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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다 Mar 01. 2021

달나라도 가지만 우산은 필요해

길 위에서 떠오른 생각

 나는 비가 싫다. 집이나 카페 같은 안전한 공간에서 노래를 들으며 창밖으로 보는 비 내리는 장면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싫다.


 우선 편하게 걸어 다닐 수가 없다. 신발과 바지 밑단이 젖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는 얼굴까지 미스트를 뿌린 것처럼 비가 들이친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비 오는 날은 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기는 날이다. 그리고 괜히 기분이 멜랑꼴리 해진다. 왜 영국인들이 우울증을 많이 앓는지 알 것 같다. 난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이 필요하다. 꼭 들고 다녀야 하는 우산은 또 어떠한가. 일단 한 손은 고정적으로 쓸 수가 없다. 짐이라도 많은 날엔 비에 젖을세라 가방을 몸에 바짝 붙이고 종종걸음으로 다녀야 한다. 비가 그치면 그치는 대로 또 우산은 번거롭게 챙겨야 하는 소지품이 된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우산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비와 원수라도 진 것처럼 싫어하는 내가 비 소식을 듣거나 비가 오는 날에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화성도 가는 시대에 왜 아직도 우린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는 거야?'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100세까지 살고, 자동차는 주인도 없이 혼자 잘 굴러가는데 왜 우린 여전히 비가 오면 우산에 의지해야 하는 걸까. 버튼 한 번 누르면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막이 생겨서 비를 튕겨낸다거나 걸리적거리는 우비 대신에 방수 재질의 아주 투명한 모자와 망토로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비도 막을 수 있다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문과생의 허무맹랑한 꿈인가 싶기도 하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꽤 많은 비가 내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리는 비에 온갖 불만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이미 양말까지 젖어 축축한 발의 촉감과 함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 실내에서 보는 비는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하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지긋하신 노부부가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손을 꼬옥 잡은 채 지나간다. 우산 끝에 삐져나온 할아버지의 어깨가 비에 젖어 진하게 물들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산이 꼭 비를 피하는 기능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우산 속에 맞닿은 어깨가, 둘만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공기가, 함께 발을 맞추며 내딛는 걸음걸음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요즘 사람들은 회사 점심시간에 소개팅을 한다며? 정말 계산적이고 정이 없어~'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앞으로 더 만나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에 누군가 했던 말이다. 서로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짝을 찾겠다는 하나의 목적에만 충실하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발전한다. 정성스럽게 손으로 편지를 쓰고, 필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고 사진이 인화될 때까지 두근거리며 기다렸던 그런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울고 웃고, 레트로 열풍이 부는 것은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너무 당연했던, 그래서 그 가치를 몰랐던.

 우산도 그렇지 않을까? 버튼 하나로 비를 피하는 것도 좋지만 내리는 빗방울만큼 우산 속에 담긴 추억도 계속 쌓이니까 말이다.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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