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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Dec 12. 2022

나는 빠른인데?!

빠른 년생의 애환

모든 국민은 그가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만 6세가 된 날의 다음날 이후의 최초 학년 초부터 만 12세가 되는 날이 속하는 학년말까지 그 자녀 또는 아동을 초등학교에 취학시켜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13조-    


빠른 년생 기준은 1월 1일부터 2월 28일(29일) 사이에 태어났느냐의 유무로 정해진다. 초등학교 진학이 3월 1일에 이루어지므로 1~2월생들은 한 살 일찍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바로 빠른 년생이다.

누구보다 빠른 년생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중에서 제일 골 때리는 문제는 사회에 나와서다.

한 살 일찍 입학과 졸업을 해버렸으니 원래 태어난 나이와 학교 졸업한 나이에서 매번 헷갈리기 일쑤다.    

 



새로운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심장이 팔딱거린다. 낯가리는 소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도대체 나이를 몇 살이라고 소개를 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앞에서 나랑 같은 나이라고 먼저 소개를 해버리면, 내 머릿속은 두 개의 수가 회오리치며 정신없이 서로를 외치라고 얘기한다.


‘동갑이라고? 어쩌지? 나는 빠른 인데. 동갑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런데 내가 먼저 졸업했는데 결국 내가 한 살 더 많은 거잖아.’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로 내 차례가 와버렸다.


“저, 저는, 빠른 84년생입니다”


태어난 해에 빠른을 붙여 나이를 말해 버리는 게 일상이 됐다. 지금은 진짜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잘 모른다.

      



난 동갑친구가 거의 없다. 사회에 나와서 나이가 같다는 건 진짜 같은 게 아니다. 졸업기수를 포기하던 진짜 나이를 포기하던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선택한 나이인 것이다.


쿨 하게 한두 살 나이 차이쯤은 친구라고 하며 두루두루 잘 지내면 참 좋겠건만. 난 왜 이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먼가 억울한 느낌이다. 나이가 같아도 내가 먼저 졸업했으니 쟤보다 내가 언니라는 생각에 밑지기 싫은. 그래서 또래 친구는 불편하고 언니는 편하다. 나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되니.

 


TV 예능을 보다 보면 빠른 년생으로 불편한 관계를 드러내는 상황이 있다. A친구와는 반말하며 친하게 지내지만 B친구와는 어색하게 존댓말 하는 그런 사이. 그럴 때마다 얼마나 이해가 가던지. 도대체 빠른 년생을 누가 만든 것인가. 음력을 만든 사람을 만나 호되게 꾸짖고 싶지만 솔직히 그런 성격도 안 된다. 답답한 성격의 소유자. 늘 억울하기만 하다.     


그래도 단 하나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 빠른 년생으로 양력 생일은 1월이지만 음력 생일은 12월이라는 것. 띠는 음력으로 센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누군가 띠를 물어보면 난 당당히 외친다. 돼지띠라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째가 생기고, 산부인과에 가서 출산예정일을 물어보니 12월 30일이란다. 무턱대고 그냥 1월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내가 1월생이라 그 빠른 년생의 애환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이건 그저 예정일뿐. 아이가 더 늦게 태어날 수도, 더 일찍 태어날 수도 있으니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항상 기도했다. 일찍 태어나게 해 달라고. 뱃속의 아이한테도 빨리 나와서 보자고 자주 속삭였다. 결국 첫째 아이는 내가 바라던 대로 예정일 보 일주일 빨리 태어났다.

그런데 애가 학교에 갈 즈음되니 1월보다 12월생이 더 안 좋더라. 2008년 3월 1일부터 빠른 년생이 폐지된 것이다.

아이가 빠른 년생으로 불편한관계를 맺지않아도 되서 너무 다행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늦은 생일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아이가 커가고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젠 빠른 년생에 대한 ‘애’는 사라지고 ‘환’만 남았다. 젊을 땐 억울한 마음에 한 살이라도 더 많게 하려고 용쓰더니, 이젠 한 살 내리기 바쁘다. 그동안 ‘빠른 년생’ 때문에 불편했던 감정들을 다 보상받는다고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원래 나이를 되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인생을 살면서 나이를 제멋대로 상황에 맞게 끼워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니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뉴스 기사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부터 한국식 나이가 사라지고 만 나이로 통일될 전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만 나이, 연 나이, 세는나이로 나이 체계를 통상 나누는데 참으로 복잡하다.

만 나이는 생일 때마다 한 살씩 더하는 나이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나이
세는 나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1살이 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 세는 나이 등 나이 계산과 표시 방식의 차이로 인해 혼선을 빚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하니, 빨리 국회를 통과한 ‘만 나이 통일법’이 국무회의에서 공포되길 바라본다.


다음세대는 '빠른 년생'의 불편한 관계에서 모두 해방되길.



(사진출처:대학내일,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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