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아빠 May 21. 2022

일단 싸워보자. 늘 그랬듯이

간 쓸개 다 내주다. 간내담도암 발견부터 수술까지 #10

1년 전 발병부터 수술까지. 벌써 희미해지는 기억을 대신하기 위한 기록


일단 손에 잡히는 것은 암과 싸워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초조함을 불쏘시개로 암과 싸워야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보이는 적과의 전쟁을 선포해야만 내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짐짓 괜찮은 척하며 투사처럼 굴었다. 두 번, 세 번 연거푸 찾아온 암을 이겨냈거나 4기암과 더불어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불사신들의 신화를 읽으며, 나도 이 명예의 전당에 곧 오를 것이라 공언했다.

나중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나는 매사 그런 식이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성년으로 건너올 때 진즉 풀고 왔어야 할 문제집을 아직도 풀면서, 존재의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나는 일을 만들고 그것과 싸웠다. 가만히 존재의 기쁨을 누리며 안식해도 되는 그 시간에.

마치 직장에서 업무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당시의 나를 옆에서 바라보던 아내의 말이다. 포털사이트에 간내담도암을 입력하고 카페며 블로그에 보이는 정보들을 두서없이 탐식했고, 궁금한 것들을 시도 때도 없이 아내와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교수님의 회진 때마다 물어볼 것들을 빼곡하게 적어두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 그 일마저 아내에게 떠넘겼다. 쏟아지는 정보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인터넷에서 담도암 사례를 찾아보면 긴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보호자들의 아우성이 넘쳐났는데, 곧 내 얘기가 될 것만 같았다. 환자 본인의 체험은 드물게 있었지만, 좋지 못한 예후에 눈물이 가득 차올라 마음을 잡기 어려웠다.

아내에게 부탁한 이유는 또 있었다. 내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이 간절해지는 만큼 판단력도 함께 흐려졌다. 그럴싸한 단호한 표현들에 귀가 솔깃해졌다. 의료진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시작했고, 수술을 앞둔 상태에서도 다른 치료방법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다. 더 나아가면 갈피를 잡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휴대폰을 줘버렸다. 검색부터 문자 답장까지 모두 아내에게 위탁했다.

후일담이지만 아내는 당시 부탁하던 내 모습도 일터에서 팀원 대하는 자세였다고 회상했다. 담도암에 대한 치료 정보부터 식이요법까지 생각나는 대로 검색해 보라 부탁하면서 책 인터넷 의료진의 자문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라고 가지가지 요구했다고 한다. 회진 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첩에 메모하라고 아내에게 핀잔준 것도 아내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그 정도였으니 나와 일하던 사람들의 기분은 오죽했겠는가.

암 치병은 마라톤이라던데, 수술을 앞둔 그 엿새마저도 난 단거리처럼 뛰고는 가쁜 숨을 그렇게 몰아쉬고 있었다. 그동안 내 삶 매일매일도 그렇게 호들갑으로 채워지고 있었던 것을 그땐 몰랐다. 당장 결과를 내놓으라는 불호령에 익숙해진 내 몸은 지구력을 몰랐고, 받았던 사랑만큼 내리사랑으로 주위 사람들을 들들 볶았다. 아드레날린만 발사하며 버텨온 시간 동안 어찌어찌 순발력을 내며 버티던 근육들도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하필 나였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