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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Feb 02. 2022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인정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성찰로 내 안의 평정심을 찾아서

"안 본 사이에 별걸 다 했네. 뭘 아직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   

깔깔대고 웃다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재미가 없어서 그래, 그래서 쥐어 짜내고 있는 거야.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싶어서, "


오랜만에 만난 한때는 같은 부서에서 친하게 지내며 일했던 직장동료가 최근 인사이동으로 인해 같은 건물에서 일하게 되었다. 반가워 근황을 캐치업하기 위해  복도에서 만나 북카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작년에 내 책 나온 거 알아?"

하고 물었고 그녀는 눈이 동그레 져서는

"뭐? 책을 냈다고?"

하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본관(대구시청은 사무공간이 협소하여 본관, 별관으로 나뉘어 행정을 보고 있다)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벌이는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2020년 8월부터 준비해서 작년 10월 책으로 나온 나의 첫 책 '공무원 라나 언니'의 발간 소식을 모르고 있었던 그녀가 말한다.  


홍보가 안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준비하는 일 년 반 동안 친한 친구를 포함해서 주변에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무엇을 벌리고 있는지 말을 하지 않았고 재정적으로 마케팅 여력이 없는 지역의 작은 독립출판사와 계약을 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책을 팔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탓도 있다. 출판사에서는 나랑 계약을 하면 직장동료와 공무원을 희망하는 취준생들에게 팔릴 것을 기대하는 눈치이다. 내가 직접 발로 뛰면 본인들이 굳이 열심히 마케팅을 하지 않더라도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 있는 듯하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는 내 성정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은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부정적인 말로 기를 꺾는 사람들도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돈은 얼마나 드는데?'라든지 '그런 내용으로 책이 팔리겠어?' , 아님 '공무원 사회에 대해서 말했다가 그 후 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나라면 절대 안 하겠다'라든지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오랜 공직에 대한 경험으로 그 정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왜 여러 출판사에 글을 돌려서 가장 좋은 조건의 출판사와 계약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내 이야기가 여기저기 읽혀지는 것이 싫었다. 내 글에 대한 출판사들의 비평으로 인해 치유를 위해 쓴 글이 오히려 나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다. 그럴 거면 뭐하러 출판했냐고 하겠지. 그건 언젠가는 그가 나의 글을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나의 동생이다. 어릴 적 부모님들로부터 같이 상처받고 또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지금은 너무 멀어져 버린 내 동생. 우연히라도 내 소식을 듣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팀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엑스코에서 새로이 제안하는 수소 관련 콘퍼런스 브리핑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개방형으로 들어온 젊은 과장이 하는 말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책도 내시고 또 젊은이들도 힘들다는 바디 프로필에 매일 경제신문을 보시는 것도 그렇고 박사 공부까지 하시잖아요. 저도 원래는 운동하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요즘 시간 내기가 진짜 힘드네요. 언제 시장님이 찾을지 몰라 항상 대기상태인지라 개인 일정을 잡는 것이 자유롭지 않고 또 아시다시피 목 디스크 때문에도 운동하기 힘들고요. 그래서 항상 생각만 하고 실천을 못하고 있는데 팀장님은 행동하시잖아요. 정말 많은 젊은 동료들이 본받고 싶어 할 거예요."


느닷없는 그의 칭찬이 어색하다. 항상 계약과 재계약을 반복해 가며 경력을 이어나가야 하는 불안한 개방형이라는 직위에 있기 때문에 직장 내 적을 만들면 안 된다. 항상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 그러한 그의 특수한 입장도 있지만 지난 3년간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안 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말만 듣고 나에게 맘을 열지 않았던 그인지라 그의 칭찬이 더 거북하다. 그러나 같은 직장, 부서에서 일하고 있고 근무평정에서 우선권을 주는 주무팀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면 과장과의 합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을이다.


그는 열심히 일한다기보다는 현명하게 일한다고 할까. 자신이 잘하는 분야 그리고 자신이 꼭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열심히 어필한다. 나머지는 각 팀장한테 맡긴다. 처음 공직에 들어올 때 국제교류와 협력 전문가로 들어왔기에 해당 분야에서는 디테일한 것까지 꼼꼼히 챙기나 조직개편으로 새로이 맡게 된 통상이라던지 마이스산업의 경우는 해당 팀에 맡기는 편이다. 또한 개방직으로 들어온 경우 상당기간 근무해야 노하우가 쌓이는 조직이나 인사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 보니 시 전체 인사명령이 나면 항상 각 부서에서 기피하는 직원이 우리 부서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부서장의 인사권한을 바로 옆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주무팀장이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 관심사만 챙기는 경우 부서 전체에 더 불리한 상황이 형성된다. 우리 부서의 경우는 일 년 전에 주무팀장으로 온 사람이 가장 선임이면서도 진급도 못하고 다른 팀장의 근평을 누르고 있어 이번 인사에서 직원이 아닌 팀장 이탈이 요동쳤었다. 나의 경우는 사무관으로 승진한 지 만 3년이 넘어 이제 고참소리를 듣는다. 나보다 후임 사무관이 많은 곳에서 주임 팀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 그들보다 선임인 나를 받아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서는 언제든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욕을 먹으면서 까지, 그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까지 무리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아 그냥 눌러앉아 있기로 했으나 지금부터 근평 한번 한 번이 중요한 시기인 만큼 맘이 편할리는 없다.


승진을 포기한 직원이 조직에서 제일 무섭다는 거 공무원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열심히 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한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나이까지 먹으면 빠릿빠릿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승진에서도 점차 배제되고 있다. 이번 인사에 우리 부서로 온 66년생 사무관도 이제 공로연수까지 4년 남았는데 자기보다 젊은 사무관 선임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5급 정년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워라밸을 포기하면서까지 일 할 필요성을 못 느껴 사업소로 전보를 신청한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지는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내가 안다. 그러나 사업소로 전보 신청한 많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무관중 가장 젊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케이스였다.


의욕이 떨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한 단계는 더 올라가겠지 그러나 그게 끝이다. 물론 자기 생활 다 포기하면 그 이상도 욕심낼 수 있겠지만 그러다 정년으로 나오면 뭐가 남겠는가. 매슬로우의 인간욕구 5단계(생리적 욕구 - 안전에 대한 욕구 - 소속과 사랑에 대한 욕구 - 자기 존중에 대한 욕구 -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에서 보면 나는 자기 존중의 욕구에서 결핍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그럼으로써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ENTJ 타입인 나에게 우선 욕구인 타인으로부터의 좋은 평가와 인정, 존중이 충족되고 있지 않다. 나의 가치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나 동시에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타인의 의한 인정 욕구가 충족이 안돼서 인지 지금은 나한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뭐가 중요해. 내가 나의 가치를 알고 존재 의미를 깨우쳐 자기 존중에 대한 욕구보다 높은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걸로 된 거지 남들의 존중을 얻기 위해 눈치를 보며 살 필요는 없다고.


인정 욕구에 휘둘리지 말고 나의 가치와 진정성을 찾아 진정한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나 이니까. 결국은 행복해질 나 임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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