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미 Nov 17. 2019

발자국 남기는 방법

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 ⎪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 길에 발자국이 남게 마련이다. 어디에 갈지를 고민한 적은 있어도 발자국을 어떻게 남길지 고민한 적이 있었나? 내가 남길 수 있는 자국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여행 D+190, 2017년 10월 24일

  사하라 사막 투어를 가는 날이다. 낙타를 타고 베이스캠프에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오는 코스였다. 사막 근처 마을 멀리서만 보던 그림과 같던 그 사하라 사막에 이제 직접 들어갈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고, 승진이 형을 포함해 6명의 일행과 낙타를 타러 갔다. 낙타를 타려면 사하라에서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요르단, 이집트에서 모든 낙타 호객을 거절했다. 물론 돈이 충분했다면 다 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멀리서 낙타들이 1열로 앉아 엉덩이에 붙은 파리들을 꼬리로 쫒고 있었다. 고운 모래 사이에 초콜릿 덩어리 같은 낙타의 대변을 피해 그들의 곁으로 갔다. 파란 옷을 입은 모로칸 가이드는 한 명씩 낙타를 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저 안장에 올라탄 후 낙타가 일어설 때 고꾸라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꽉 잡으면 되었다. 안장에 올라탄 나는 쭉 하고 수직 상승할 것으로 기대를 하며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낙타가 일어설 때 내 몸은 앞으로 한번 쭉 기울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방심해서 손잡이를 꽉 잡지 않았다면 앞으로 고꾸라질 것이 분명했다. 낙타는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베이스캠프를 향해 걷기 시작했을 때도 낙타는 마치 내게 무언가를 토해내라는 듯 나를 자꾸 앞으로 앞으로 쳐내었다. 그러면 나는 손잡이를 꽉 잡고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몸에 힘을 주었다. 낙타를 타면 편할 줄 알았는데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렬로 선 낙타와 그 위의 우리는 사막 속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마치 3D 그래픽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선명하고 보드라운 사하라 사막의 붉은 그라데이션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문득 중학생 때 단답식 문제의 정답으로 사하라 사막을 썼던 흑백의 장면이 눈앞을 스쳤다. 


  ‘여기가 사하라라니..’


  1시간 가까이 낙타를 타서 도착한 베이스캠프에는 어제 이미 도착하여 2박을 하는 일행들이 있었다.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한 모래를 겨우 밟으며 들어가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점심이 나오기 전까지 일행들은 서로 이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나눴다. 스페인 여행 혹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모로코로 온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렇게 스페인 얘기들을 들으며 금세 나온 타진 비슷한 점심을 뚝딱 해치웠다. 배를 채우고 나니 막상 할 게 없었다. 일행들은 각자 가져온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했다. 점심을 지나는 사막은 너무 뜨거워서 무언가 활동을 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래도 그늘 아래서 저 멀리 노란 사막 등성이를 보고 있노라니, 그냥 이러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행 승진형에게 스피커를 들고 모래산을 한 번 올라보자고 했다.


  푹푹 빠지는 뜨거운 모래더미를 겨우 겨우 밀어내어 도착한 언덕 위에서는 베이스캠프도 시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리만 있는 세상이었다. 황금빛의 사방은 나를 미치게 하려는 듯 매료시켰다. 낙타의 발이 아닌 내 발로 직접 선 것만으로 황홀했다. 정말로 사하라 사막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광활한 노란 세상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이 공간을 미친 듯이 달리며 누비고 싶어 졌다. 이 실감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글로 쓰자니 부끄럽지만 나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틀었다.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거칠 것 없이 울려 퍼졌다. 당장이라도 달리고 싶은 욕망을 잠시 눌러 두고 음악의 절정이 나올 때까지 그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사막과 음악 그리고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음악은 중반을 지나 절정에 다가섰다. 프레디 머큐리의 “For me!”하는 찢어지는 고음과 함께 우두두 부서지는 드럼과 절정의 기타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그제야 나는 참았던 질주 욕망을 터뜨리며 노란 세상을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도 하나하나 벚어젖혔다. 바지를 벗을 때는 뛰다가 옷에 걸려 한 바퀴 뎅구르르 굴렀다. 온몸으로 사막의 뜨거움을 느끼니 이곳을 뛰고 있는 것이 더욱 실감 났다. 스피커에서 프레디는 “Just gotta get out!”을 외치고 있었고, 나는 그렇게 옷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자유인이 되었다.


  30초 정도를 전력 질주하며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나는 숨이 벅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프레디 머큐리 또한 이제 더 안 뛰어도 된다는 듯 “Nothing really matter”하며 숨을 골랐다. 나 또한 거친 숨을 다듬으며 승진형과 깔깔대며 웃었다. 본능만으로 움직인 퀸과의 사막 콜라보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마치 사막을 가진 양 그렇게 기세 등등하게 뛰어온 곳을 거꾸로 다시 돌아왔다. 땀을 식힐 겸 잠시 스피커 옆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사하라와 함께 숨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전속력으로 달리며 난리를 친 이후에 그늘 하나 없이 계속 햇빛을 맞아서 그런지, 탈진을 한 기분이었다. 아까 뛸 때는 충동적으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뜨거운 사막이 그것을 이루어주려는 낌새가 보이니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바로 형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복귀했다. 사막에겐 송구하지만 아직 나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우리는 막사 앞 그늘에 드러누워 바람을 맞으며 몸을 식혔다. 얼마 만에 이렇게 뛰고 땀을 흘려본 걸까. 기분이 좋으면서 탈진으로 오늘 밤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도 되었다. ‘이제 안 까불 테니 한 번만 살려줘라, 사막!’하는 마음으로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하늘 한가운데서 작열하던 태양이 조금씩 아래로 기울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노을을 보러 가자며 일행을 언덕으로 이끌었다. 노을의 뒤편에서 황금 옷을 벗고 있는 모래를 푹푹 밟으며 높은 곳으로 올랐다. 아까는 살갗에 닿기만 해도 데일 것처럼 뜨거웠던 모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체온에 부담스럽지 않은 온도의 모래를 밟는 것이 꽤나 안락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오른 언덕의 건너편에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태양이 주황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황홀했다. 언덕의 능선을 따라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왼발에는 노을빛을 받아 붉은 사막이 오른발에는 노을빛을 받지 못해 회색이 섞인 듯한 어두운 사막이 놓여 있었다. 온통 노란색이었던 사막과는 또 다른 모습의 양면적인 사막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 자리를 잡아 노을이 지는 것을 구경했다. 붉게 물든 사막을 다시 눈에 앞두고 있자니, 믿기지가 않았다. 광고에서 나오는 현대의 수많은 디스플레이 기술들은 사막을 따른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떤 화소보다 작은 미립자들의 상상할 수 없는 군집이 큰 물결의 그라데이션을 만들고 곡선을 만들었다. 그 광활한 물결들 위에 내가 있었다. 과연 몇 번째 물결 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그 하나의 물결 위에 잠시 부유하고 있다. 내일이면 없어질 나의 발자국들을 따라서 말이다. 그렇게 발길 따라 떠다니다 보면 언젠가 가장 높은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길 수도, 혹은 더 깊은 심해로 밀려나 고래의 밥이 될 수도, 혹은 파도와 함께 부서질 수도 있겠지. 분명 내가 원하는 미래는 있겠지만, 넓디넓은 사막은 아무래도 그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내일이면 없어질 발자국을 남길뿐이다. 


  원본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목격하는 것이고, 그 세계와 나의 관계를 한 번쯤 정립하는 기회를 준다. 한 때, 나는 내가 신인 줄 알았다. 그래서 가끔 내 앞에 태풍이 와 허우적대도 그게 내 탓인 줄만 알았다. 태풍을 이기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 세계와 그 위에 플랑크톤처럼 떠있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스어로 방랑당하는 자의 의미에서 유래한 플랑크톤처럼 나는 큰 바다 위에서 때로는 방랑을 당한다. 물론 나는 플랑크톤이 아니다. 오늘 이 사막도 내 두 발로 왔고, 언제나 가고 싶은 대가 있다면 움직일 수 있는 뼈와 근육이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큰 물결 위에서 때로는 방랑당한다. 내 엄청난 의지가 때로는 큰 파도에 덮쳐 온 데 간데 없이 부서질 때도 있다. 인간의 나약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멈춰도 계속 어딘가로 흐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때 멀리서, 부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올라온 길을 따라 4대의 오토바이가 힘차게 모래 언덕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능선에 선 사막 바이커를 처음 본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들을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았다. 바이커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포즈를 취하고는 낙하하듯 그렇게 붉은 노을로 달려들었다.



 ‘오, 발자국을 저렇게도 남길 수도 있구나.’

이전 11화 죽으라는 법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