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렸다.
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열고 말았다.
물론,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시어머니가 1박 방문을 오신다길래, 며느리 모드 ON.
“그래, 최소한 방 정리 정도는 해야지.”
이 결심 하나가 화근이었다.
이 방 저 방 청소를 마치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치우며 옷장 문을 연 순간.
“으악!”
내가 그동안 정성껏 세탁해 준 옷들이 뭉텅이로,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었다.
양말, 팬티, 티셔츠… 심지어 대부분은 뒤집혀 있었다.
하아..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걸 치워야 하나? 그냥 닫아버릴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이미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끝났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 귀신을 본 것처럼,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매주 2~3번 세탁을 하면서 "옷장에 네가 직접 넣어"라고 했었다.
근데 얘는 왜 굳이 '던져 넣기'스킬을 택한 걸까?
이미 문을 열었으면 옷걸이에 걸든, 서랍에 넣든, 딱 한 단계만 더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정리하기 싫어서 안 한 게 분명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 특히 자기 옷정리는 꾸준히 시켜왔다.
그런데 아이는 점점 클수록 더 하지 않는다.
혹시 이게 ‘사춘기라는 병’의 증상일까?
바닥에 던져놓지 말라고 했더니, 이번엔 옷장에 던져 넣는다.
마치 '엄마가 뭐라 하든, 난 내 방식대로 한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답일까?
아니면 ' 누가 이기나 보자' 모드로 가야 할까?
결국 나는 옷뭉치를 한아름 꺼내 침대 위로 올려놨다.
그동안 옷장 문을 열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 돌아오네.
스트레스가 폭포처럼 머리 위로 쏟아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말이랑 팬티는 한 몸이 되어 있고, 옷은 거의 다 뒤집혀 있었다.
머리 위 스트레스는 한숨이 되어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래, 그동안 잔소리 안 하고 편했잖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꾸역꾸역 옷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꼬깃꼬깃한 옷들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멀쩡한 옷은 다시 옷장에 넣고, 구겨진 옷은 세탁바구니로 넣으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집에 오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ChatGPT에게 물었다.
“사춘기 아이는 자기 방이나 옷장 같은 공간을 ‘내 영역’으로 강하게 주장해요.
정리정돈보다는 편리함, 귀찮음을 최소화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옷을 구겨 넣는 건 '빨리 치워버리고 싶다'는 표현일 수 있어요.
그동안 가르친 습관이 무너진 게 아니라, 지금은 귀찮음이 앞서는 시기라고 보면 돼요.
옷장은 아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단, 공동공간은 엄마 룰이 적용된다고 선은 분명히 해주세요."
아, 결국 답은 간단했다.
"네 영역은 네 마음대로 해."
그래, 옷장은 건드리지 말자.
앞으로는 아이의 영역을 존중하기로 했다.
“옷장은 네 판도라 상자니까, 이제 엄마는 열지 않을게.
대신, 제발 팬티랑 양말은 좀 분리해서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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