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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Jul 19. 2020

무슨 일 하세요

수줍게, 바리스타

"무슨 일 하세요?" 

묻는다.

답한다. 

"아, 저는 바리스타인데요, 저에게 커피는 공동체와 공간이라는 가치를 실현시키는 도구예요."


직업란에 <바리스타>라는 단순 명료한 단어로 적으면 쉽게 끝날 것을, 후속 질문과 부연 설명 없이는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문장으로써의 직업을 나는 가지고 있다. 호흡도 긴 이 직업 속에 담겨있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정확히 3년 전 2017년 3월, 나는 잘 나가는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총무파트로 2년째 일하고 있었다. 20명 조금 넘는 규모에서 시작해 직원 70명을 넘길 때까지, 신논현 뒷골목 미어터지는 5층짜리 빌딩에서 테헤란로 진출에, 24층짜리 빌딩으로 두 번의 이사를 경험하며, 가족이 부족이 되고, 부족이 마을이 되는 공동체의 확장을 경험했다. 동시에 스물일곱 해를 맞은 내 안 꿈의 씨앗은 해갈되지 않는 갈증에 말라가고 있었다. 내 안 꿈의 씨앗은 무엇이었나. 2020년 3월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유'였다. 내가 나로 살아갈 자유. 물론 그땐 그게 그런 건지도 몰랐지 뭐.


 당시 나는 인문학에 완전히 꽂혀있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실천 인문학을 주창하는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6개월 넘게 공부했지만 이 속도가 내겐 더디게 느껴졌다. 더 빨리, 가능하면 모든 것을, 가령 인문학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었다. 좋은 기회에 그 학원에서 새끼 선생 같은 수업의 팀 리더를 맡게 되면서 더 많은 시간을 인문학 공부(말하자면 나를 공부하는 시간)에 들였다. 그렇게 나는 매일 나 자신과 부딪히면서 내가 누군지, 왜 태어났는지,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지, 좋아하는 건 뭔지 등 때아닌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뒤늦은 고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주 평범하게 공교육 환경을 경험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를 맞는다. 살면서 언젠가는 꼭 한 번 이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을 나는 외면하지 못했던 거고, 어떤 이는 그 짐이 가벼워서 무던히 지나갔을 테고, 어떤 이는 불편함과 어색함에 무시하고 넘어갔을 테지. 


 스물일곱이던 그때가 나에겐 도저히 넘어가지지 않는 광야의 시간이었다. 존재론적 고민과 갈증은 이게 흙탕물인지 소금물인지 분간할 정신도 없이 내 안 꿈의 씨앗의 정체를 속단하기에 이르렀고, 그 인문학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싶다는 강한 어필을 어느 순간 내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선생님이 내 꿈의 씨앗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물론 하고 싶다고 다 시켜주는 줏대 없는 곳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또 좋은 기회를 얻어 그곳에서 인턴으로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팬심마저 갖고 있던 곳이 일터가 되다니, 꿈만 같았다. 내 패기를 인질 삼기 위해 지체 없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진행하던 일의 마무리와 인수인계를 핑계로 한 달의 텀을 갖고 새로운 직업, 새로운 일터에서의 시작을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결국 그 한 달이 두 달, 세 달이 되고, 일곱 달씩이나 될 줄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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