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네 집에서 강아지랑 놀았어! 강아지가 첨에는 옆에 안 왔는데~ 좀 지나니까 내 품에 안겼다! 엄청 부드러워! 우리도 강아지 입양하면 안 돼?”
아이가 친구네 집에 갔다 오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강아지를 참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적당히 좋아하면좋으련만. 몇 년이 지나도 계속 강아지를 입양하자고 졸라대니 조만간 귀에서 피가 나도 이상할게 하나 없다.
언제부터인가 집 주변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이웃들이 부쩍 늘었다. 밖에만 나가면 보이는 강아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평화로이 산책하는 강아지를 우리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눈이 계속 뒤로 향한다. 앞을 보지 않고 뒤를 보며 걷는다.
“앞에 봐. 넘어진다.”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강아지 관련 책을 자주 사줬다. 주말만 되면 ‘동물농장’, ‘개는 훌륭하다’등 강아지 나오는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서 본다. 그만큼 강아지에 대해 아는 것도 많다. 강아지 종류, 특징, 장단점 등등. 강아지에 대해선 척척박사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강아지를 사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어린 시절엔 애완동물이 없다. 키우는 법도 모른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저렇게 오랫동안 끊임없이 졸라대는데, 입양해줄까 싶다가도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동물은 식물처럼 쉽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시들어버렸다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편은 어릴 때 강아지, 고양이, 거북이 등 안 키워본 게 없단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진짜 돈도 많이 들어가고, 털도 많이 날린다며 단점만 얘기해 준다. 난 돈과 털, 둘 다 받아들일 자신이 없으니 아무리 아이들이 졸라대도 넘어가줄 수 없다.
“동물을 집에서 키우려면 넓은 집에서 살아야 하고, 때때마다 예방접종도 맞춰야 하고, 매일 2번 이상 산책도 시켜 줘야 하고, 매번 씻겨줘야 하는데 엄마는 그거 다 못해줘"
"내가 다 할 수 있어요!"
"아닐걸. 처음엔 누구다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해보고 결정해야 해. 엄마는 너희 둘 키우는 것도 힘든데 강아지까지 키울 자신이 없어. 그니까 너희들이 커서 돈 많이 벌어서 마당 있는 넓은 집에서 키우고 싶은 동물 다 키워. 알겠지?”
여느 엄마와 마찬가지로 시시콜콜 볼멘소리를 하며 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얼마 전, 마지막으로 남은 물고기 한 마리도 결국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비어있는 어항을 없애자는 내 말을 뒤로하고 남편은 다시 물고기를 사 왔다. 어항이 하나 있는데, 하나를 더 사서 수초와 함께 다른 어종을 키우고 싶다고 한다. 하나 있는 것을 없애자니까 하나를 더 산다고? 난 극구 반대했지만 내 말을 무시하는 남편.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원목 축양장을 사고, 어항을 사고, 모래를 사고, 계속 산다. 필요한 게 엄청 많다. 몇십만 원은 지른 듯한데, 아직도 살게 더 많단다. 그래서 집에서 30분 거리의 수족관에 갔다. 집 근처 있는 수족관에는 본인이 원하는 게 없다나 뭐라나.
어쨌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수족관에 갔다. 다양한 물고기들이 보인다. 예쁘기도 하고 비싸기도 하다. 10년 넘게 물고기를 키웠지만 이제는 안 키우고 싶다. 집에 있는 식물이 넘쳐나서어항까지 관리하기엔 너무 힘들다. 남편은 자기가 키울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넘어간다.
아이들의 뒤통수가 보인다.
“뭘 보고 있어?”
“엄마, 꼬북이야. 귀엽지?”
작은 거북이가 열 마리쯤 모여 있는데, 내 눈엔 좀 징그러워 보인다. 남편에게 빨리 사고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들이 거북이를 사자고 한다. 으잉? 갑자기? 분명 지난번에 거북이는 냄새나서 안된다고 했었는데. 수족관에 냄새가 안 나는 거 보니 관리를 잘해주면 될 거 같다고 남편도 합세한다. 또다시 아이들의 졸라대는 소리가 시작됐다.
“담주에 유준이 생일인데 거북이를 생일선물로 사줄까?”
생일에 갖고 싶은 걸 말하라고 얘기해 둔 터라 남편은 당연한 듯이 아이에게 제안했다.
“응! 거북이 사줘!”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의견은 무시된 채 아이의 생일 선물로 거북이를 입양하게 됐다.
새로 산 축양장에 어항을 세팅하고 4센티 정도의 작고 앙증맞은 거북이를 넣어주었다. 한 마리만 있으니 나름 또 귀엽다.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느라 이리저리 빨빨거리며 헤엄치고 다니는데 거북이가 이렇게 빨랐나 싶다. 웃음이 절로 난다. 아이들도 나도 처음 키워보는 거북이가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그 앞을 떠나질 못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꼬북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오늘도 두 아이는 서로 꼬북이에게 먹이를 주겠다고 시끌벅적하다.
그래, 우리 집에 온 이상 우리 집 셋째해라. 내가 많이 예뻐해 줄게. 내가 60살이 될 때까지 함께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