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 ⎪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여행 121일 차, 2017년 8월 16일
오늘 밤에는 친구 봉완이가 한국에서 온다. 우리는 2주 간 함께 터키를 돌며 여행할 계획이다. 오늘은 여유롭게 술탄 아흐멧 거리를 산책하며 하루를 보냈다. 첫날에는 거칠게만 보였던 술탄 아흐멧 거리가 조금씩 부드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낚시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사나운 모습의 아저씨들만 있을 것 같았지만,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뛰놀고, 젊은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갈라타 다리를 건넌다. 세계여행 출발 전 날 만큼이나 두려웠던 이곳 이스탄불의 공기는 따스한 햇살과 함께 나의 어깨를 조금씩 쓰다듬었다.
봉완이는 밤 10시가 넘어 늦게 오기 때문에, 혼자 저녁을 먹은 후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꽤나 선선해진 저녁 공기를 느끼기 위해 나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정했다. 터키어는 모르지만 친절히 안내된 메뉴 속 사진을 보며, 푸짐해 보이는 케밥 한 종류를 시켰다. 옆에는 식사를 다 마친 듯 모이는 한 대머리 아저씨가 터키 티를 마시고 있었다. 터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시는, 아래 부분이 볼록한 튤립 모양의 유리잔에 담긴 터키 티. 나도 밥을 다 먹으면 입가심으로 저 티를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할 찰나에 그 대머리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잔을 꽤나 오래 응시하고 있었나 보다.
그는 내게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다.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반가워하며 괜찮으면 얘기를 더 나눠도 되겠냐고 했고, 나는 ‘이게 여행의 묘미지~’하며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내 앞으로 자리를 옮긴 아저씨는 천천히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다른 도시에 사는 터키인이었고, 출장차 이스탄불에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참전했던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조부를 기리기 위해 한국에 한 번 다녀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들 두 명이 있다며 나에게 그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도 그에게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몇 개월 째 여행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아직 학생이고, 터키는 처음 와봤다는 따위의 것들 말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동안 나는 푸짐하게 담겨있던 케밥을 다 비웠다. 아저씨는 자신의 티를 한 잔 더 시킬 겸 내 것도 하나 시켜주었다.
“테쉐큘레!”
나는 터키어로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내게 시간이 괜찮으면 맥주를 한 잔 하며 얘기를 더 나눌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신은 물담배를 좋아한다며 그것도 함께 하자고 했다. 이스탄불에 올 때마다 가는 괜찮은 로컬 바가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봉완이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3시간가량 남아 있었기에 여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수 없이 교육받아온 ‘모르는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절대 따라가면 안 돼!’라는 말이 내 안을 자그맣게 울렸다. 그는 과연 내게 모르는 아저씨인가? 사실 나는 그가 말한 것만큼만 그를 안다. 물론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익명 간의 만남. 로컬 바가 궁금하기도 했고, 여행의 묘미도 느끼고 싶었기에 나는 우리가 나눈 50여 분 간의 대화를 믿고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저씨는 이미 내 밥까지 계산을 했다며 다음에 자신이 한국에 가면 그때 맛있는 한국음식을 사 달라고 했다.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다시 한번 “테쉐큘레!”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별 것 아니라고 웃으며 로컬 바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한다고 했다. ‘여기도 충분히 번화가인데 택시까지…?’ 약간의 의심이 번졌다. 하지만 그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자신은 번화가보다는 한적한 곳이 좋다고 했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로컬 바가 궁금했다. 서울에서도 지인들과 술을 마실 때 명동과 같은 관광지보다는 먹거리로 가득한 골목 동네로 가기를 선호하지 않는가. 아무쪼록 이 호기심이 몹쓸 것만은 아니길 바라며 나는 그와 함께 택시를 탔다.
방금 만난 사람과 택시 타는 것을 낯설어하는 게 느껴졌는지, 그는 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몇몇 터키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며 그것들을 따라 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에 더 몰입을 했다. 그렇게 1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로컬 바는 그리 시끄럽지 않은 골목에 있었다. 골목이 전반적으로 꽤나 밝았기에 나는 안도하며 그의 뒤를 따라 그곳에 들어갔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2층 창가 쪽의 테이블이었다. 계단에서는 가장 멀지만 바깥 풍경과는 가장 가까이 마주해 있는 2층 창가에서 우리는 에페스 생맥주 한 잔과 물담배 한 세트를 즐기며 터키에 대한 얘기를 더 나누었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을 시점에 갑자기 한 외국 아주머니와 젊은 여자가 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같이 앉아서 얘기를 나눠도 되겠냐고 했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그는 ‘이게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 “Sure!”이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들의 등장에 경계심이 높아졌고, 맥주도 조금씩만 홀짝 댔다. 아주머니는 러시아에서, 젊은 여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했다. 둘 다 로컬 바에 있었지만 로컬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금 이상했지만 그 젊은 여자는 안심하라는 듯 자신의 인스타 사진들을 보여주며 나의 의심을 자연스레 가라앉혔다. 인스타그램을 한다는 것만으로 현대 지구촌 사회인으로서의 비공식적 인증을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자기소개를 하며 대화에 집중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한 종업원이 갑자기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숙녀들을 위해 술 한 잔 대접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한 것이다. 또다시 어리둥절했다. 내 맥주 한 잔 마시는 것도 아까운 상황에 무슨 대접을 하라는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아..”하며 거절을 표하려고 했다. 하지만 터키 아저씨는 마치 ‘괜찮아, 내가 있잖아.’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 “Sure!”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러시아 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리고 종업원은 그의 마음을 간파하여 영리한 판매 전략을 펼쳤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당황스러운 마음을 우선 가라 앉혔다.
종업원은 캐리어를 끌고 와인을 가져와 그녀들의 잔을 채웠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이것은 정말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즉, 종업원이 와인을 따른 후 그 병과 함께 또 다른 한 병을 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심지어 그 한 병은 반 이상이 비워져 있는 병이었다. 나는 왜 새 것도 아닌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종원원에게 “What is this?”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샤랍”이라고 했다. ‘뭐? 닥치라고?’ 나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What?”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샤랍’이 터키어로 와인이라고 했다. 그가 나를 조롱한다고 생각했지만, 터키 아저씨는 진짜 ‘샤랍’이 와인이라고 했다.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어 휴대폰을 꺼내려고 했지만 나는 심카드가 없었기에 인터넷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술의 종류를 물은 게 아니라 그것을 왜 올려놓은 건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샤랍의 혼돈 속에서 그는 재빨리 1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의심이 많은 것일까? 찝찝했다.
문득, 이러다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하 호호하며 대화를 한 사람들을 단번에 내치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소한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이야기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으면 바로 친구에게 연락 온 척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들은 내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려는 듯 계속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극구 부인하며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때 종업원이 다시 와서 그녀들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또 다른 두 개의 와인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총 4명의 와인병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것이다. 나는 터키 아저씨를 쳐다봤고 그는 고개를 으쓱하며 물담배를 피웠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확신했다. 호기심의 걸음이 그날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나는 친구가 와서 가야 한다고 했고, 그는 조금 더 있다 가라고 했다. 하지만 단호하게 가야 한다고 하니, 터키 아저씨는 알겠다며 종업원에게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그는 혼자 계산서를 보더니 자신이 반을 낼 테니, 나에게 반을 내라고 했다. 뒤통수를 강하게 때려 맞는 기분이 들었다.
‘이거구나.’
그는 무표정으로 내게 계산서를 건넸고 종이에는 1000리라가 적혀있었다. 그 당시 한화로 약 32만 원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빨리 감기처럼 휙 하고 눈앞을 스쳤다. 아저씨는 준비한 듯 500리라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할 말을 잃은 나는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들은 창가로 고개를 돌렸고, 아저씨는 허공을 응시하며 물담배만 뻑뻑 피웠다. 종업원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뻔뻔하게 물었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웃음과 함께 정신이 조금 돌아왔고,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1000리라의 반인 500리라를 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즐긴 것은 에페스 생맥주 한 잔과 물담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종업원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내가 그녀들에게 와인을 사지 않았냐고 했다.
‘아저씨가 내는 건 줄 알았는데…’
그 순간에도 차마 이 말을 하는 것이 졸렬한 것 같았다. 그래서 왜 그게 네 병이나 되냐고 당신이 마구잡이로 놓은 것이 아니냐고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그는 그저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며 나를 응시했다.
세상에 정말 나밖에 없는 기분이 들 정도로 황당했고, 그래서 다시 웃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Are you kidding?”이라고 했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 하지만 4명은 내가 물리적으로 상대하기에도 많은 숫자였다. 솔직히 진지한 그의 표정에 조금 겁을 먹기도 했다. 우선 나만 볼 수 있도록 눈 앞에서 지갑을 열었다. 수중에는 250리라, 즉 한화 약 8만 원 정도뿐이었다. 그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자, 그는 정말 쉽게 “There is ATM, go there.”이라고 말했다. 단호하면서도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말에 내 속은 알 수 없는 불길로 가득해졌다. 그의 명령 비슷한 발언은 나를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오기 가득한 말투로 “Okay, I’ll give you money whatever you want! How much you want? Tell me!!!”라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만큼 돈을 줄 생각은 없었고, 돈 몇 푼에 사람을 이렇게 속여 먹는 그들의 삶을 역으로 더 극대화해서 그들의 양심을 건드려 볼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그들은 그저 먼 곳만을 바라봤다.
그런데 갑자기 계단에서 쿠쿵쿠쿵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덩치가 큰 사내 세 명이 다가와 종업원 뒤에 섰다. 갑자기 열탕에서 냉탕으로 순식간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웠다. 하지만 이미 내가 보여준 모습을 순식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체면이 참 무서운 것인가 보다. 이미 기선을 제압한 김에, 종업원이 무슨 얘기를 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먼저 “You wait here, I’ll give you money, okay?”라고 비꼬았다. 그러고서는 덩치 한 명에게 나를 ATM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화만 냈을 뿐 결국에는 돈 준다고 한 것이라 큰 용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도주를 할까? 이 사람 달리기 빠를까? 돈은 준다고 했는데 진짜 더 줘야 하나?’
그때였다. 종업원이 나에게 뛰어오더니 아까는 짓지 않던 온화한 표정으로 “Hey, brother, Why are you so angry?”라고 했다. brother이라니? 하기야, 터키는 형제(brother)의 나라긴 했지. 나는 “What?”하고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화를 풀라며 지금 현금이 얼마 있냐고 물었다. 일종의 딜을 하려는 눈치였다.
지금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지갑을 확인하고 250리라가 있다고 했다. 그는 화를 풀라고 하며 그것만 주고 가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내 몸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내 8만 원을 그에게 건네주고 바로 택시를 타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택시 기사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어 영어로 말을 건넸지만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술탄 아흐멧 고?’하며 흐흐 웃었다. 앞의 일을 겪고 나니 차라리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안심이 되었다. 여기는 터키니까. 그래도 믿을 수 없었기에 주위를 계속 둘러보며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했다. 물론 본다고 알 수는 없었지만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은 구분할 수 있었다. 다행히 택시는 올바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드넓은 금각만의 물결과 다리의 노란 조명들이 내 마음을 위로하듯 눈앞에 부서졌다.
‘그렇지… 이것이 여행의… 묘미지….’
아까의 분노는 왠지 모를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나의 호기심이 몹쓸 것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을 잃은 것에 대한 억울함은, 그 돈에 자신의 양심을 파는 사람들을 접했다는 것에 대한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양심을 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지갑 속 돈을 위해 한 시간 이상을 나와 관계를 맺은, 아니 맺은 척한 그 여러 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현혹시켜 돈을 뺏기 위해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첫 만남.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물론, 모종의 기쁨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다이내믹한 상황을 겪고 탈출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참으로 지옥 같았지만 앞으로는 친구들이나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이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지금 나를 향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다. 물론, 벌써부터 웃음이 지어졌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실은 택시는 아까 그 아저씨와 함께 탄 정류장에 섰다. 나는 잔돈을 모아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 내렸다. 내가 무슨 일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분주한 거리. 나는 빠르게 호스텔로 발을 옮기려고 가장 가까운 방향을 재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Hey! How are you?”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젊은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다짜고짜 자신이 크로아티아에서 왔고 영상 제작일을 하러 이곳에 출장 왔다며, 친구가 없는데 괜찮으면 로컬 바에 가서 같이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냐고 했다. 출장. 로컬 바. 맥주 한 잔. 나에게는 이미 뻔한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들. 나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그의 들뜬 얼굴을 보며, “I drank a beer for 500 liras.”라고 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Oh..”하더니, 불쌍하다는 듯 “Hey man, cheer up.”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가 왜 내게 격려를 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기에는 배가 많이 많이 불렀기에 도망치는 그를 잡지는 않았다.
사람에 대한 그리고 내 호기심에 대한 예방주사를 한방 크게 맞은 것 같다. 8만 원짜리 예방주사 말이다. 이미 당해놓고 무슨 예방주사냐고 한다면, 봉완이가 떠날 2주 후부터 본격적으로 혼자 하게 될 나의 여행에 대한 예방이라고 말하고 싶다.
p.s 이 사기를 당한 걸 터키 현지 친구한테 얘기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위로한 건 8만원 정도면 양호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 취해서 몇 백 만원도 그냥 털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기를 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터키사람들이 아닌 외국인들이라고 했다. 흠.. 졌지만 잘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