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28번 트램, 포르타 두 솔 전망대, 타임아웃마켓
우리 가족이 탄 비행기는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리스본 땅에 내렸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대기 중인 사람이 삼십여 명 안팎밖에 되지 않았는데 입국심사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못해도 삼십 분은 기다린 것 같다. 아이를 안은 흑인 여성 한 명이 입국을 거절당했다. 미성년 아이들 두 그룹이 백인 인솔자와 함께 줄을 서 있었다. 가나에서 탑승 대기할 때 보지 못한 얼굴들이라 상투메프린세페에서 출국한 사람들일 거라 짐작되는데 무슨 사연일까.
공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래된 건물이라 난방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호스트가 이른 아침 체크인을 허락해 주어 선택한 숙소다. 아침 7시경 들어섰는데 웬걸 예상보다 더 추웠다. 남편이 껄껄 웃으며 “남아공으로 여행 갈 걸 왜 여기로 왔지” 말하고는 이불속에 파고들었다. 수면바지로 갈아입고 수면양말을 신어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럴 때 쓰려고 챙겨 온 고무팩에 뜨거운 물을 채워 아이들에게 안겼다. 가나에서 챙겨 온 즉석국과 즉석죽을 데워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나는 삶은 달걀과 감자를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잔 것도 안 잔 것도 아닌 상태로 쉬다가 오전 10시쯤 숙소를 나섰다. 흐렸고 비 예보도 있었다. 가장 먼저 내 겨울 외투를 사야 한다는 남편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우리는 자라 매장에 가기로 했다. 호시우의 거대한 자라 매장에서 어렵지 않게 마음에 드는 검정 점퍼를 찾았다. 특히 가격이 마음에 쏙 들었다. 포르투갈의 첫인상이 불호에서 호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따뜻한 옷을 입고 나니 배가 고팠다. Uma란 이름의 해산물 식당 앞에 한국인들이 줄 서있는 것을 쳐다보며, 그 옆에 있는 O Arco란 식당에 들어가 단번에 자리를 잡았다. 피곤했던 둘째는 역시나 잠들어버렸다. 나는 올리브유에 구운 흰살생선과 익힌 감자를 먹었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죽만 먹던 나에게는 황송한 요리였다. 남편은 가나에서 못 먹던 조개가 들어있는 해물밥, 첫째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여행 오길 잘했다 싶었다. 포르투갈 점점 마음에 든다.
으슬으슬하던 몸에 밥을 넣어주니 힘이 불끈 났다. 28번 노란색 트램을 타기로 하고 Martim Moniz로 걸어갔다. 줄이 길었지만 기다리기로 하고, 그동안 둘째 빵과 음료를 사 먹였다. 기어이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만원의 트램을 네 대 정도 보낸 후 우리도 마침내 탑승할 수 있었다. 자동차와 트램과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점유한 채 좁은 언덕과 골목을 누볐다. 어찌나 스릴 있는지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위례나 성남에 짓는다는 트램이 설마 이런 콘셉트인가?! 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은 우리 아이들은 직접 운전을 하는 양 시종일관 진지했다.
비도 오는데 트램에 탄 채 한 바퀴를 돌까 하다가 중간에 내리기로 했다. 시야가 훤해진 느낌에 즉흥적으로 내렸는데 그곳이 포르타 두 솔 전망대였다. 비바람을 맞으며 잿빛의 테주강과 노을빛 지붕들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1년 만에 느끼는 찬 기운, 그 강렬한 감각을 마음껏, 즉 5분 정도 즐겼다.
이내 추위를 느끼고 그림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이 가게에는 화장실이 없다고 해서 (으잉?) 급히 근처 에그타르트집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계획에 없던 에그타르트와 따뜻한 우유를 먹게 됐다. 따뜻 고소 달콤한 타르트, 내 입맛에는 좀 달았지만 힘이 솟고 몸이 따뜻해졌다. 별 탈 없이 소화가 된 것이 더 감동이었다. 나중에야 여행책자를 보고 알았지만 오픈키친이 특징인 Manteigaria란 이름의 유명한 타르트 집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타임아웃마켓을 찾았다. 시장은 문을 닫았지만 식당가는 열었고 내가 그동안 본 어떤 푸드코트보다도 큰 공간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벽 공항은 그렇게 한산하더니 이들은 관광객인가 시민인가. 피곤했던 아이들은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렸다. 남편의 수고로 음식을 포장해 숙소에 돌아와서 먹었다. 식었는데도 맛있었다. 특히 바칼라우가 정말 맛있었다. 명태나 황태 향이 나는데 풍부한 생선살이 살짝 짭짤하면서 쫀득거렸다. 흰살생선 요리의 나라 포르투갈을 사랑하게 됐다. 위염 회복에 최적의 나라 아닌가 싶다. 양갈비를 뜯은 아이들도 대만족 한 것 같았다. 숙소는 여전히 추웠다. 따뜻한 옷으로 무장시키고 뜨거운 물주머니팩을 안겨주고 나도 이불을 턱 아래까지 당겨서 덮고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