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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Dec 20. 2022

엄마, 수학이 좋아지고 있어요!

수포자 아이의 변화

“내버려 둬. 언젠간 되겠지.”

오늘도 첫째 아이 수학 문제집을 보고 한숨을 쉰다.

이젠 내려놓을 때라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깊은 내면에는 반포기 상태로 걱정 근심 한가득이다.




첫째가 3학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유튜브 전문가의 말이 3~4학년 때부터 수학 심화를 하면 좋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지 알고 최상위수학을 들이밀었다. 문제를 풀라고 시키니 얼마 있다가 모르겠다고 징징댄다. 설명해주고 다시 풀라고 했다. 채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처음이니 어려울 수 있다고 다독이며, 다음번엔 잘하자고 약속한다.


3학년이 지나고 4학년이 지나도록 최상위수학의 매쓰 마스터는 계속 10개 중에 2~3개만 맞는다. 애는 계속하기 싫다고 징징댄다. 하기로 한건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끝까지 들이밀었다.


결국 아이는 수학을 싫어하게 됐다. 스스로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치부한다. 수학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쩌면 좋지?


다시 유튜브를 뒤적거린다. 책을 찾아본다. 수학 정서가 나빠진 상태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엄마와의 공부는 이제 여기까지. 이제 학원을 다니자고 꼬신다.




집에서 가까운 학원에 등록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개념을 설명하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 잘 맞을 것 같다. 처음 다니는 학원이기에 숙제 양도 적어서 좋다.


약 3개월이 지날 무렵, 이학습터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학원에서 공부했으니 잘하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마음으로. 결과는 처참했다. 분명 학원에서 잘하고 있다고 매번 알림장이 오고, 진도는 천천히 나가고 있었는데 아직도 틀리는 문제가 이렇게 많다니.


학원 다녀온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학원에서 뭐 배웠어? 어떤 식으로 공부했어? 설명하면서 공부한 거야?”

“옆에 친구가 잘 몰라서 선생님이 설명해주라고 해서 그거 했어.”

“친구 꺼 설명해주면 네 건 언제 해?”

“그래서 얼마 못했어.”


이게 무슨 말인가, 방귀인가. 학원 가서 공부하랬더니 친구한테 실컷 설명만 해주고 떠들다가 온 모양이다. 이러니 진도가 안 나가지. 쉬운 것만 설명하니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건 계속 모르나 보다. 이걸어째. 대책이 시급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학원 가서 모르는 것을 배우고 와야 하는데 너 지금 테스트 결과가 너무 심하지 않니? 집에서 공부해도 3개월이면 한 학기는 끝냈는데, 학원에서 아직도 반밖에 진도가 안나 간 건 문제 있다고 생각 안 들어?”

아이를 다그치고 다른 학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새로 다니기로 한 학원은 한 타임에 4~5명만 공부하는 소규모 과외식 수학학원이다. 테스트를 보니 역시나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전 학원에서 했던 내용을 다시 최상위 S로 복습하기로 했다. 참고로 최상위 S는 집에서 이미 복습까지 끝낸 문제집이었는데, 아이는 어렵고 숙제가 많다고 징징댔다.


이미 수학 정서가 망가진 상태이므로 수학선생님과 상담을 몇 차례 했다. 수학 숙제 양을 줄이고 학원에서 최대한 집중해서 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몇 장 안 되는 숙제를 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했더니 한 학기가 마무리가 됐다.


쎈수학은 문제가 많아서 아이가 기피하던 문제집이었는데 학원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한다. C단계 문제는 반이상 틀린다. 멘붕이 왔지만 버텨본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거라고 참아본다.




고비가 여러 번 오고 약 5개월이 지났다. 새로 옮긴 학원에서 현행 복습을 하던 아이가 지금은 한 학기 예습을 하고 있다. 숙제도 잘해오고 자세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엄마, 학원에서 공부하니까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빨리 가요.”

좋은 징조다. 아이가 변하고 있다. 이제는 수학이 좀 재미있어지려고 한단다. 대박사건이다. 수포자 길로 들어섰던 아이가 수학이 재미있다니.


조금 더 수학의 재미에 속도를 붙이기 위해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어 본다. 학원 선생님은 우등생에게 주는 상품권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하다. 아이들이 상품권보다 현금을 좋아한다며.

그럼 나도 현금으로 유인해야지. 수학 문제집 한쪽 다 맞을 때마다 100원씩 주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한쪽에 1문제여도 100원, 10문제여도 100원. 너무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니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한다.

 

역시 아이들도 돈이 최고다. 아직까지 용돈을 주고 있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용돈을 모으게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산해서 용돈을 준다. 열심히 공부해서 많이 맞은 사람에게 주는 거라면서. 더 열심히 하라고 회유한다.




얼마 전에는 학원 선생님이 KUT 수학시험을 보자고 했다. 그리 어려운 시험은 아니니 도전해서 좋은 결과받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하신다. 선뜻 오케이 했다. 아이에게도 이건 쉬운 거고 90점 이상 받으면 메달도 준다고 한번 해보자고 꼬셨다. 역시 첫째는 순진하다. 엄마가 말로 꼬시면 다 넘어온다.


학원에서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데 자꾸 틀린다. 어렵다고 징징댈 때마다 할 수 있다고 꼬시고, 운 좋게 다 맞은 페이지에 도장을 찍어주며 용돈 벌었으니 좋겠다고 내일도 용돈 벌자고 꼬신다. 선생님 얘기로는 학원에서도 오답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시험 보고 약 10일 후 오전에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어머님 좋은 소식드릴게요.

KUT 90점으로 최우수상입니다^^

쉬운 문제라고 해서 당연히 상장받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90점이라고 하니 그래도 기쁘다.


아이가 오자마자 얘기해줬더니 “오 예~”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1m는 뛴 거 같다. 높이뛰기 선수인 줄.


“이것 봐. 열심히 노력했더니 메달까지 받네. 잘할 수 있잖아. 잘했어 아들. 근데 다음번에는 좀 더 어려운 시험 봐도 될 거 같은데? 지금처럼 집중에서 한번 더 도전해볼까?. ”

“으.. 흠..”

아이는 답이 없다. 그래도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간식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를 데워주고, 저녁에는 최애 떡볶이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떡볶이 먹을 때가 제일 좋아.”

 아이가 언제부터 떡볶이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맵다고 우유를 잔뜩 먹으면서도 떡볶이 바닥까지 긁어먹어야 하는 그런 순진한 아이. 좋아하는 음식만 해주면 행복하다는 아이. 오늘도 그런 아이를 보며 흐뭇해한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오늘도 아이는 눈을 맞으며 학원에 간다. 학원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쉿, 이건 비밀인데 내가 아는 친구는 눈 많이 온다고 학원을 안 갔대.)

아직까지 결석 한번 없이 열심히 다닌다. 날 닮아서인지 아주 개근 상감이다.

요즘 다시 어려워졌다며 맨날 시험 망치고 다 틀렸다고 난리부르스를 치는데 괜찮다.

또다시 괜찮아질 테니까.

언젠간 분명히 좋아질 거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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