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이게 내 인생인걸
카페에 앉아 5가지 목표를 생각해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후드티에 낡은 청바지를 챙겨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돌았다. 여전한 백수의 하루였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늦여름의 날씨 탓에 중간에 카페 들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평소 힙한 인테리어로 주말에 들르면 앉을 자리도 없는 카페였지만, 평일인지라 한가했다.
역시 평일 날 한가한 카페에 앉아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은 고된 노동 후 보상코자 먹는 비싼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훨씬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이것도 잠깐동안 느끼는 사치이지, 시간이 흐르고 통장잔고가 비어간다면 불안의 사치가 될 것이다.
나는 내 스마트폰을 열어보았다. 카톡에 저장된 사람들 300여명. 10여년 전 지역신문 기자였을 때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었다.
그러나 연락하는 사람들 0. 연락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불구하고 불안한 느낌은 없다.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다.
나는 다 마셔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안의 얼음을 '찰랑찰랑' 빨대로 저어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술을 배워야 하나? 다시 회사로? 알바라도 시작해야 하나?"
내가 경험한 현실은 드라마와 인터넷커뮤니티와는 확실히 달랐다.
40대 미혼의 이력서를 좋아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이먹어 학벌은 무용지물같았다. 나름 서울 근처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 가까운 곳의 일자리는 안정적인 자리보다는 일용직이 많았다. 왜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사람들이 서울에 살려고 하는지도 알 것 같다.
"창업해야 하나?"
유튜브를 검색해서 여러 사람들의 창업 브이로그를 찾아보았다. 생각 의외로 이런 사장님들이 많았다.
"돈을 더 벌려고 한게 아니라 더 이상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먹고, 살려고 창업했다"
그렇게 뭐든지 세상 일은 힘들다. 쉬운 일은 없다.
특히 나같은 사람은 뭐 하나 꾸준히를 못하는 것 같아서 그 자괴감이 더욱 컸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른채 섵불리 사업같은거 하는거 아닌 것 같았다.
'쨍그랑'
남은 얼음이 녹으며 아랫 칸으로 주저 앉았다.
"휴"
나는 한 숨밖에 안 나왔다.
"이제 어떻게 살지? 어떻게 생존하지?"
나이가 먹으니 어떻게 사느냐와 어떻게 생존하냐의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같았다.
내 직업 = 내 인생을 동일 시 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은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기로 했으니 나에게는 목표가 필요했다.
목적없이 살다가 10년 후에도 이도저도 아닌 삶, 생계가 힘든 삶을 살고 있다면 더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가방에서 낡은 노트와 펜을 꺼내서 다섯 가지 목표를 생각해보았다.
1. 50살까지 꾸준히 경제활동 하기(한 직업을 꾸준히 유지할 자신은 없으나, 꾸준히 일을 할 자신은 있다)
2. 책 5권 이상 출판하기
3. 내 집 마련하기
4.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온라인SNS채널 운영(브런치 포함)
5.꾸준한 운동과 멘탈 관리
10년 후에는 이 다섯가지를 모두 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나도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벼락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같은 내 인생. 이름 모를 들꽃이 하루아침에 화려한 빨간장미로 변신은 불가하겠지만, 내게 남겨진 주어진 인생을 스스로 창조하며 살아가야겠다.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기준으로 봤을 때는 망한 인생이 맞다.
특출나지 않은 미모와 재능. 비자발적 비혼에 무자녀. 무주택. 스스로 인맥도 싸악~ 정리해서 없음. 성공하는 법 모르고 야망없음.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 별거 없다고. 그건 망한것도 아니라고. '망했다'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거라고.
사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내가 걸어온 지난 과거도 부정하지도 치켜세우지도 못하겠지만 내 앞에 펼쳐진 앞으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앞으로 실패도 좌절도 꾸준히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살아가야 겠지.
이게. 내 인생인걸.
40살 백수 여자. 여름날의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눈 앞에 두고 희망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