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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잡담

예고 없이 나를 울린 책

정관 스님 나의 음식

by RAMJI

‘거대한 역설’을 읽으면서 주목하게 된 것 중 하나가 농사일과 먹거리의 비즈니스화, 초국적 대기업화이다. 나는 매끈한 타일과 밝은 조명이 비추는 현대적인 시설의 슈퍼마켓에 가서 먹거리를 산다. 내가 사는 제품은 보통 플라스틱으로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꼭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흙 알갱이 하나 묻어있지 않다. 내가 사는 식재료의 원산지는 세계 어디든 될 수 있다. 지구 한 곳에서 재배되어 다른 나라로 이동해 가공되고, 때로는 또 다른 나라에서 포장되어, 내가 있는 곳까지 옮겨졌다. 그 덕분에 아프리카에서도 찹쌀을 먹고 배추김치도 만들어 먹고 라면도 끓여 먹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식재료들은 그 긴 거리를 옮겨 다녀야 했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팔려야 하기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농약, 보존제, 향미증진제를 담고 있다.


당연하게 생각한 이런 종류의 흔한 먹거리, 먹어도 괜찮다고들 하고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 많다. 나는 몇 년 전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졌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아침 첫 끼니를 채소로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정관 스님의 책에 대해 듣고는 그 자리에서 즉시 검색해서 다운로드를 했다. 넷플릭스를 보지 않아 이렇게 유명하신 분인 줄은 몰랐다. 당황스럽게도 책을 열자마자 아래 추천의 글을 보면서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렸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오래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슬로푸드대회에서 스님을 모시고 발우공양을 한 적이 있다. 발우를 씻은 물을 남김없이 드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울었다. 어떤 이는 자기 키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스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스님은 자연과 시간의 힘을 빌어 장을 담그고 장아찌와 청을 만드신다. 그리고 자연에서 얻은, 어디서 온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계절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신다. 또 스님은 음식을 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신다.


음식을 하는 것은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입니다. 인생처럼 음식도 현재에 집중하고, 손짓 하나에 정성을 다하고, 계속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낼 때 좋아집니다. 그렇게 만든 음식은 몸과 마음에 약이 되지요.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에너지가 스며들어 완성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하면 음식에도 그 에너지가 반영되지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생명의 가치를 헤아리며,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보길 바랍니다.


스님의 레시피는 사실 간단하다. 하지만 스님의 간장, 조청, 장아찌 없이는 맛이 날 것 같지가 않아 시도할 엄두도 못 내겠다. 대신 음식하는 태도를 배웠다. 내가 음식 할 때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제 저녁은 고기 없는 밥상으로 정성을 담아 차렸다.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어 고마웠다.


책을 마치며 확인하니 스님은 우리 엄마와 출생연도와 고향이 똑같으시다. 올여름 엄마를 찾아뵐 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 기회가 된다면 백양사에도 한 번쯤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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