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 ⎪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여행 75일 차, 2017년 7월 1일, 런던
그저께는 게스트 하우스 손님으로 세 부자가 왔다. 부산에서 온 그들은 50대의 아버지 한 분과 군대를 갓 전역한 큰 아들, 이제 곧 군대를 갈 작은 아들 이렇게 세 부자였다. 저녁에 라운지에서 저녁을 먹다가 런던 정보를 물으러 온 아버지 분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게 되었다. 그는 예전부터 자식들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 계기는 무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는 30년 전에 처음으로 유럽에 오셨다고 한다. 물론 개인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선원의 신분으로 말이다. 그 당시 한국은 여행 자유국이 아니어서 여행을 가려면 국가 기관의 심사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유럽이라는 대륙은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 당시 일본 젊은이들은 이미 배낭을 메고 자유롭게 유럽 거리를 돌아다니며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청춘을 즐기는 것에 장소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눈에는 우리와 가까운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먼 이국에서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히는 모습이 충격적이기는 했던 것이다. 그렇게 첫 유럽 여행, 아니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그는 30년 후 자신의 자식과 함께 첫 유럽 배낭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꿈을 막 이곳 런던에서 처음 시작한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졌다고 느꼈는지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물론 아들들은 나랑 오는 거 싫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돈 다 내주는데 안 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하며 허허 웃으셨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저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여행이라는 것도 지금의 시대가 내게 선사한 하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지금도 해외에 나가려면 큰 비용과 까다로운 절차들을 거쳐야 하는 많은 국가들이 있다. 반면 한국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권 파워 또한 높아서 웬만한 나라는 비자 없이도 방문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여행자라는 신분도 누구나 가지기 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막 지금의 기회가 당연한 것이 아니니 진지해지라고 스스로를 몰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런 것들을 또 너무 많이 알아, 즐겨야 할 것조차 못 즐기게 되기도 한다. 다만, 적당한 선에서 내가 가진 기회의 배경들을 알게 된다면 그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맞다. 그리고, 내 힘을 크게 들이지 않은 채 얻게 된 소중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순간순간 불평을 많이 하는 나로서 그 감사함은 불평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그 자리에 만족을 담아주기도 한다. 다시 그 만족은 나의 행복으로 도달하는 수 가지의 방법 중 하나가 된다. 진부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세상에는 거저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가 밟은 땅을 자세히 바라보고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날기 전에 온전한 나로 제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날지는 못 할지라도 고꾸라질 일은 없다. 또한 진흙탕이 진흙탕인 걸 알면 잠깐 미끄러진다한들 그렇게 막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