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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an 05. 2020

이름 모를 열병, 그 후의 기록들

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 ⎪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마지드가 떠난 다음 날 해가 지면서부터 열이 올랐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효과가 없고 너무 춥고 고통스러웠다. 우울한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 같더니 결국엔 아파진 몸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여행 329일 차, 2018년 3월 12일

  아무래도 보통 감기가 아닌 것 같았다. 밤새 오한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아침에는 구역질까지 났다. 나는 아침 일찍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호스텔 직원에게 병원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직원은 공립 병원과 사립 병원이 두 개 있는데 공립은 싸지만 사람들이 엄청 많을 거라고 했고, 사립은 비싸지만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젠장, 설마 하고 여행자 보험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하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에 고민을 조금 하다가 바로 택시를 타고 사립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병원에 영어를 할 줄 아는 간호사가 있어서 응급실로 가 링거 세 통을 맞았다. 링거를 처음 맞아보는데 주사 바늘이 몸에 계속 꽂혀있는 것이 영 불편했다. 나는 혼자 입술을 꽉 깨물며 나아질 때까지 버텼다. 여행 11개월 동안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집으로 순간이동을 하고 싶었다. 


  떨면서 누워 있다 보니 어느새 잠에 들었다. 열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힘 빠진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나와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의사가 무슨 infection 어쩌고 하고 말했지만, 정확한 건 알아들을 수 없었다. 추측으로 그냥 장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자 보험이 만료돼서 한화로 약 20만 원가량의 돈을 한 번에 내고 병원을 나왔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기에 불가피한 소비였지만, 여행의 수명은 확실하게 줄을 것 같다. 그래도 열이 나지 않으니 기분이 좋다. 인생 수명이 닳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햇살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낫겠거니 싶었는데 웬걸, 마치 열이 배출되는 것처럼 계속 배가 아파 화장실을 수없이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열이 내린 대신 다른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독소를 빼낸다는 생각으로 내 몸을 떠나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여행 330일 차, 2018년 3월 13일

  어제 오후 터키에서 처음 만난 아름 누나와 요르단에서 처음 만난 일본인 친구 마코토가 왔다. 우리는 요르단 암만에서 처음 같이 만났다가 이집트 다합에서 또 한 번 만나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다. 게다가 마코토는 뉴욕에 있을 때도 연락이 되어 또 한 번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도 몸이 살짝 안 좋았었는데 이번에는 진짜 안 좋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는 친구들을 만나니 힘이 났다.


  오전에는 오랜만에 스페인어 학원에 갔다 왔다. 훌리아 선생님과 직원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물론 체력이 굉장히 많이 달렸지만, 다시 일상을 되찾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오늘 밤에 마코토가 바로 떠나기에 조금 무리해서 오후 일정을 그와 함께 진행했다. 약을 먹고 옷을 단단히 입은 채 함께 뚜리 전망대에 올라 석양을 보기로 했다. 물론 역시나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나는 찬 바람 몇 방에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11개월 간의 여행 동안 쌓인 나의 신체 내구도가 바닥을 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회복 기간이 꽤나 길어질 것 같다.


  그렇게 허무하게 마코토를 맥없이 떠나보냈다. 일정상으로 아마 그와 나의 만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혼자의 여행에서 누군가와 작은 순간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몸은 안 좋지만 그와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따뜻하게 잠에 들어야지.


    여행 333일 차, 2018년 3월 16일

  오늘은 스페인어 수업의 마지막 날이다. 수업을 끝내고, 훌리아 선생님과 함께 메르까도에 장을 보러 갔다. 왜냐하면 내가 마지막 기념으로 찜닭과 부침개를 만들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훌리아 선생님은 마치 엄마처럼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골라주었다. 학원 부엌에 재료들을 놓고 마지막 수업 1시간을 집중해서 마무리했다. 아픈 게 반이었지만 그래도 여행 중 처음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배워본 시간들이었다. 가방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가 미리 산 재료들을 주섬주섬 꺼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불이 조금 약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어찌어찌 찜닭과 부침개를 만들었다. 


  아름 누나와 학원 직원 까를라도 함께 모여 음식을 즐겼다. 찜닭이 좀 덜 졸여져 싱거워서 아쉬웠지만, 다들 부침개는 마음에 들어하는 모양이었다. 하나라도 성공한 게 어디인가. 다행이었다. 오후에는 훌리아 선생님과 따로 쿠엔카 박물관에 가서 쿠엔카 그리고 에콰도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스페인어 수업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훌리아 선생님은 모든 설명을 스페인어로 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 나라 사람에게 그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꽤나 의미 있었다. 그 정성이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나도 언젠간 내 나라에 놀러 온 누군가에게 내 나라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료 스페인어 박물관 가이드 끝으로 훌리아 선생님과도 헤어졌다. 지구 정반대에서 몸이 아플 때 엄마처럼 나를 신경을 써주었던 훌리아 선생님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매일 걷던 개천을 따라 숙소로 돌아왔다. 헤어짐은 언제나 슬픈 행복 같다. 잠깐이지만 나의 일상이 된 사람들과의 추억들이 말 그대로 정말 추억이 돼버리는 순간에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묘하게 교차하기 때문이다.


    여행 334일 차, 2018년 3월 17일

  내일이면 쿠엔카를 떠난다. 오늘은 버킷리스트에 적어놓았듯이 사진을 광장에서 팔아보기로 했다. 오전에 종이를 구해 간단한 정보들을 적었다. 점심을 먹은 후 여행 동안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쿠엔카 광장으로 나갔다. 어디에서 팔아야 할지 몰라 우선은 광장 벤치에 앉아 앞에 사진들을 정렬해놓았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기 보단 기부제 나눔이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만 해도 고마울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런지 그냥 쓱 보기만 하고 가버렸다. 그러다 경찰 두 분이 나타났다. 여기서 팔면 안 되나 싶었는데, 우리에게 성당 근처의 팔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어 거기서 2시간 동안 팔라고 했다. 세계 문화유산 도시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거리 판매 문화를 장려하는 이곳이 참 좋은 순간이었다. 


  나는 그 거리로 가 조심스레 사진들을 다시 펼쳐놓았다. 아무래도 다른 판매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런지 유동 인구가 훨씬 많았다. 그러다 한 아주머니가 집중해서 사진을 보더니 금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초반에 두 분이 괜찮은 사진들을 거의 싹쓸이해가서 후반에는 힘이 조금 달렸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내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여기는 어디냐고 물어보고는 하는 게 신기했다. 또 한 여행자는 멋있다며 소량의 돈을 그냥 주고 가기도 했다. 내 옆에서 조용하게 큰 사진들을 팔던 한 할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완판을 하시곤 내게 와 1달러를 주고 갔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아끼던 경복궁 사진을 드렸다. 잠깐이지만 내가 이 마을에서 소매상이 된 것이, 또 여행으로 누군가의 이목을 끌어본 것이 새삼 새롭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하기 전엔 엽서를 파는 것에 누군가 시비를 걸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두 시간을 앉아서 사진을 팔아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돈을 벌었다. 오늘은 든든하게 오렌지 주스까지 시켜먹고 숙소로 돌아간다. 쿠엔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이곳에 머물며 나는 바닥을 쳤지만 빛나는 주변이 나를 밝게 비추며 떠나간 2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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