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랜드 패밀리가 완전체로 마지막 저녁하던 대구 어느날 밤
태어나고 자란 곳도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서 모두 만나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그들은 나보다 5살 이상 많았고 인도계 미국인인 수지는 나보다 10살이 많았다. 우리는 모두 50~60대였다. 그런데 한국의 20~30대 보다 재미있다. 우리는 항상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언제나 그 순간을 즐기며 산다. 얌전한 내가 완전히 빠져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면서 미미는 순진한 나를 자기가 망치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 멤버들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다. 수지는 헬리콥터 맘이었다. 보살핌이 지나쳐 우리 를 고3 아이에게 엄마가 그러하듯이 과잉보호를 했다. 이럴걸 영어로는 Smothering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게 되면 차량 렌 탈부터 숙소 예약과 삼시세끼까지 무엇을 준비하고 먹을 것인지 상세히 조사해서 각자에게 준비할 것을 알려주면 우리는 고민 없이 따라하면 되었다. 그녀는 우리를 그렇게 챙기면서 기뻐했고, 우리도 고마워했다. 필리핀 출신인 코코와 제리는 엔터테이너이다. 음악과 춤을 항상 즐기는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모임이 그렇게 웃음이 넘치지는 않았을 거다. 뉴요커인 미미는 설계자이다. 항상 무언가를 기획한다. 그리고 나는 커넥터이다. 한국문화와 외국문화 를 연결해주는 다리 즉 매개 역할이다.
우리는 계속 구실을 만들면서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수지의 일본인 친구 어머니가 살던 집에서의 오싹했던 하룻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물찬제비 미첼에게 서핑을 배웠던 추억의 강원도 양양비치, 국적불명의 요리와 함께 즐거웠던 칠천도의 파란 바다, 뜨거운 햇살로 벌겋게 태운 등짝에 가득 붙인 하얀 마스크 팩의 추억이 있는 보라카이 등, 함께 만들어 간 즐거웠던 기억들을 우리들의 행복 저장소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리고 주말이면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아지트인 미미랜드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헤비메탈과 올드 록을 좋아하는 우리라서 언제나 음악과 노래가 함께였으며 밤새도록 끝나지도 않을 것 같은 수다를 떨었다.
만남은 이별을 동반하는 법. 수지와 미첼의 체류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미국으로의 귀국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아지트에 모였다. 퇴근 후 가보니 벌써 마마 수지가 음식을 떡 하니 차려 놓았고 성급한 친구들은 벌써 취해 있었다.
“라나, 왔어? 어여 저녁먹자”
하며 수지가 이것저것 내 접시에 담아준다.
그렇게 다 같이 모여 수지의 일본친구의 도쿄 집에서 보냈던 공포의 하루 밤, 보라카이에서 수지에게 접근했던 이탈리아 남자, 강원도 양양에서 처음 서핑을 배우던 날, 경주에서 글램 핑 할 때 찍었던 비디오 등을 돌려보며 웃다가 울다가 하였다.
“이제 수지가 가면 우리 모임도 예전 같지는 않겠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것을 미미가 얘기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고 코코가 낮은 목소리로 답한다
“맞아. 분명 그렇겠지”
“수지는 이렇게 보내지만 코코 네가 떠날 때는 집에 있는 거 뭔가 하나는 박살이 날거야”
라고 미미가 말한다. 그러자 코코는 물끄러미 미미를 쳐다봤다.
조용히 듣고 있던 수지가 촉촉한 눈으로 한명 한명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리와 봐. 다 한번 안아보자”
우리 여섯은 그렇게 서로를 안으며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 나이 먹을수록 자존심만 커지고 상처받기가 더 두려워져서 쉽게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렵다. 게다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지식이 굳게 자리 잡고 있어서 상대를 설득하려고도 설득당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처 주기도 싫고 상처 받기도 두렵다. 나를 내려 놓을수도 없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문을 닫아버린다. 외로울수록 힘들수록 더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상처받기 두렵지만 계속 부딪혀서 마음의 궂은살을 만들어야 한다. 이럴때 필요한게 친구다. 나이들수록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위로가 되줄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데 의지도 몸도 약해지고 재정적인 여유가 없지면서 친구만들기는 더욱 힘들어져 간다. 그동안 잘지내온 친구도 영원한 건 아니다. 우정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한 때 죽고 못 살아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진다.
젊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친구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 후 고독을 극복하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선 좋은 친구를 가까이 두는 게 필요하다. 이는 하버드 대학에서 지난 75년(1938년~2013년) 간 하버드대학생에서 보스턴 빈민촌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724명 대상자의 일생을 연구 관찰한 보고서인 “행복한 삶의 비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질이 높은 사람들의 비밀은 가족, 친구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수십 년간 이어지는 친밀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또한 그런 좋은 인간관계가 두뇌건강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좋은 관계형성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다.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미처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위해 거리두기 단계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숫자 제한없이 만날 때는 몰랐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에 삼삼오오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 커피 한잔을 할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귀한 시간이란 것을. 서로간의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정도 느끼면서 심신의 안정감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하여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가족도,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동료 및 친구도, 그저 신천 강변을 산책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 모 두가 그러하다. 어쩌면 그저 숨 쉴 수 있다는 것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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