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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부터 길을 곧 잘 잃어버렸다.
특히 영화관이나
지하철 환승역 같은 곳은 취약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많은곳은 유독 더 싫었다.
너는 그런 나를 잘 알았고.
어느샌가 나타나 길을 잃고 멍해져있는
내 손을 잡고 안심시켰다.
이리와. 이 쪽으로 가면 되는거야.
너는 내 나침반이었다.
너의 손만 잡으면
나는 어디든 안심하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너는 지금은 아무런 말이없다.
이렇게 길을 헤메여도,
내가 자리에 우두커니 서도.
너는 아무런 말도 없다.
푸른 잔디밭도
가슴을 시리게했던 그 날의 겨울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함께'였으면 지금 까지도
같은 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스무해 초.
겨우겨우 뛰어서 잡아 타던 508번 마지막 버스도. 한시간 기대서 꾸벅꾸벅 졸다 도착한 우리집도.
발이 너무 아파 구두를 벗고 발등위를 걷던 시간도
아침 일찍 분주했었다.
이상하게 조바심나고 바쁜날이었다.
차가운 겨울이었고.
크리스마스가 지났어도 한창 들뜬 기분이었다.
그 들뜬 기분의 그 해 겨울.
그 겨울은 언제나 나에게 반복된다.
그 겨울 중 그 하루.
꽃같던 나이의 너는 눈처럼 사라졌다.
창틀에 걸터 앉아 함께 듣던 노래도,
뒤돌면 항상 쳐다보던 눈도.
새벽녘 몰래 나와 함께걷던 공원도
정말 흔적없이 사라졌다.
조각이 흩어지고 기억이 깊어지고
목소리가 진해지고 미소가 옅어진다.
너와 함께한 나날들이 사라졌다.
어머님은 매해의 너와 나의 생일에
정성이 가득한 선물을 보내주신다.
한 구절이 적힌 편지와 함께.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언젠간 만날 수 있을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