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스위스 #14] 하이킹, 체르마트

by 람곰

[체르마트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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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스위스는 사실 여행 비수기라는 것을 처음 알게됐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싶지만, 사실 한여름처럼 눈이 녹아 하이킹을 즐길 수도 없고, 한겨울처럼 겨울 스포츠와 끝없는 설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하이킹이었다. 알프스 능선을 따라 하이킹하며 즐기는 시간들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통제되는 구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꼭 하이킹을 해보자 다짐했는데, 내려오는 길에 마침 2시간 가량의 하이킹 코스가 있기에 주저없이 길에 올랐다.



그렇게 갑작스레 떠난 길이지만, 곳곳에 표지판이 잘 되어있고 길도 잘 닦여 있어서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이곳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별 다른 생각 없이 한 발 한 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나아가는 일에만 온전이 집중하는 이 시간. 예전에는 걷는 시간에도 무언가 생각하고 내면의 대화를 나눠야만 의미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이 곳에서의 시간들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멋진 풍광과 불어오는 바람, 지저귀는 새, 그리고 지금 내 몸을 둘러싼 공기들까지… 이 모든 것을 앞에 두고 내 생각 속에만 빠진다는 것도 어쩌면 지독한 자기중심주의 혹은 기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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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든 후로는 최대한 별 생각 없이 현재에 집중해 걷고 있다. 표지판을 잘 보는 일, 사진을 찍고 싶은 순간에 멈춰서는 일 정도에만 최소한의 신경을 쓰면서, 온전히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모든것에 집중하는 시간. 하이킹을 하면서 나는 현재의 삶, 아니 정확히는 지금 이 순간의 내 감각에 초점을 맞추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오래도록 명상을 해도 잘 되지 않던 그 현재 살기가, 이 곳에서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게 만드는 힘, 그것이 대자연을 품은 스위스에서의 시간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처음부터 내가 이곳에서 기대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평화를 찾아야 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해, 백날 스스로에게 고함쳐봐야 결국 소용없다는 것. 자연스레 장대한 자연 앞에 서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처음으로의 연습들만이 내게 힘을 줄 수 있다는 것. 나는 오늘도 이 곳에서의 시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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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비가 온다더니, 귀신같이 비가 내린다.


잠깐 자고 일어나서, 또 하루를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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