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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Jul 18. 2024

19. 이미 놓쳐버린 과거의 인연들로 가득한 방

후회와 죄책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다.

어느덧 일을 그만두고 쉰 것이 벌써 3여년이 되어갔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알바든, 직장이든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긴 휴식같은 시간이었다. 허나 쉼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함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들이 어느새 버겁게만 느껴졌다. 더 이상 자유의 시간이 아닌 무겁고 견디기 힘든 시간들로 변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밤에 잠이 안 오기 시작했다.


밤마다 긴 적막과 싸워야만 했다. 잠이 오질 않는 밤에는 늘 나의 과거 인연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아마도 내가 온전히 혼자인 상태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내 기억에서 어느새 잊고 있었던 청소년기 단짝친구, 사랑했던 연인, 청춘시절 남사친, 매일같이 술을 마셨던 광고회사 동료들, 신문사의 동료기자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난 어린 동생들, 의류매장에서 함께 일했던 중년의 언니들......나를 스쳐갔던 모든 인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 지금 내곁엔 아무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됐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인 걸까.

어쩌면 자유를 위해 외로움을 선택나의 전적인 결단이었는지.  


바쁘게 생계에 치여 살 때에는 내가 손해본 것만 떠올라서 항상 사람에 대해 화가 나있었는데...적막한 공간에서 넘쳐나는 시간 속에 생각해보니 내가 미숙하고 간절하지 않아서 놓친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그렇게 까지 화를 낼 필요가 없었는데'

'그 때 그 아이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더라면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졌을텐데'

'그 때 말조심을 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버텼더라면 더 끈끈한 인연이 됐을텐데'

'나를 따라줬던 동생들에게 조금 더 우직한 태도로, 감정기복 없이 지켜줬었어야 했는데'

'왜 그 남자의 마음을 애써 모른척 했을까? 그의 진심을 조금 더 들여다볼 노력을 했었어야 했는데'

'유명 기업에 취직한 친구가 부럽고 삶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아서 멀리했는데...'


이렇게 후회와 아쉬움만이 남는 기억 속에서 몇날 몇일을 헤메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고 혼내다가도,


"지금 알았던 것을 그 때도 알았다면 과연 그게 또 젊음이고 청춘이었을까? 청춘이고 젊었기에 미숙했겠지"


괜찮다고 다독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마음이 변덕을 부렸다.

.

.

.


'아니야 조금만 더....'

'내가 어리석었어. 내가 더....노력했더라면'



이렇게 지난 인연에 대한 후회와 미련으로 내 머릿속이 온통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고 자각한 것이다.

딱히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 기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 인연들의 어두운 기억들로 가득한 내 작은 방을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문뜩 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낸 듯 보였다. 길어진 백수생활에 '다 거기서 거기', '나가면 돈 든다'라는 생각으로 어느새 작은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지러운 기억들 속 무게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벗어나야 했다. 더 어두운 심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안하지만 값비싼 질 좋은 트레이닝 한 벌을 갖춰 입었다(의류매장에서 일할 때 직원할인가로 구입한...) 그리고 큰 백팩을 단단히 챙겨 멨다.


내가 향하는 곳이 근사한 해외 여행지면 좋으련만. 나같은 장기백수에게는 사치였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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