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na Mar 12. 2022

영혼은 집에 잘 두고 오셨나요?

예스맨만 키우는 공직문화 속 분노하지 않는 당신, 영혼 없는 우리

저는 간 없는 토끼입니다.

어린 시절 처음 읽기 시작하는 동화책에는 별주부전이 있다. 간 떼놓고 다니는 토끼 이야기이다.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있던 용왕은 육지에 사는 토끼의 간만이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은 듣게 되고 신하들 중에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찾았으나 육지에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고 토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지라 아무도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로한 용왕은 어렵게 토끼 그림 한 장을 구해 별주부 자라에게 주고는 육지에서 토끼를 데려오는 특명을 맡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어 육지에서 여러 동물과 사람들은 만나고 물어가며 꾀많고 의심 많은 토끼를 만나게 된 자라는 토끼 친구 여우의 도움으로 감언이설로 그를 속혀 용왕님 앞으로 그를 데려가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간을 내놓으라고 하니 놀란 토끼는 드디어 깨닫는다. 자신이 속은 것을. 토끼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속이기 시작한다. ‘저의 간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육지 사람들도 서로 갖고 싶어 안달인지라 제 소중한 간을 떼서 깊은 골짜기에 두고 왔지 뭡니까’  용왕은 진주 이백 알을 토끼에게 주며 다시 육지로 가서 간을 가져오도록 하지만 간을 어떻게 꺼냈다 넣었다 한다 말인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고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에 용왕국 전체가 속아 넘어갔으니 집단적 우매함을 탓할 것인지 용왕님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은 넘치나 어리석은 자라를 탓할 것인가. 토끼가 간을 떼놓고 다니듯이 용왕국 공무원인 별주부도 영혼을 떼놓고 왔으면 그 고생을 안 했을 것이다.


영혼은 집에 두고 와야지

“그거는 말이 안 되는데, 이건 미봉책이잖아. 근본적 원인을 없애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될 거라고”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결국 운 좋고 빽 있는 사람들은 능력껏 빠져나가겠지만 운 나쁜 사람은 뒷 치닥거리하고 그러면서 욕먹고 잘못하면 징계까지 먹게 된다고”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 않으면 어쩌겠다고, 임주임이 할래? 바뀌는 거 봤어?”

“아니, 내 말은 안 된다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면 예상되는 문제점이 어떤 게 있다고 팩트 전달은 하셨어야죠”

“아니, 이 사람이, 아직도 뭘 모르네, 그래서 뭐가 바뀌는데, 사무실에 올 때는 영혼을 집에 두고 와야지 그런 정신으로 어떻게 일을 할래? 본인만 힘들어진다고”

나도 알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고 아무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쩌면 을의 울부짐이라고 하겠다. 갑의 입장에서는 0.1초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그러나 이렇게 라도 함으로써 속에 차여있는 화를 빼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내 안에 영혼이 있는가 보다.


영혼이 없기는 정치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얼마 전 올 3월 9일 실시 예정인 대통령 선거를 대비하여 한 지상파 방송사가 토론회를 열었다. 해당 TV토론에는 여야 대선후보들을 대표해서 민주당에서는 박용진 의원이, 국민의 힘에서는 김은혜 의원이 나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참 희한하다. 좋은 학벌에 지상파 아나운서까지 여러 해를 한 여성 엘리트가 상대방 박용진 의원의 ‘국민의 힘 후보의 공약 중 사드 배치를 어디에다 할 거냐는 질문에 사드 배치 지역에 대한 답은 안 하고 주저리주저리 핵심은 피하고 쓸데없는 말은 늘리면서 소요된 시간 6분을 혼자 다 쓰는 모습을 보였다. 보고 있는 내내 ‘아니 저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먹은 것은 아닐 거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래’ 하며 시간 내서 보고 있는 토론을 계속 보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공약으로 까지 내세운 것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지켜보는 국민들 속을 고구마 백개쯤 먹은 것처럼 만들어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들은 돌아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한 표를 행사하라고 한다. 국민이 정치를 모를수록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스포츠와 올림픽, 심지어 애로영화를 활성화하면서 까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였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학력이 글로벌 최고 수준이 된 지금은 스스로가 바보가 되어 국민들을 지치게 한다. 정치에 정 떨어지게 한다. 관심을 갖고 정이 생겨 애착이 형성되면 컨트롤하기 어렵기는 할 것이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있기는 한 건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는 문제가 반복될 뿐이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 나는 수동적이고 무책임하고 불확실한 낙관주의에 근거한 이 말을 받아 들일수가 없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거대 관료조직에 대항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상명하복의 피라미드형 조직문화에서 수십 년을 일했으면 변화를 일으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공직 자체가 체재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니 변화와 안정은 상충되기도 한다) 알 때가 된 것도 같은데 불쑥불쑥 올라오는 의욕을 마주하다 보면 어쩌하지도 못하고 스르륵 내려놓다가 자신에 대한 초라함으로 결국에는 자조하기 시작한다. 그냥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하자.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살고 있고 나도 결국 투사는 못 되는 인간이니까 라며 허무주의에 빠진 긍정을 해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고 나면 새로이 다가오는 루틴화 된 일상에 무거운 몸을 기계적으로 움직여 9시까지 출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라도 애써 읊조려 억지로 무력화된 오늘을 붙잡아 본다.


역동적 공직사회를 하여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얻어진 미래는 진보(Progress)가 아니라 무계획적 진보인 진화(Evolution)이다. 공직에서 그래도 더 큰 책임감이 있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간간부 격인 우리는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공직을 활기차고 순기능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변해서 지금 공직에 들어오는 우수한 인재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 다시 지역사회 발전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먼저 인사가 만사이듯이, 그들의 역량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커리어 관리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여야겠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개개인의 목표에 다가가는 일임을 알기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직장은 즐거운 놀이터가 될 것이다.


조직 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직의 문을 양방향으로 다양하게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민간 전문가는 공직에 들어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조직은 전문가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고 스스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기회 제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방직 공무원으로 들어온 민간 전문가가 공무원화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공직자도 다양한 자기 계발 기회를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여 다시 공직으로 인사상 손해 없이 복귀할 수 있도록 하여야 공직과 민간간의 전출입이 활발해질 것이다.


공직자들이 맡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금의 승진제도를 과감하게 수정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승진에 목메는 것이 아닌 개인의 성장을 통해 공직 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는 없는 걸까.  계급 올라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선발 정원도 적다 보니 직장 내 눈치 보기는 물론이고 파견이나 휴직 후 복귀할 경우에는 기존 근무자들의 저항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한다. 제도가 있더라도 빛 좋은 개살구이다.

성과 평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대신 근무 경력과 빠른 정보력, 그리고 사적 네트워크가 승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 하면 동일 직급  경쟁을 줄이고 책임과 권한을 명백히 하여 업무에 집중하도록 할 수 있는 걸까?  부분에서 미국식 공무원 제도를 참고해 보면 일반 직렬 공무원인 GS(General Schedule) 보면 등급이 GS1~GS15까지 나누어져 있고  등급은 10단계로 구분이 되어 있다. 진급은 근무연수와 무관하여 승진을 위해서는 상위등급에 빈자리가 나면 채용공고를 통해 내부, 외부 신청을 받고 경쟁을 통해서 채용한다. 만약 승진을 원치 않는다면 같은 등급으로 계속 있으면 되고 연봉은 올라간다. 또한 직위분류제를 채택하여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인사이동은 특정 전문분야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하여 업무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분노하지 않는 당신, 영혼 없는 우리

정부도 직무급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무 내용과는 상관없이 해마다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가 아닌 직무 난이도에 따라 직원 등급을 정하고 이를 평가하여 임금 단계를 결정하는 것이 직무급제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년 3월 직무급제를 4~6급의 중간 간부에게 적용하겠다고 처음 밝혔을 때 공무원 노조는 즉각적인 반대의사를 밝혔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 차별, 임금 서열화를 강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정부는 임금협상이나 연금 조정에 있어서 직접 당사자인 공무원을 한 테이블에 불러서 논의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정하고 언론에 뿌린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우리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를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엘리트 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들은 하위직급 출신인 우리를 다스리는 존재로만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좋은 제도도 반쪽짜리가 되고 만다.


공직에서 최고 가치는 승진이다. 그래서 동료는 다 나의 경쟁자이다. 출근하면 사무실은 하루 종일 어색한 친화감과 익숙한 침묵이 흐른다. 다음 인사에 주무팀장 자리가 빈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나보다 선임인 저 사람을 제치고 내가 갈 수 있는지를 작당한다. 말은 그럴싸한 성과주의, 선의의 경쟁이 불러온 긴장감 도는 근무환경 속에서 소속감은 약해지고 내부 관계에서 평화가 사라진다. 고장 난 브레이크가 아니라 애초에 브레이크가 없다. 제친 자는 승리감에 취하고 뒤처진 자는 패배감과 굴욕감에 더 이상 같은 부서에서 동료라는 이름으로 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쟁을 제거해야 장기적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페이팔 창립자인 피터 필은 경쟁을 제거하면 모든 사람이 단순한 직업 관계를 넘어 장기적 관계 형성이 쉬워진다고 했고 소속감이 강한 조직은 오직 소수만이 알 수 있는 "진실"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에서 진실이란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일 텐데 지금 공직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금이라도 근무평정 라인에 있는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어필도 하고  잘하는 사람이 된다. 관심을 못 받는 일을 하는 사람이 회의감을 느끼는  당연지사.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불평할 의욕도 없다. 결국 영혼을 버리고 일하는 거다. 그래야 분노하지 않으니까.


#라나언니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과 중국, 그 사이 어디 즈음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