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시장에서 사 먹은 첫 독일 소시지
100개의 제안을 넣는 것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집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프랑크푸르트. 우리에게 대체 어떤 운이 따랐던 것인지 우리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방문했던 그 집이 우리의 첫 보금자리가 되었다. 수요일에 집을 보고, 목요일에 우리와 계약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금요일에 계약서를 작성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진행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혹시 사기 당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집주인과의 정식 계약이 아닌, Untermietvertrag이라고 불리는 단기 계약을 체결했다. 주 세입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정 기간 동안 집을 비우게 될 때,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집을 임대할 수 있는데 이럴 때 체결하는 계약이 Untermietvertrag이다. 우리 집의 경우에는 기존 세입자였던 사마론이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집을 내놓게 되었고, 단기 계약과 집주인을 통한 정식 계약 중 원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아직 1년 후에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 지 정확한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의 기간으로 계약했다.
우리가 살게 될 집 안에서 계약서를 쓰고, 보증금과 월세를 입금하면서도 지금 이 상황을 계속 의심했다. 사마론은 정말 내 돈을 들고 튀지 않을까? 다음 날 다시 이 집에 왔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다거나, 집주인이 찾아와서 너는 도대체 누구냐며 길 바닥으로 쫓겨난다거나, 온갖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돈을 입금했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겨야 했다.
사마론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시청에 거주 등록을 할 수 있는 문서까지 직접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두 세트의 열쇠 꾸러미를 주며 본인은 따로 열쇠를 갖고 있지 않고 우리에게 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계약 시작일은 2월 1일이었지만 그 전에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사해도 된다며 그녀는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쿨하게 떠났다.
아직도 도어락 대신 대부분의 문에 열쇠를 쓰는 독일에서는 열쇠를 건네 받는 것이 진정한 계약의 완료라고 여겨진다. 열쇠가 보안의 핵심이기 때문에 집주인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열쇠를 복사할 수도 없고 열쇠를 잃어버리면 다세대 주택의 경우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해 공동 현관을 교체하기도 하기 때문에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독일인들은 열쇠 보험을 들기도 한다.
사마론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왔던 우리는 열쇠를 손에 든 채 거리에 남겨졌다. 그리고 얼떨떨한 기분과 의심을 품은 채 다시 돌아가 정말로 이 열쇠로 이 집을 열수 있는 건 지 테스트했다. 우선 공동 현관이 열렸고, 집도 문제없이 열렸다. 정말로 이 집이 우리의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집이 생겼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아주 어릴 때부터 꿈꿨던 해외생활을 이제 정말 시작한다는 희망적인 감각이 밀려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산과 함께. 둘이 처음 함께 살았던 첫 신혼집을 구했을 때보다도 더 기분이 좋았다. 좋은 위치에 좋은 가격으로 구한 아담한 우리의 공간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이사를 미룰 이유가 없었고, 바로 다음 날 새 집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마인츠의 숙소와 프랑크푸르트의 집은 전철로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겨우 10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생필품을 조금 구입했을 뿐이었는데 짐이 늘어났고, 한국에서 올 때처럼 다시 캐리어가 터질 정도로 짐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중교통 일일권을 끊고 두 번에 걸쳐 우리의 살림살이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반씩 나눠서 옮기면 수월할 거라는 건 우리의 오산이었다. 100kg + a 의 짐을 나눠봤자 50Kg이 넘었고 한 겨울이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각자 두 개의 캐리어를 끄느라 낑낑댔다. 맨 몸으로 걸어갈 때보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렸다.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도저히 바로 다시 돌아갈 힘이 없었다. 꼬르륵거리는 배도 채울 겸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나보다 짐을 더 많이 옮기고 힘들어 하는 산을 집에 혼자 남겨 두고 먹을 걸 찾으러 나왔다. 마침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장날이었다. 고작 1-2분 거리에 펼쳐진, 신선한 과일과 채소, 생선, 고기 등을 파는 활기 넘기는 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긴 줄이 늘어선 한 가게를 발견했다. 뜨거운 그릴에 직접 만든 소시지를 바로 구워 파는 곳이었다. 칙- 하고 신나게 구워지는 소시지와 능숙하고 재빠른 수염 난 아저씨의 손놀림, 뿌옇게 퍼지는 연기가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힘을 채워 줄 메뉴, 낙점이다.
내 앞의 사람들은 핫도그처럼 빵에 끼운 소시지를 받아가는데, 메뉴판에는 그냥 소시지 단품만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핫도그‘라는 메뉴는 없었고, 짧은 독일어로 꼬치꼬치 물어볼 마음도 없었다. 결국 주는 대로 먹자… 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고, 마음 속으로 주문할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Ich hätte gern zwei Würste.(소시지 2개 주세요.)“ 하고 말했다.
터프한 외모의 아저씨는 어떤 소시지를 원하냐며,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만든 소시지가 있다고 했다. 나는 하나씩 달라고 했다. 그러자 빵을 같이 줄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소스를 선택해야 했다. 케첩과 머스터드가 있었는데 또 하나씩 달라고 하자 어디에 뭘 뿌리냐고 물어봐서 겨우 돼지고기 소시지에 머스터드, 소고기 소시지에 케첩을 뿌려 달라고 했다. 후. 어려운 주문이 끝나고 내 앞에 소시지빵 두 개가 놓였다. 양 손에 들고 가기가 어려워서 망설이니 친절한 아저씨는 포장을 원하냐며 바로 봉투에 넣어 주었다.
시장에서 혼자 소시지빵 주문하기에 성공한 후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먹는 제대로 된 소시지였고, 빵은 추가 금액 없이 받아서 괜히 더 기분이 좋았다. 고기의 비율이 높아 단단하면서 뽀득하고 짭조름한 소시지는 정말 맛있었다. 딱딱한 빵에 입 천장이 까지면서도 사라지는 걸 아까워하며 왕왕 베어먹었다. 산은 금세 하나를 다 해치우고는 내 몫까지 탐낼 정도였다.
소시지 파워를 얻은 후 힘을 내서 다시 마인츠로 돌아갔다. 나머지 짐을 모두 정리해 캐리어에 쑤셔 넣고 빠진 게 없는지 집을 살펴본 다음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쾌적했지만 인터넷이 안 되어 우리를 힘들게 했던 집. 그럼에도 우리가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머물렀던 집.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고 다시 프랑크푸르트까지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프랑크푸르트의 집. 이제 정말 여기가 우리가 살게 될 곳이었다. 독일의 모든 슈퍼는 일요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짐을 대충 정리한 다음 서둘러 내일 먹을 재료들을 사왔다. 슈퍼에서 사 온 맛없는 초밥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사마론이 두고 간 이불은 둘이 덮기에 작았지만, 덕분에 꼭 붙은 채 누워 있었다. 바깥 공기는 추웠지만 서로의 온기로 데워진 이불 속은 따뜻했고,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우리의 행운에 대해 속닥대다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