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같은 숲은 없다.
나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고민했다. 이 버스만 타고 쭉 타고 가버리면 강남역인데. 오랫만에 강남 교보문고에 들려 시간을 떼울까 싶었다. 근처 지하상가에서 예쁜 옷 구경도 하고 화장품도 구입하는 등 쇼핑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주머니 사정이 쇼핑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빠르게 포기했다.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 아 이래서 여행은 필요한 거구나!'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내고 싶었다. 항상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생각 속에 갖혀 지냈으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내가 존재하는 장소를 바꿔주면, 낯선 장소로 간다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아직 어디로 갈지 몰라서 괜히 카페 근처를 왔다갔다 하면서 고민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더운날씨에 카페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멀뚱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하...오랫만에 나왔는데 어딜가지?"
나는 내 뒷통수를 카페 소파 등받이에 딱 붙여놓고 한 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번뜩 한 장소가 떠올랐다.
"안...안산갈까?"
내가 말하는 안산은 경기도 안산이 아니라 서울 서대문구의 안산이다. 안산자락길은 박해일이 산책코스로 좋아하는 장소라고 했다. 영화 '한산'과 '헤어질결심'으로 한창 제2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박해일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말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한다는 그 숲길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도저히 안산밖에 떠오르지 않아. 딱히 갈 곳도 없는데 그 곳으로 가자"
나는 스마트폰으로 '안산자락길'을 검색하고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낸 후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경기도 인근에 위치한 우리집에서 서대문형무소 근처에 있는 '독립문역'은 생각보다 꽤 먼거리에 위치했다. 뭐 차를 타고 간다면 금방 갈 수도 있겠지만, 지하철을 타고서는 2번이나 갈아타서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솔직히 나는 자연경관이 좋다는 '녹지'나 '숲'을 보러 서울이나 타 도시까지 갈 생각을 애초에 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서울은 대형서점이나 쇼핑을 하러가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아파트단지는 경기도립공원이 있는 산 밑에 위치한 도시였고, 녹지로 가득한 숲과 산책길이 근처에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도 산 바로 밑에 있어서 점심시간이나 야자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산 밑 계속으로 놀러갔던 기억이 가득했다.
그래서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좋은 경치를 본다고 뭐하러 서울까지가? 멀리 갈 필요가 뭐 있어? 집근처가 다 숲이고 산책길인데. 게다가 호수도 3개씩이나 있고"
그렇다. 차로 30분 내로 달리면 둘레길로 유명한 큰 호수가 3개나 있었다.
이렇듯 타 도시에 있다던 유명한 숲길이나 녹지공간에 대해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시간 동안 작은 내 방구석에 쳐박혀 무거운 생각에 짓눌렸던 나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공간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낯선 곳에 내 몸뚱아리를 갖다 놓아야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가자! 가보자"
나는 그렇게 지하철에 몸을 실고 독립문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가는 길은 지루하고 멀었다. 게으르게 방구석에 쳐박혀 있었으니 그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점점 피곤함을 느낀 나는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숲이 다 똑같지. 나무있고 땅있고 하늘있고. 괜한 길 떠나는거 아닌가?"
나는 어느새 독립문역 앞에 도착했다. 나름 오랫만에 바깥 나들이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날은 좀 더웠지만 화창한 날씨어서 더욱 좋았다.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 2병과 소세지와 감자칩 하나를 구입해 내 백팩에 넣었다.
안산자락길 한 바퀴를 도는 데 7km라고 하니 든든하게 먹을 간식거리가 필요했다.
확실히 서대문구 안산은 나에게 낯선 곳이었다. 동네도 풍경도 새로웠다.
집 근처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낯선 숲......
비행기를 타야만, 기차를 타야만 낯선 숲을 만날 수 있는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서대문형무소 뒷 길의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안산자락길 초입구에 도착했고 내 앞에 길게 늘어진 데크길에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살랑이는 바람에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있었고 쾌청한 파란하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고 있던 오래된, 묵은 생각들은 점점 사라져갔다.내 오래된 인연들에 대한 기억 또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 낯선 숲 앞에서는 오로지 '나'라는 존재 하나만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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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길 잘 했어. 우리 동네랑 완전 다르잖아. 그래 하늘아래 같은 숲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