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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Jul 17. 2024

18. 또 그와중에 일본어말하기SJPT 4급 맞은 썰

어설픈 재주 하나 쯤은 빨리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 백수의 시간은 차고 넘쳐난다. 나는 살면서 가장 여유가 넘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아주 많은 시간부자였다. 토익스피킹 공부와 더불어 SJPT, 일본어말하기 시험까지 준비하기 이르렀다. 

나는 어렸을 때 일본의 아무로나미에를 좋아했었기에 그녀의 노래를 지금까지도 자주 듣는다. 또한 차케앤아스카와 튜브 등 일본의 락 뮤지션들의 음악도 즐겨 듣곤했다. 9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나는 다양한 일본 애니매이션에 빠져있기도 했다. 이렇듯 활자보다는 음성으로 접하는 일본어가 익숙했다. 


그래서 어설프게나마 일본어 기초 교재를 사들고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다시 공부하고 단어를 외웠다. 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레 그 나라의 언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웃긴게 나는 몇 년동안 그 기초책만 붙들고 공부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흉내를 내고 일드에 나오는 대사 같은거 외워서 친구에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초반 몇 번은 웃으면서 잘 받아주던 친구는 한 번은 나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너는 맨날 공부하는 거 같은데, 도대체 뭘 하는거야?"


20대 중반. 여름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거한 팩폭을 날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또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 도대체 난 뭘하는걸까? 맨날 공부한답시고 진도도 안나가는 일본어 기초책만 몇 년씩 붙들고 있고'


나는 친구의 말에 스스로 부끄러워져서 일본어 기초책을 집어 던지고 본격적으로 일본어 수업을 들으려 어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웬걸. 한자가 만만치 않았다. 활자와 관련된 것은 뭐든지 자신있어하던 나였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한자에 질려버려 그만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일본어 공부 안 해! 못 해!"


나는 두 달만에 어학원을 뛰쳐나왔다. 매일 열심히 보던 드라마 '심야식당'도 끊어버렸다. 


그 뒤로는 일본어 공부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살았다. 

.

.

.


그렇게 십여 년이 흘러 나는 그 유명한 저출산의 장본인이자, n포세대, 망한 40대가 되버렸지만 시간부자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많다보니 집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여유도 많아졌다. 어느날 오랫만에 들려오는 차게앤아스카의 'say yes'의 부드러운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어....엇. 들리는데? 어! 들려!"


그렇다. 짬바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한 때 해본 덕질의 짬바란. 

어렸을적 일드와 JP0P을 음성으로 접하면서 익힌 일본어의 짬바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일꺼라고 왠지 나는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시류가 변하면서 일본어말하기 시험 SJPT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내가 20대때 만해도 일본어시험이라고 한다면 JPT나JLPT였다. 이제 SJPT도 각종 기업에서 인정해줄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시험이 되었다니. 왠지 가능성이 스물스물 엿보기이기 시작했다. 


'그래 일본어말하기 시험이라면 그 복잡한 한자를 외우지 않아도 되잖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SJPT실용서 한 권을 구입했다. 

앞서 영어공부를 하면서 김삿갓형 공부의 실패를 맛본나는 깔쌈하게 책 한 권만 파기로 했다. 

어차피 고득점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많은 나는 이 책 한 권을 총 3번을 반복해서 돌려보면서 공부하기 이르렀다. 계속해서 파다보니 시험유형이 보였다. 깔끔하게 경어는 포기했다. 경어는 포기했으면서 은근히 5급정도를 기대했다. 5급이면 일상일본어를 꽤 한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사실 욕심을 부렸었다. 


결과는 4급. 


괜찮다. 나쁘지 않았다. 취미로 귀로 들어가며 즐겁게 공부한거 치고는 좋은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SJPT교재로 문제유형을 익혀가며 한 달 넘게 공부하면서는 힘들었었다. 공부는 힘들게 해야 결과가 나오는게 맞는 거 같다. 20년간 일본어를 미디어를 통해 귀로들은 짬바 + 1달 동안 빡세게 교재 3번 반복한 결과, 나름 만족할만 성과였다고 본다. 


사실 공부를 더 해서 5급을 따볼까 생각도 했다. 4급과 5급 차이의 대우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끝에 나는 일본어를 여기서 놓아주기로 했다. 

어설픈 재주 하나 쯤은 빨리 포기하는 것도 결단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일본어와 관련해서 커리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앞으로의 생존을 위한 기로에 서있었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내가 지금 시간이 많은 것 같아도 이 시간이 영원할 것도 아니기에. 


이 정도면 취미라고 했어도 생산성있는, 괜찮은 취미아니었나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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