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못했습니다.
안산 둘레길은 걷기 좋은 데크길이 나무 그늘 아래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통통거리는 소리에 발맞춰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높고 파랬다. 산 중턱을 걷는 기분이 좋았다. 서울 한복판이 한 눈에 보였다. 나는 갈증이 일어나자 작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마셨다.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서대문구의 아파트와 빌딩들을 바라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뒷동산만 올라와도 자연앞에 나란 존재가 이렇게 작은데, 아둥바둥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살아 가는걸까?"
"저렇게 집이 많은데 내 집은 하나도 없고! "
"저렇게 빌딩이 많고 건물이 많은데 내가 일할 곳은 하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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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더 심각한 생각이 일어났다.
"하기사. 세상의 반이 남자인데...이 나이에도 나랑 잘 맞는 짝 하나 못 찾았잖아"
낯선 숲길을 걸어서 기분전환이 되는 거 같아 좋았는데.....
이렇게 문뜩 나는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 중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숨이 절로 났다.
나는 가방에서 프링글스 작은 통 하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땀을 꽤 흘려서 그런지 프링글스의 '단짠단짠'한 맛에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 했다.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쉬운일이라......"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
내가 쉽다고 시건방을 떨고 노오력을 안 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훗. 역시 나도 괜히 나이를 먹은 건 아닌가 보다"
또 나의 '철듦'에 뿌듯해 하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암튼 웃겼다.
시간이 많으니 생각도 '이랬다저랬다' 왔다갔다한다. 백수의 특권아니겠는가.
나는 산 아래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집을 사야겠다"
"최신 커피머신이 필요하다"
"전자책을 새로 구입하고 싶다"
"이제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야 겠다"
"이제는 '남들과 달라'가 아니라, '남들 처럼만' 살고 싶다.
"이제는 직업을 가져야겠어. 천천히 갖자. 서두르지 말고"
"무엇을 할까? 카페는 어때? 자본이 없어. 어 그럼 못해!"
이런 의식의 흐름이 잊고 살았던
25년 전 컨츄리 꼬꼬의 '일심'의 노랫말까지 떠올리게 했고
30년전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대사까지 생각나게 했다.
방황하던 주인공 '마크렌턴'이 방황하던 지난날과 안녕을 하면서 말한다.
"이제부터 당신처럼 살 것이다"
"직업, 가족, 대형TV, 컴팩트디스크플레이어, 건강, 낮은 콜레스테롤, 내집마련, 보험 등을 획득할 것이다"
평생 제 멋대로, 자기 방식대로만 살 것 같던 고집불통 청춘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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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모를 다짐과 함께 '새출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결론이었다.
이제는 돈을 벌자고.
글쓴답 시고 나이 40먹어 누군가에게 생계를 기댄다면 그 것 또한 모양빠지는 일은 없겠지.
이제 나 한 몸뚱이는 챙겨가면서, 남들한테 경제적으로 민폐는 끼지지 말면서 글을 쓰자고 말이다.
살랑거리는 늦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나뭇가지는 청량 그 자체 였다.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 시내는 내 선망의 대상처럼 느껴졌다.
그날 자연과 하나 된 내가 결론을 내린 것은 결국 이거였다.
"이제...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