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막 정오가 지났음을 울리는 알람이다. ‘이장로’였다가 ‘남…편’도 됐다가 가끔은 ‘영원한 내사랑’이기도 한 사람에게 걸려오는 영상 통화. 정오에 15분짜리 짧은 점심 식사를 끝낸 아빠의 식후 루틴이다. 엄마는 식사 중에 전화를 받기도 하고, 청소기를 돌리며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진전 없는 아빠의 기타 연주를 상냥하게 들어준다.
30년 넘게 산 둘의 사이가 만난 지 30일 된 연인처럼 애틋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스물 넷의 젊은 부부는 사랑에 30만원을 얹고 상경해서 서울 살이와 동거, 혼전 임신이라는 세가지 위기를 동시에 극복해야 했다. 둘은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버텼다. 큰 딸이 스물이 됐을 때 엄마는 덤덤하게 고백했다.
‘네 동생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 참고 살다가 헤어지려고 했어.’
하지만 그 인내의 시간 동안 둘은 자신의 연약함을 지나치게 많이 들켜버렸다. 사랑으로 시작해 애증이 되고 연민에 도달한 시간이었다. 연민은 에로스보다 외부 바이러스에 강했다.
손과 귀에 익은 기타 연주를 배경 삼아 점심 메뉴는 뭔지, 오전 장에서는 얼마가 올랐는지, 카메라 각도가 살이 쪄 보이게 만든다느니와 같은 시답잖은 얘기들이 오간다. 연민하는 사이끼리는 중요한 소식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무탈히 안녕 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와 연인은 그들에 비해 서로를 더 자주 궁금해한다. 어떤 날은 30분도 넘게 수다를 떤다. 그들처럼 영상 통화를 하지는 않는다. 각색된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들에 비해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각자의 시간을 설명하는 일도 잦다. 어떤 각도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연락이 그들의 그것보다 사랑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밥 얘기나 주식 시장 현황 따위는 없고 너와 나로만 가득한 대화들. 그 속에 사랑이 있을거니까. 유년시절 내가 보고 들은 사랑은 대개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간밤에 나는 하락세를 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면서 태양이 나의 빛까지 함께 쥐고 넘어간 것 같았다. 사소한 발단이었지만 금방 울음을 터뜨릴 자신도 있었다. 진짜로 울어버리기 전에 이 상태를 잠재우고 싶어 그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다. 이미 ‘잘 자’라고 말한 뒤였지만 누구에게라도 말해야만 진정이 될 것 같았다. 그와의 메신저 창을 열었다. 타이핑을 하다 멈칫했다. 그는 몇 주 동안 아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오후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서는 졸기도 했다. 그런 그를 깨워 감정 투정 부리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꽤나 귀찮겠다 싶었는데, 그보다는 영락없이 매력 없는 여자친구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훨씬 끔찍했다. 내가 알기로 나는 아직 그에게 강하고 당당하며 혼자서도 멋지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밤의 나는 내가 구축해놓은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메신저 창을 닫고 메모장을 열었다. 그에게 가려다 만 하소연이 모니터에 실렸다. 나는 결국 그에게 ‘나’를 보여내지 못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지만 연민하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부로 사랑이 지나가길 바라게 되었다. 애증을 건너뛸 수 없다면 자식이든 경제적 속박이든 사회적 책임이든 버텨낼 힘을 구하는 기도를 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연민을 맞이했을 때 크게 안도할 것이다. 인류가 땅거미와 함께 소멸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 사랑보다는 연민에 가까웠을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