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연속 친절택시로 뽑힌 기사님과의 인연
어느 날 카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잘 계시죠… 이번에 유튜브를 개설했습니다. 다음에 한번 모실 기회가 있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수고하세요’
그는 몇 년 전 출근차 탔던 개인택시 기사님이었다.
‘오~, 잘 계셨어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 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나서는 그가 시작했다는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이제 개설한 신규 채널이라 동영상이 아직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택시에 탄 승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며 일반 사람들의 다양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테마를 잘 잡았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유튜브를 할 때에는 끊임없이 콘텐츠 제공이 가능한 분야를 선정해야 하는데 택시를 운행하는 동안 그의 택시를 이용하는 고객은 계속 존재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는 채널 소개 영상을 클릭해서 보았다.
‘저희 직업은 택시기사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기만 했던 때를 지나 지금은 하루에 12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근무를 마칠 때면 고단함이 짓누를 때가 많지만 자신으로 인해 많은 분들의 소중한 시간과 약속이 지켜진다는 것에 작은 보람을 느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 안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와 안부를 물으면 선뜻 마음을 열고 기쁜 소식, 힘든 일상 때로는 가족에게도 말 못 하는 얘기를 털어놓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택시라는 공간은 대나무 숲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기쁨을 나누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니 약점이 된다는 말도 있지만 저희 택시를 타는 분들에게 만은 때로는 친구처럼 또는 가족처럼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변치 않는 대나무 숲이 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쁨을 나누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니 약점이 된다는 말은 내가 평소 직장 내에서 느끼고 있던 바라 그가 어떻게 유튜브를 운영해 갈지 궁금해졌다. 고민 없이 구독과 좋아요를 눌렀다
그로부터 한 달 반 후 작가의 첫 책인 “공무원 라나 언니”가 세상에 나왔다. 나는 대나무 숲 택시 기사님한테 출간 소식을 알렸다.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책을 사서 읽어보겠다고 한다. 며칠 후 그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친구의 첫 작품이 공무원 사회의 반향과 공무원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침서가 되기를 빕니다. 또한 저희 딸아이에게도 말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신 친구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도 기대합니다. 그럼 이만’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또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다 읽고 리뷰 적었습니다. 수고하세요’라는 그의 짤막한 메시지에 부탁도 하지 않은 서평을 적었다는 말에 고마워하며 보내준 링크를 클릭했다.
‘스무 살 어린 숙녀 라나가 살아왔던 젊은 날의 이야기와 한국 공직사회가 구조적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평범하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그것으로 인해 작가에게 많은 도전의식과 자유를 주었던 것 같다. 내용은 목차에서 읽어봐도 잘 알 수 있듯이 정리가 참 잘되었다. 문득 나쓰메 소세끼의 도련님이라는 소설이 조금 떠오르기도 한 에세이 형식의 책이다. 단원마다 에피소드별로 정리가 잘되어 읽기는 편하다. 다만 책 속에 많은 자료들을 담고자 했던 작가이 욕심으로 인해 조금 매끄럽지 못한 부분과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생략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처녀작인 만큼 더욱 좋은 작가가 되리라 본다. 이 책을 통해 공무원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롤모델이 되리라 확신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하버드도 서울대도 아닌 조금은 똘끼를 가진 자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 저자가 그런 듯하다. 마지막으로 콤플렉스를 가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전에 대한 욕심의 결과라 믿는다. 살아온 지금까지 삶… 임경란 다웠다.’
의외였다. 내 책을 꼼꼼히 읽고 내용에 대해서 공감하지 않고는 이렇게 서평을 적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 고마웠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끼의 도련님을 생각나게 한다니. 참 영광스럽기도 했다. 이런 그를, 직업도 공무원과 택시기사라는 한창 친구를 만나는 젊은 때가 아니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진실한 친구 하나 만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어쩌면 전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인데 우리가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을까?
출근길에 택시를 탔다. 기사님께서 친절하게
“안녕하세요, 많이 추우시죠”라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다.
“네,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하고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로 갈까요?”라고 묻는다.
“구 경북도청 자리 부탁드립니다”라고 답했다.
맞다. 나는 원래 시청 갑니다 식으로 근무지를 말하지 않고 공평네거리요 하며 사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서 출근한다고 “공무원 답하는 것은 무엇일까” 에피소드 편에서 말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ranayim/15
그러나 시청 건물의 공간 협소로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는 대구시청 조직 중 별관에서 근무하던 조직들이 2016년 하반기에 모두 경북도청이 안동으로 떠난 자리로 이전하면서 시청 별관외에는 다른 직장 사무실이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곳에서 내린다고 둘러댈 수 없게 되었다.
“시청에 근무하시나 봐요?”
“아…네.”라고 답하며 속으로 역시나 시작되었군 하고 생각을 했다.
“저도 택시물류과에 종종 갈 일이 있는데 어느 부서 근무하세요?”
“네, 그러시군요. 저는 국제통상과에 있습니다.”
“오~ 국제통상과에 근무하시면 해외교류나 뭐 그런 국제업무 분야에서 일하시는 거예요? 대단하시네요, 그럼 영어도 잘하고 그러시겠네요?”
“꼭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할 줄 알면 도움이 되죠”라고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저는 올해 친절 택시기사로 뽑혀서 그거 관련해서 택시물류과에 몇몇 갔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아시죠? 그분 대구시장 출마하신다고 하시면서 민생탐방 택시기사로 대구투어 시작하기 전에 제가 모시고 대구 안내도 하고 그랬죠”
“오, 대단하시네요” 정말 그랬다. 어떤 우연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튜브에서도 저를 찾으실 수가 있어요, 000로 찾아보세요” 그런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서 찾아보니 정말 택시 기사님이 김문수 전 경기도시사, 지금은 대구시장에 출마하겠다는 그 분과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온다. 참 신기한 하루의 시작이다. 왠지 명함이라도 받아 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명함 있으세요?” 했더니 “네” 하면서 노란색 명함을 내민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그가 운영하는 대나무 숲 택시 17번째 손님으로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5급 사무관이 된 30년 차 공무원, 책 공무원 라나 언니의 저자, 그녀의 인생 도전은 진행 중’이라는 편에 출연하게 되었다. 첫 책의 출간을 축하한다면 꽃화분까지 준비해서 주시는 기사님을 보면서 고맙고 마음을 열면 언제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될구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대구시가 추진하는 교통법규와 방역 수칙을 준수한 친절택시기사 200명에 다시 선정이 되었고 그중 제도가 처음 생긴 2016년부터 지금까지 연속 6회 선정된 기사는 총 15명인데 그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에 그가 나를 축하해주었듯이 나도 그를 축하해주어야겠다 싶어 꽃다발을 준비해서 행사장인 교통연수원으로 향했다.
행사장에는 코로나로 사전 방역과 차분한 가운데 친절택시기사로 선정된 이백 명 이외 행사 관계자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 있었는데 저쪽에서 나를 발견하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가 보인다. 축하한다면서 건넨 꽃다발을 받으며 고마움에 상기되어 있는 기사님의 얼굴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을 만들어 교통체증을 뚫고 여기까지 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짧은 축하 인사를 주고받고는 먼저 자리를 나왔다. 3일 후인 2021년 12월 31일에 그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큰 사건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보니 임경란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란지교를 꿈꾸며 라는 글처럼 그런 친구가 서로에게 되기를 바란다며 내년에는 두 번째 책 발간, 보디빌딩 대회 입상, 그리고 역량을 더욱 펼쳐서 대구시를 대표하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였다. 지란지교. 정말 오랜만에 듣는 단어이다. 저자가 중학교 시절인 1986년 때 읽고 그 시대를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글인데 삼십년이 넘게 흐르니 기억이 흐릿하다. 시 낭독 유튜브에서 나오는 감성적 목소리로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 유안진(1986)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평제나 제 자식 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론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흰 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며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읽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창문을 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면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손이 작고 어리어도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니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어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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