


내면은 사실 따져 묻고 있었다. 왜 하필 나의 몸에 암의 스위치를 켜셨느냐고, 벌써. 내 동년배들 중 나보다 더 불성실하게 살아온 수많은 이들이 있을 터인데. 더 무책임하고 뻔뻔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은 책임도 느끼지 못하기에 죄의식도 수치심도 없이 잘만 살아가는데, 나름 평균적인 수준 이상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온 나에게 왜! 왜! 왜! 하필 그 암이라는 그림자를 먼저 드리운 것인가. 신은 이렇게 랜덤한가. 모질기도 하지. 그것도 개중 어렵다는 담도암을. 무려 최초입디다. 내가 직접 아는 또래 친구들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은.


이기지 못할 시련은 주지 않으신다더니, 그런 신앙의 금언은 이제 보니 가스라이팅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인생에 주어지는 시련의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가도 어떻게든 도망치지 말고 버티도록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런 헛소리 믿지 말고 진즉 도망쳤어야 했는데. 꾹꾹 눌러가며 참아내고 견뎌낸 결과를 봐라, 이렇게 나이 40에 벌써 암으로 무너져 내려버리지 않았나.


내가 스트레스를 잘 받는 타입이라 그리 된 것 같다고?그래, 책임감이나 도덕의식, 그리고 죄의식이 남들보다 유난스러워서 스스로를 가혹하게 밀어붙인 탓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유난한 성격이야말로 신앙 탓이다. 교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이웃을 향한 희생과 헌신의 황금룰을 어릴 적부터 주입하고 내면화시키지 않았냐 말이다. 결국 배운 대로 그렇게 살진 못했지만 매번 죄의식은 느꼈지. 그게 쌓였겠지. 분노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몇 번이고 속으로 따져 물었다.


신은 말이 없었다. 이게 잘못이다 저게 섭섭하다 따져 묻는 나의 말을 묵묵부답 듣기만 하던 아내처럼. 아내와의 말다툼이야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내 투정은 곧 식었고, 내가 늘 먼저 머쓱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대답 없는 신의 뜻을 스스로 알아차리기까지 차분히 묵상할 시간이 없었다. 초조하고 어찌할 바 몰라 펄쩍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 그 불안한 시간을 건너갈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8. 뒤늦게 깨달은 슬픈 내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