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지금 친구가 필요해

혼자인 삶을 연습하면서도 항상 솔메이트를 그리워한다.

by Rana

잃어버린 청춘에 언제 가는 찾아오는 보상심리

나에게 스무 살은 없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적 관계 맺기를 배우고 다양한 도전을 통한 실패와 성공의 경험으로 나에 대하여 공부했어야 할 귀한 시간을 놓친 것이다. 나를 모른 채로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전공이 직장으로 연결되지도 않았고 직장생활은 너무 생소했다. 그리고 주변에 멘토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아버지는 새엄마의 눈치를 보며 1, 2등급을 왔다 갔다 하는 성적의 딸이 대학 진학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제부터 당신 딸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말하며 나의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였고 마침 고3이던 남동생은 입시라는 발등의 불을 처리하느라 누나의 상황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나 또한 동생에게 하소연하며 맘에 부담을 얹어주기 싫었다. 아버지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은 새엄마는 “아버지 월급으로는 니 등록금을 줄 수 없으니까 공무원 시험을 쳐서 네가 벌어서 가던지 알아서 해”라고 하며 일찌감치 재정지원은 없다라며 선을 그어놓았다. 그렇게 하루 밤사이 180도로 변한 낯선 상황 (#공무원라나언니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아니면 글을 연재하면서 나중에 에피소드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에 처한 나는 또래의 학생들과 같은 평범한 대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모르던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무작위로 받아들이며 나의 강점과 단점을 알지 못한 채 이십 대 삼십 대를 지나 오십 대가 지나갈 즈음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나이가 사십을 넘어 중년이 되면 Desperate Wives의 예와 같이 미드 소재로 쓰일 정도로 인생에 대한 많은 회의가 생기는가 보다. 이십 대를 잃어버린 나는 삼십에도, 사십에도 여전히 굴곡진 인생을 버티며 살고 있었고 그렇게 오십이 되다 보니 내 잃어버린 인생 전반전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엄마로서의 짐이 가벼워지니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책꽂이를 정리하는데 문득 쥐어든 책 틈 사이에서 옛날 사진 한 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20대 초반의 나였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 월급을 통째로 새엄마에게 주고는 옷 살 돈이 없어 아버지의 오래되고 펑퍼짐한 가죽점퍼에 벨트를 하고는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마주하기 민망했다. 나름 꾸민다고 애썼지만 촌스러웠고 아직 여드름이 여기저기 있었다. 지금이 어릴 적보다 더 스타일리쉬하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민망함이 익숙해질 때 즈음 한동안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아무리 애써도 사진을 뚫고 나오는 스무 살의 풋풋함과 싱그러움과 비할바는 아니었다. 억울했다. 뺏겨버린 나의 청춘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이 값 못하는 중년 아줌마

주변을 둘러보면 중년의 내 나이 즈음의 사람들을 보면(물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기에 사람들마다 속한 커뮤니티의 성향은 다를 것이다.) 사는 수준은 중산층 이상 되고 아이들도 특별히 빠지는 경우가 없는 듯하다. 그중 몇몇은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두어 자랑하는 낙에 사는 부모들도 있고 아니면 부모가 잘되어서 그 맛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평범한 가정을 일구며 살고 있고 이미 그들의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은 지라 안정적인 삶을 최고의 가치로 보며 콘서트, 오페라 등 우아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는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내가 젊었을 때 못했던 것에 대한 환상이 있다 보니 클래식도 좋지만 락이나 헤비메탈 같은 공연을 본다던지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재미있고 집중도 잘된다. 옷도 좀 찢어지고 스터드가 박히고 해야 기분이 좋다. 물론 품위의 의무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주말에만 입기는 하지만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큰 내가 중성적인 옷차림에 장화를 신고 모임에 나가면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좀 여성스럽게 옷을 입고 다니세요’,

“네?, 왜요? 너무 세 보이나요? 그런데 제가 키가 크다 보니 여성스러운 옷 입는 게 편치가 않아요. 나 같지도 않고”

“키 큰 거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 보이쉬한 옷은 여자들에게만 걸 크러쉬 하게 느껴져서 좋아하지 남자들은 싫어해요. 무조건 여성스러워야 해요”

“하하, 알았어요. 다음부터 참고할게요”

근무할 때는 조신하게 입어야 한다. 특히 보수적인 우리 조직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옷을 입고 다니면 개성이 강해서 다루기 힘든 직원으로 몰아간다. 다른 것은 조직문화를 다양하게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컨트롤하기만 힘들어지고 그건 틀린 것이 된다. 답답하다. 이런 내게 숨 쉴 곳이라고는 욜로라고 이름 붙인 오랜 친구들이다. 우리들은 서로 너무 잘 맞아서 여행도 가고 맛집과 공연을 보러 다니곤 하는데 그들도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공연이나 모임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거 젊었을 때 해야 하는 거란다. 그래서 Jazz나 토스트 마스터도 혼자 했고 락이나 헤비메탈 같은 공연은 혼자 가기 그래서 늘 맘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미와 미미 패밀리를 만났다.


미미랜드 패밀리

우리 패밀리는 6명이다. 어디든 무엇이든 우리는 함께 했다. 그런 우리를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우리는

“We are so international. Jerry and Coco are philiphine-american, Susie is indian-american, Mitchelle is japanese-american, and Mimi is a newyorker from usa and Rana from korea”

이라고 말하며 서로를 쳐다보며 다 함께 큰소리로 웃었다. 그렇다. 그들은 나보다 5살 이상 많았고 가장 나이 많은 Indian-American인 수지는 10살이 많았다. 50~60대였던 우리는 한국의 20~30대보다 재미있었다. 항상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언제나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았다. 우리는 항상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놀러 다녔고 계획이 없을 때면 우리들의 아지트인 미미 아파트에서 주말마다 모여 밤이 늦도록 얘기하고 음악과 함께 저마다 가져온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십 대 시절로 돌아간 듯 비디오 게임과 우노와 같은 카드게임을 하였다. 우리 멤버들은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다. 수지는 헬리콥터 맘이었다. 보살핌이 지나쳐 우리 모두를 과잉보호와 참견을 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게 되면 차량 렌털부터 숙소 예약과 삼시세끼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매일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상세히 조사해서 각자에게 준비할 사항을 꼼꼼히 알려주었고 우리는 “Yes, mom”하고 고민 없이 따라 하였다. 아이가 없던 그녀는 우리를 그렇게 챙기면서 기뻐했고 우리도 그녀 덕에 여행을 가던, 미미 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던 즐거웠고 고마웠다. 필리피노인 코코와 제리는 엔터테이너이다. 음악과 춤을 항상 즐기는 그들이 없다면 우리 모임이 그렇게 웃음이 넘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뉴요커인 미미는 설계자이자 우리들의 리더이다. 항상 무언가를 기획한다. 그리고 나는 커넥터이다. 한국문화와 그들의 문화를 연결해주는 다리 즉 매개체이다.


회자정리

그런 우리에게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수지와 미첼의 체류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기 반년 전부터 우리 멤버들의 맘은 바빠졌다. 이별여행을 한다며 통영, 부산, 칠천도 경주 등 국내 여러 곳과 함께 우리들의 첫 해외여행지인 도쿄, 그리고 마지막이라고 하며 보라카이를 2020년 1월에 다녀왔다. 모두가 아쉬움을 달래던 그해 2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중국발 코로나가 한국을 덮쳤고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글로벌 팬데믹 사태로 인해 수지와 미첼의 미국 복귀가 6개월 연기되었고 우리는 아쉬움을 달랠 시간을 더 갖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진정된 6월부터 양양으로 속초로 설악산으로 그리고 부산으로 여행을 하였다. 부산은 이미 여러 번 함께 한 곳이지만 우리의 마지막 밤을 보낸 추억의 도시이기도 하다. 미첼은 평소에 수지에게 애정 표시를 잘 안 하고 미미와 코코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섹스리스 커플로 알고 있었는데 여자들만의 Girl’s night을 위한 깜짝쇼로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숙소를 잡아주었다. 체크인을 하고 올라오니 두 객실이 모두 전면 바다를 보고 있다. 방으로 오자마자 우리는 우아하게 드레스업 한 후 화장과 액세서리를 하고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한껏 꾸민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코코의 하나 둘 셋 사인에 맞춰 동작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다른 층의 객실 손님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순간 정적이 흐르면서 우리 모두는 얼음이 되었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다가 서로 눈이 마주친 우리는 킥킥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뷔페가 유명한 곳이다. 수북이 쌓여있는 음식들을 와인과 함께 마음껏 즐겼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우리 모두는 빠르게 알코올을 흡입하기 시작했고 금세 취해버렸다. 가장 점잖은 수지도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들 고등학생 된 듯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도 깔깔대고 웃는다. 한창을 떠들고는 방으로 올라왔다. 역시나 우리 모임의 엔터테이너인 코코가 온갖 원맨쇼를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이 성과 관련된 거다. 섹스리스인 미첼과 수지 커플과는 달리 제리와 코코 커플에게 성은 매일 먹는 밥과 같은 거다. 매일을 섹스로 시작한다고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시작되는 하루의 일과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좋아하는 체위와 함께 다양한 동작들을 효과음까지 넣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처음에는 눈이 동그레서 듣던 나도 나중에는 미미, 수지와 함께 까르륵 웃다가 나중에는 너무 웃어 관자놀이가 얼얼해졌다. 코코가 하는 말, 섹스에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한다. 자신은 노련한 삼촌과 하는 것에 판타지를 가지고 있어서 흥분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삼촌을 부를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제리가 왜 자신과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생각하냐고 화를 엄청 내었단다.

“내가 토라진 제리 달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라고 말하는 코코를 보며 크게 웃던 미미가 말한다.

“하하~ 코코 너는 미쳤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제 수지가 떠나면 우리 모임은 여전 같지 않겠지, 하지만 코코 네가 우리 곁을 떠날 때는 난 아마 뭔가 하나는 박살을 낼 거야”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입 밖으로 선뜻 내놓지 못한 말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에 우리 모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헤이, 친구들. 니들 그거 알아? 나이 들면 뭐에 신경 써야 하는지?”

어색한 분위기를 깨면서 코코가 쑥 하고 들어온다.

“위로 착 달라붙은 엉덩이야~”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턴을 하며 그녀의 동그랗고 이쁜 엉덩이를 불룩하게 내밀고는

“오십 중반에도 이 멋진 뒤태와 미끈한 다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려줄게. 다들 따라 해 봐.”


Dirty 한 농담은 친구들하고 하는 거야

그녀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다는 그 동작이란 게 다 아시꾸리 하다. 엉덩이를 움직이는 거다 보니 따라 하기는커녕 보기도 민망하다. 엉거주춤한 나를 보고

“라나, 이리 와서 침대에 누워 봐”

하고는 내 다리를 잡고 벌리고 오므리고 난리다.

그걸 보고 수지는 깔깔거리면서 열심히 사진과 비디어를 찍어 댄다.

“수지, 그거 페북에 올리면 안 돼”

라고 웃다가 울다가 말고 허공으로 손을 휘저으며 말하는 나에게 한참을 웃고 난 코코가 갑자기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는 친구들하고 무슨 얘기해? 너희는 뭐하면서 놀아?”

“우리? 우리는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러는데?”

“아니 그런 거 말고 무슨 얘기하냐고?”

“글쎄, 쇼핑 얘기, 사무실에서 있었던 얘기, 아이들과 남편 얘기 뭐 그런 거?” 했더니

“무슨 친구가 그러냐. 우리처럼 친구들끼리 Dirty 한 얘기 안 하냐고?” 한다.

“우리는 그런 게 금기시되어서 친구끼리도 그런 얘기 안 하는데?”

하니 못 믿겠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친구끼리 안 하면 누구랑 하는데?”

하고 다시 묻는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

“우리 사회에서 성과 관련한 얘기는 터부시 되어서 친구사이라도 하지 않아”

했더니 코코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것은 불편하다. 가끔 회식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취하면 입심 좋은 몇몇이 음담패설을 우스개 소리로 하는 것을 들어는 봤다. 그래도 개인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누구 하고도 얘기해 본 적은 없다. 내가 보수적인 건지 한국 문화가 이상한 건지, 여자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남자들끼리는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여자들끼리는 친한 친구사이라도 그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번은 용기 내어 너희는 부부생활에 문제는 없는지를 물어본 적 있다. 그때 친구 하나가 그런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고. 그 친구는 싱글이었을 때 자유연애를 즐겼음에 불구하고 이런 대답을 한다는 것이 의외였다. 성은 본능이고 생명을 갖고 태어난 모든 것들의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건데 왜 죄악시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에 있을 때 내 친구 로렌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부부 사이에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한다고. 그리고. 파트너를 행복하게 해 주고 나도 즐겁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봐야 하고 대화를 나눠야 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면 포르노를 보고 라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육십의 싱글인 금발의 로렌은 내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이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보고싶은 로렌

로렌은 내 베프이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또 다른 나를 대하고 있는 것처럼 케미가 잘 맞았다. 나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이 처음 계정을 만든 날부터 10년 넘은 지금까지 그녀와 찍은 사진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가 끝나 국경 간 이동이 자유로와 지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친구이다. 이탈리안계 미국인인데 가족중심적이고 사람 좋아하는 이탈리안들은 한국인들 정서하고도 비슷했다. 특히 로렌은 아이 둘을 데리고 홀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를 안쓰럽게 여겨서 자주 본인의 집으로 초대해서

“너는 손가락 하나 깜짝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 너는 내 게스트고 이건 너를 위해 내가 준비한 거니까.”

라고 말하며 계절별, 추수감사절 또는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이 있을 때마다 이벤트별 테마에 맞춰 테이블을 세팅하고 우리를 초대하였다. 정이 많은 그녀는 음식 솜씨도 훌륭했는데 웰컴 드링크로 시작으로 애피타이저, 메인디쉬 그리고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럽게 나와 두 아이들을 대접해주었다. 꼼짝도 하지 말고 쉬고 있으라는 그녀의 말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소파에서 쉬면서 그녀가 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녀는 어린 두 딸의 영어 선생님이기도 했는데 숫기가 없어서 친구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던 아이들도 로렌한테만 오면 맘이 편해지는지 학교에서의 긴장감을 풀고 그녀 집 여기저기에 널브러져서 게임도 하고 책도 보고 그러다가 잠이 오면 로렌의 공주같이 꾸민 핑크빛 침대에서 골아떨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수요일이면 뉴욕으로 마티니 공연을 보러 가곤 했다. 맥도널드에서 Breakfast Meal을 간단하게 하고 95번 고속도로를 3시간 반을 달려 센트럴파크 근처 하루 75달러 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우리 넷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맨해튼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나보다 스무 살이 많은 싱글 레이디 로렌. 2022년이 되면서 귀국한 지 10년이 되었으니 금발의 활발하던 로렌도 이제 70세가 되었겠구나. 항상 열정적이고 하고 싶은 것 많고 내가 망설이고 있으면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던 나의 베스트 프렌 로렌. 스무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랑 가장 잘 맞고 나를 잘 아는 로렌 같은 친구를 나는 왜 한국에서는 만들기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나이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있던 친구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멀어져 가는데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도 어렵다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혼자가 되어가는 과정일까.


행복한 삶의 비밀

나이가 먹을수록 자존심만 커지고 상처받기 두려워져서 쉽게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렵다. 게다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체험적 지식이 굳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나를 내려놓지를 못한다. 외골수가 될수록 외로울수록 필요한 존재가 친구인데 우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는지 한때 죽고 못살았던 사이었는 대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며 지날 수도 있지만 고독을 극복하고 재미있고 행복한 노력을 위해서 좋은 친구를 가까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하버드 대학에서 75년(1938년~2013년) 간 하버드 대학생에서 보스턴 빈민촌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724명의 대상자의 일생을 연구 관찰한 보고서인 ‘행복한 삶의 비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질이 높은 사람들은 가족, 친구,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수십 년간 이어지는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런 좋은 관계는 그들의 두뇌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강의에서 한 청중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다. 친구 때문에 괴롭다고 그래서 헤어지려고 하나고. 그랬더니 스님 하시는 말씀이 그건 친구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친구라면 상대방의 하나하나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서운해하고 마음 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를 돌아본다. 내가 친구하고 하는 사람들 중에 진짜 친구는 있는 건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꾸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지금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맘대로 의지대로 되는 건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자신이 없다. 덩치에 비해 마음 약한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친구인데 점점 어려운 숙제가 되고 있다.


#솔메이트 #친구 #행복한삶의비밀 #인생숙제 #베프 #베스트프랜 #미미랜드 #라나언니 #마띠니콘서트 #중년아줌마 #보상심리 #보고싶은로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