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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Dec 04. 2023

나는 자연의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우리 모두는 경이로운 존재이며 존엄의 대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부여받아 이 땅에서 삶이라는 여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생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 더 작은 입자로 쪼개지지 않고 그 자체로 가장 근본적인 입자이며 내부구조가 없는 쿼크가 빅뱅이라는 에너지원을 통해 원자가 되고 분자가 되고 세포가 되고 기관이 되어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리고 그들의 자손으로 무수히 많은 시간을 거치고 각기 다른 환경과 경험과 기억을 거쳐 오늘날 나의 생명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만들어지고 천체의 무수한 배열중의 어느 날, 어느 시간과 분, 초에 생성된 우주 에너지를 받고 지금의 나로 태어났다. 이는 자연이 만든 기적이 기적을 무수히 반복해서 낳은 결과이다. 그렇게 나와 너는 자연의 가장 위대한 기적이 되었다.    






피터 드러커를 공부하고 있다. 경영의 실제를 비롯한 필도서 5권을 공부하는 1년 과정의 모임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 넘었다. 얼마 전 첫 오프라인 모임을 광화문 근처에서 하였다. 전체 스무 명이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이나 개인 사정들이 있어서 총 여덟 명이 서울을 포함해서 대구, 울산, 부산 등에서 왔다. 스무 명 중 열일곱 명이 기업경영을 상당기간 해왔던 분들이라 사오십대에서부터 육십 대까지가 주 연령대였다.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만난 자리라 반갑기도 하면서 어색하기도 하였다. 이내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은 누구이고 자신의 업은 무엇이고 자신의 어떤 강점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은 무엇이고 앞으로 10년 후의 나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먼저 소개한 사람이 나중에 자기소개할 사람을 지목하였는데 곧 내 차례가 되었다. 


자기소개는 어렵다. 나의 첫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기에 그렇다. 잘하려고 하면 어려워지고 전달도 잘되지 않는다. 몸에 힘을 빼고 첫 번째 내뱉은 문장을 붙들고 의식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온 라나입니다."라고 일반적인 소개를 하고 참석하신 분들과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는 나이가 오십이 되면서부터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첫마디에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이 내가 모임 구성원들 중에서 평균보다 젊어서인지, 젊어 보이는 외모 때문인지 벌써부터?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반응에도 마음의 동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상반기 인생을 생존을 위해 너무 치열하게 살다 보니 마흔 후반에는 번아웃이 와서 남은 인생을 다시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뭔가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뛰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자전적인 에세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내 인생에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살았고 직업도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선택해서 들어왔고 아버지의 연이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고통을 그대로 감당하면서 탈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결국은 관계도 망가지게 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니까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하여 남 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반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에게 끌려서 살았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내가 모든 책임을 달갑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을 원망하지 않으려면 내 인생을 새로이 세팅을 해야 했고 나이 오십이 넘어서 새로 태어나기 위한, 후회 없이 숨을 거둘 수 있는 변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삶, 새로운 커리어 개발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책도 출간하였습니다."


"세상에 나오는 것은 내가 결정하지 못했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내가 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에서 후회가 남지 않고 우아하고 존엄하게 마무리하고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한창 일해야 할 것 같은 나이에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매 순간을 살지만 동시에 또 죽고 있지 않은가. 다만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는 지금은 좀 더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다. 죽는다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할 때 두렵다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온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인생을 그래도 잘살았구나 하고 자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혼자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내가 충분히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모험과 도전을 해왔더라면 혼자여도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없다. 무엇을 옳고 다른 무엇은 틀렸다고 정의하는 편협한 생각만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에이블에게 뇌경색이 일어났다. 마침 같은 차에 내가 있어서 응급실로 향하였고 빠른 조치로 다행히 그는 지금 회복 중이나 실어증이 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나를 생각해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모임의 보험설계를 하는 사람에게 보험 변경가입을 한지 두 달에서 이틀이 모자라는 시점에 병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새로 가입한 보험에서는 3개월간의 그레이스 기간 때문에 보상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해지한 보험을 다시 살려서 보험금을 받아야만 했다. 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수고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조정을 시작한 지 두 달째 되는 어느 날 생각보다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고 다행히 치료비를 커버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에이블이 보험금을 많이 받았다면서요?"

에이블에게 현재 보험으로 보험 갈아타기를 시켰던 그이다. 

"그래? 그건 에이블 돈이라 나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사람이 지금 말을 못 하는데 보험금 많이 받았다면서요? 하고 전화를 하는 게 맞는가 싶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본론이 이어진다.

"내가 언니가 걱정이 돼서 그래요. 에이블의 경우처럼 사고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데 언니가 보험준비가 너무 안되어 있어요." 

두어 달 전 에이블에게 보험 갈아탈 것을 권장하기 전에 이미 나를 거쳤던 그녀이다. 그때 나는 집이 팔리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었다. 

"이번에 강의 준비하는 거 내가 도와줄 테니 언니도 이 참에 보험하나 들어요"


나이가 들수록 납입금이 많아지는 보험을 결국 들지 않았다. 그래서 원 플러스 원 상품이던 강의안 준비도 흐지부지하다. 그럴수록 우리 모임의 전체 강의과정을 총괄하고 있는 그녀에게 더 묻고 더 열심히 준비하며 진도를 내야 하는데 마음 같지가 않다. 지난 주말에는 우리 모임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성과발표회 워크숍이 광주에서 열렸다. 작년보다 훨씬 규모가 커진 듯하다. 그곳에서 만난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성과 지향적 성향의 그녀에게서 성과를 낼 수 없는 나는 이제 고스트가 된 것 같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밟을 때 교실에서 발표나 질문도 없는 존재감 없는 사람을 코스팅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유학생들이 수업 중 질문이 없고 조용해서 코스팅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하는 옛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씁쓸하다. 원래 선악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는 그녀 인생을 나는 나의 인생을 살뿐이다. 






만약 내가 말기암에 걸려 육 개월 남았다고 의사가 진단을 내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치료를 위해 여기저기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수술을 받고 아니면 위독하여 인공호흡기를 달고 대소변을 누군가에 의해 받아내야 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지만 죽음마저 남의 손에 맡기게 된다면 삶 속에서 확실한 두 명제, 태어남과 죽음 모두를 남의 손에 의해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뱀은 생명을 버릴 때를 안다고 한다. 때가 되면 일체의 음식을 취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미물도 생명을 결정할 줄 안다. 하물며 사람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존엄을 내려놓고 산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얼마 전 자승스님께서 스스로 입적하셨다. 그는 '검시할 필요 없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이라는 메모를 남기고 칠장사 요사채 거처에서 화재로 생을 달리 하였다. 요가의 대가 요기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한다고 한다. 자승, 그도 요기처럼 돌아갈 때를 결정하기를 원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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