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레 바닷가에 버리고 온 것들

5일 차 : 나자레 해변

by RAMJI

아침에 부지런히 짐 싸서 우버 타고 이동해 렌터카를 픽업했다. 늘 느끼지만 남편과 나 팀워크가 너무 좋다. 이 팀워크를 유지하려면 평생 여행 다녀야 하는 거 아닌지. 우버 콤포트 예약했더니 테슬라가 와서 아이들이 환호했다. 렌터카는 무난한 포드 자동차였고, 큰 어려움 없이 나자레에 잘 도착했다.


바다가 자꾸 부른다며 이끌리듯 해변으로 가려는 아이들을 달래서 (주차할 곳 찾기가 난감한 관계로) 등대를 낀 뷰포인트로 우선 이동했다. 2미터도 넘는 파도를 볼 수 있다고 들었으나 이날 날씨는 유난히 따뜻하고 바람도 없었다. 따라서 파도도 잔잔한 축에 속했다. 그래도 하염없이 파도를 쳐다봤다. 북부 해안으로 내려갈 지름길을 찾느라 좀 더 바다 가까이로 갔더니, 정면에서 보는 파도는 생각보다 강하게 철썩였다. 바위 끝에 서 있던 청년이 물벼락을 맞을 정도로.

북쪽 해안


광장으로 걸어가 대관람차를 탔다. 나름 아담한 크기였는데 첫째가 무서워했다. 한 바퀴 돌면 내리는가 했더니 점잖은 할아버지 운영자께서 세 바퀴를 돌려주셨다. 더 돌 수도 있었는데 첫째의 요청으로 그쯤하고 내렸다.


점심은 또다시 포르투갈 식당으로 갔다. 피자나 파스타였다면 이쯤이면 물렸을 텐데 포르투갈식 밥은 언제까지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아구밥을 시켜 먹었는데, 와 정말 맛있었다. 한국 가면 아귀 사서 해 먹어야지. 이번엔 특히 시원하고 상쾌한 국물 맛에 감탄했는데 국물에서 페페론치노를 하나 찾아냈다. 고추가 내는 맛이었던 것. 알고 나니 어쩐지 속이 아픈 것도 같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어제처럼 과식하지 않았으니, 그리고 이제 순한 것만 먹을 테니 위야 잘 봐줘.


등대 남쪽의 잔잔한 나자레 해변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은 파도와 밀당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았고 우리 부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남편이 특유의 유쾌한 태도로 올해 나빴던 것들을 대서양 바다에 다 버리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허리 통증, 목 통증, 위염, 헬리코박터균을 바다에 모두 버렸다. 아, 귀 먹먹함과 조기 갱년기도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욕심이 과한가?

남쪽 해안에서 2025년 마지막 노을이라며 의미 부여


아이들이 파도에 더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길 바라는 마음에 바람잡이를 하던 남편이 그만 바닷물에 발을 된통 적셔 버리고는… 의외로 많이 불편해했다. 은근 깔끔쟁이 남편이다. 그래서 모래놀이를 서둘러 마치고 대형마트 Pingo Doce를 방문했다. 둘째가 차에 남고 싶다고 해서 나는 직접 가지 못해 아쉽다. 남편과 첫째는 (가나에서는 비싸서 살 수 없었던) 체리, 라즈베리, 양상추를 그리고 한국에서 보던 것과 꼭 같은 자태의 삼겹살을 사 왔다. 브라보!


깜깜해진 저녁 7시에 코임브라 어귀 어느 시골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했다. 오렌지 나무 한그루가 입구에 서 있고, 크리스마스 조명이 집 전면을 장식한 멋진 시골집이었다. 주방에 들어섰더니 창에도 눈 결정 모양의 조명이 반짝였다. 환대받는 기분에 기뻤다. 돌로미티에서 그랬는데 여기서 또 시골집에 살고 싶어진다.


남편이 마트에서 사 온 삼겹살을 굽고 오랜만에 한국쌀로 밥을 지어 첫째와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했다. 양상추에 고기와 된장을 얹어 쌈을 싸 먹는데 행복해 보였다. 둘째는 고기가 질기다고 김에 싸서 먹었고, 나는 호박과 양파를 넣은 슴슴한 된장국에 밥을 말아 꼭꼭 씹어먹었다. 장도 보고 요리도 한 남편 감사하다.


시골이라 그런지 집이 더 추웠다. 아이들은 나중에 씻겠다고 해서 내가 더운물을 틀어 제일 먼저 샤워를 했다. 샤워 마무리할 때쯤 물 온도가 조금 내려가네 싶었는데… 그건 내가 더운물을 거의 다 써버렸다는 신호였다. 이어서 남편이 미지근한 물에 씻었고, 두 아이들은 난생처음 찬물에 몸을 씻으며 통곡을 했다. 겨우 달래서 이불 겹겹이 덮어주고 뜨거운 물주머니 안겨서 재웠다. 2025년의 마지막 날을 지명도 모르는 외딴 시골에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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