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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Feb 26. 2022

나는 내가 될 거야


 “나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까?” 

7살 어린 동생에게 다 큰 언니가 한탄했다. 전 직장 후배가 올 가을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호기롭게 퇴사해서 보름 동안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 있는 나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녀의 포부였다. 영어학원도 등록했고, 함께 떠날 반려묘 출국 준비도 착착 진행중이더라. 딱하지만 철 없는 나의 절규에 그녀는 답했다. 

“아람님은... 아람님이 되실 거에요.”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장래희망은 가수였다. 이른 사춘기로 11살때부터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를 따라다녔다. 교복 입은 언니들에 둘러싸여 입장을 기다리는 건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 나는 일이지만, 금기를 깨고 어른의 세계로 입장한 자의 왠지 모를 우쭐함도 있었다. 나보다 고작 5살 많았던 보아 언니의 <NO.1> 안무를 따라하며 나도 진짜 가수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TV 속 보아와 거울에 비친 나를 번갈아 보며 가수의 꿈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로는 선생님을 새로운 목표로 세웠다. 일산동중 2학년 3반에서 유일하게 나랑 손 잡고 다니던 남자애랑 약속도 했다. 너는 아버지 직업 따라 군인이 되고 나는 선생님이 되어 공무원 부부가 되기로 말이다. 2학기 말에 그 애랑 더 이상 눈도 맞추지 않게 되었을 무렵에는 선생님이란 직업도 재미없게 느껴져 그만 두었다.


 이후로도 나는 MBC <러브 하우스>를 본방 사수하던 시절에는 장차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될 사람이었고, 반 아이들 사이에서 각종 심리테스트가 유행할 때는 심리 상담가가 될 거라며 중앙대 심리학과에 수시 원서를 내기도 했다.



 나는 본 것, 경험한 것, 새롭고도 멋지기까지 한 것을 기민하게 흡수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보지 못하면, 경험하지 못하면, 멋 없게 느껴지면 파란 알약을 선택한 네오가 되어 매트릭스 안에 주저앉고 만다. 운 좋게도 나는 국경을 넘고, 대화의 경계를 허물고, 관계를 확장해 매트릭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고,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자신감도 어느정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깨달음 이후, 나의 꿈이 어느 것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의외의 곤란에 처하게 되었다. 촉망받는 IT 스타트업에 잘만 다니다가 요상한 교육자가 되겠다고 퇴사를 했지만 결국 백수가 되었다. 계속 놀 수만은 없어 용돈 벌 요량으로 카페에 들어가서는 4년이 넘도록 커피와 기타 등등을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사람으로 살기도 했다. 짧지 않았던 사회 생활, ‘나’라는 돌다리를 하나씩 두드리며 나아가던 학창시절 못지 않은 변태의 과정을 겪었다. 조금 더 어른이던 나는, 그래서 성충이 되었을까?


 ‘아람님은 아람님이 될 거에요.’라던 후배의 말은 우문현답이었다. 지금의 나는 장래희망을 이야기하기엔 도무지 그 ‘장래’라는 것이 언제 오는지 더는 기약할 수 없게 되었고, ‘희망’은 오히려 고문이 된 지 오래다. 나는 그냥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 장래희망을 정했다. 언제고 꿈만 꾸다 말아버리는 장래희망 말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사는 태도가 장래와 희망이라는 단어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인 것 같다. 지금 내 앞에 놓인 바로 그 돌다리가  나에게로 향하는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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