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muse Oct 22. 2023

이젠 잊기로 해요

(feat. 아는 언니의 이야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연이 되어 지금까지 연락하는 언니가 있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지만 생각하는 것과 마인드가 젊어서 지금도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이다. 그 언니는 지금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국 남자분과 약 일 년 정도를 사귀다가 현재 헤어진 상태라고 한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은 곳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트고 지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으니, 언니의 마음과 심리 상태에도 적잖은 충격이 왔던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나에게 보이스톡을 걸며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얘기하고 나에게 화수분처럼 그 남자친구와의 얘기를 쏟아내었다.


나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한 XY의 입장을 알 길이 없는 XX염색체였기 때문에 내가 그 언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나 위로가 딱히 없어 객관적인 시각으로 언니에게 현실적인 해결책들을 제시해 주었다. ‘어차피 헤어져도 그 사람이 손해 보는 장사이니 오히려 잘 헤어졌다’, ‘최고의 보약은 운동이니 바쁘게 살다 보면 잊힐 것이다’ 등등 연애 데이터가 없는 나는 내가 아는 선에서의 지식들을 총동원해서 미련을 뚝 끊기 위한 말들을 언니에게 던져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언니의 대답은 달랐다. ‘MBTI가 00인데 앞으로 이 행동을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그때 이 말을 안 하면 되지 않았을까’ 등 자신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과거 본인의 행적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언니는 지금 그 사람을 잊기 위한 해결방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것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한 사람의 인생을 뭉개버리고 망가뜨릴 수도 있는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두 사람의 동의 하에 진행이 되지만 헤어짐은 아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마음이 식어버리면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관계’란, 어쩌면 가장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것이지 않나 싶다.


서로 마음의 무게가 동일하여 수평선을 딱 유지하는 관계라면 참 좋겠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지닌 동물인데 어찌 마음의 질량이 다 똑같을 수 있으랴. 단 1그램이라도 더 무거우면 그쪽으로 시소가 기울어지듯, 관계에 있어서도 자연스레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더 잘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밀당을 하거나 혹은 내가 손해 볼 것을 생각해서 기브 앤 테이크를 하는 행위 자체는 계산적일뿐더러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지 못한 나에게는 할 수도 없는 전략이다. 치밀한 방법을 고수할 바에야 진심을 다해서 잘해주고 나중에 헤어질 때 미련 없이 돌아서기. 이 쪽이 훨씬 속 편하고 깔끔하다.


‘더 잘해주는 사람이 손해 본다?’


단편적으로 보면 그래 보인다. 나의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투자해서 그 사람에게 잘해주었기 때문에 멀리서 봤을 때는 내 손해가 더 커 보인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진짜 손해는 상대방이 보는 것이다. 나는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끔찍이도 아껴주고 챙겨준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 없이 잘해주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자가 승자라고 나는 본다.




언니는 지금 온라인으로 연애 컨설팅을 받고 있다는데 거기서 제시해 준 내용이 참 가관이다. 카톡 프로필사진을 이런 구도의 사진을 찍어 올리라고 하는데 ‘밝게 웃는 얼굴에 의상은 여성미를 강조한 옷을 입고 자세는 측면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며.... 어쩌고 저쩌고...’ 그 말을 본 나는 음... 싶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돌아온다면, 돌아온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형을 매력적으로 바꾸어 올린 사진에 마음이 돌아서서 연락이 온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해서 또 만난다 한들 본질적인 싸움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관계는 또 반복될 것인데.. 50만 원을 내고 받은 컨설팅 내용에 살짝 헛웃음이 나왔지만 언니는 그렇게 해서라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진심은 무조건 통한다는 입장의 주의이다. 주먹구구식의 가치관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전략 따위 모르는 촌스러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진심이 통했고 고마움을 나중에라도 깨달았다면 그 남자분은 언니에게 다시 연락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는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을 놓아주고 언니가 자신의 삶과 건강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았으면 좋겠다. 밥도 잘 챙겨 먹고 몸도 마음도 얼른 다시 회복되었으면.



자꾸 보여주려는 진심은 더 거짓 같고
소리치는 행복은 오히려 불행 같다는 것.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진심이라면 통할 것이고
확인하지 않아도 행복은 정말 행복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일상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