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미 Dec 15. 2022

눈과 함께 내리는 추억

온 세상이 하얗다.

눈이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덩이 때문에 아이들은 행복하고 나는 걱정스럽다.

“추우니까 지퍼 꼭 잠그고. 장갑 끼고. 모자 쓰고. 목도리는?”

잔소리가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늘어난다.

추운 날씨 때문에 감기는 걸리지 않을까, 학교 가다 길에서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걱정 한 가득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눈이다.”

눈만 오면 새끼 강아지처럼 들떠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겨울은 추워서 싫다. 그래도 눈이 오면 좋았다.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설레기도 한다.

눈은 자주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선물 같기도 하고 행운 같기도 하다.

봉숭아 꽃물 들인 손톱에 첫눈을 맞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은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는 추억이다.      



언제부턴가 눈이 오면 걱정부터 앞선다. 출근해야 하는데 길이 미끄러우니까 너무 불편하고 짜증 난다. 눈 때문에 차사고 날 뻔했던 기억도 한몫한다. 눈은 정말 싫다.    

  

첫째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 빌라에서 약 5년 정도 살았다. 빌라는 아파트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직접 내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한다. 눈만 오면 빗자루와 눈삽을 가지고 나와 눈을 치웠다. 처음에는 너무 귀찮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같이 나간다고 한다. 분명 나가면 추울 테고, 눈에 옷이 다 젖을 텐데 걱정부터 앞선다. 애들만 두고 나가는 것도 걱정이니 같이 나가본다. 오목조목한 자그마한 손으로 제 몸집의 두 배는 되는 눈삽을 밀고 다니는데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얼굴의 양 두 볼이 빨갛게 익어 가는데도 재미있다고 깔깔된다. 이런 게 행복인 건가. 힘든 와중에도 웃음이 난다.       

         

사진출처 : 네이버 smail again


이 빌라는 언덕 위에 있었다. 남편이 종종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제설차는 우리 동네까지 와주지 않았다. 집 앞의 눈을 열심히 치웠지만 어린이집 차는 집 앞으로 오질 못한다. 그래서 눈이 올 때마다 근심 걱정이 한가득이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차가 올라가질 못하니 아래쪽으로 내려와 달라고 전화가 왔다.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내가 길을 걷는 건지 미끄럼틀을 걷는 건지 헷갈린다. 저 아래로 사고가 난 차들이 보인다. 집 앞 골목에서부터 미끄러져 사고가 났는데, 이 작은 아이를 차를 태워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정말 안 될 노릇이다. 결국 내려가다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어린이집 차가 집 앞으로 못 올라온다고 하는 날이면 그냥 등원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이사 오기 전에 언덕배기에 있는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조금 걱정을 했었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전세금에 친정엄마한테 조금만 빌리면 대출 없이 회사랑 좀 더 가까운 집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빌라를 선택했다.

“눈이 오면 어떡하지? 너무 미끄러울 것 같은데.”

“휴가 쓰지 머.”

남편의 이 한마디 때문에 쉽게 이 집을 선택했는데. 아뿔싸 또 속았구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회사가 바쁘니 휴가를 쓸 수 없단다. 난 결국 눈이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독박 육아를 하게 됐다.             




이제는 아이들이 컸다. 지금은 아파트에 산다. 집 앞 눈 치우는 일은 안 해도 된다. 아이들도 언덕 없는 평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편하게 등교한다.


눈만 오면 얘기한다.

“그때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

“언제?”

“우리 빌라 살 때 말이야. 그 언덕에서 어떻게 살았지?”

“지금은 그래도 제설은 해주지 않을까.”     


그것도 다 추억이라고 외치면서 또 후회를 한다. 그때 대출을 좀 받아서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때 아파트를 샀더라면 집값 많이 올랐을 텐데. 매번 이렇게 뒷북치는 대화만 한다.     




오전부터 오락가락 내리던 눈은 몇 시간째 펑펑 쏟아지고 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도로의 차들도 느릿느릿 서행 중이다.

하교한 아이들의 얼굴과 손은 시뻘게지고, 등에는 땀으로 젖었다. 아침에 뽀송한 얼굴로 따뜻하게 옷을 여미고 등교 한 아이들은 온 데 간데 사라졌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그냥 두고 올 리가 만무하다.

찬바람이 불 때 먹으면 진리인 호빵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준다. 뜨거운 단팥 호빵을 호들갑 떨며 호호 불어 참 맛있게도 먹는다. 해맑은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참 좋을 때다.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브런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