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터지는 봇물은 감당할 수 없는 법이니까
“왜 나를 싫어하는데?”
어느 날 헤어지자고 말하는 나에게 남편이 하는 말이다.
“싫어하는 것 아닌데, 지금까지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아이들도 성년이 되었으니 아내로만, 엄마로만 사는 건 이제 그만할래”
“당신이 하고 싶은 것 언제 내가 말린 적 있었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냥 이렇게 살면 되잖아?”
“이제 남은 인생, 오롯이 나만을 위해 살고 싶어. 남편이 내 남은 인생에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 권리 주장하지 마. 당신에게 그런 권한 없어”
나의 대답이다.
매정한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착한 남자인데 별난 여자 만나서 아이 둘 다 키워 이제 앞으로 둘이서 오손도손 살 것으로 기대했다가 뜻하지 않게 뒤통수를 된통 맞은 것이다.
“안돼. 그냥 이대로 살아”
남편의 말이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나를 위해서 하는 소리는 아닌 것임을 안다. 왜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두려운 걸까.
오래전 일본에서 황혼이혼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들은 적 있다. 최근 우리나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이제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혼인 이혼 통계를 보면 혼인과 이혼 건수는 같이 감소하였는데, 감소한 이혼 통계에서 황혼 이혼은 오히려 증가하였다고 한다. 결혼 생활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은 전체 이혼 통계에서 37.2퍼센트, 그중 30년 이상에서의 이혼 비중이 15.6퍼센트로 41.9퍼센트를 차지하였다. 이제 더 이상 30~40대의 치열한 삶을 같이 보낸 동지애로 노년을 같이하며 서로의 등 긁어주는 관계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의 반복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받았다. 새로 꾸려진 가정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을 위해 선택한 공직,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결혼, 아이 양육을 볼모로 삼은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법적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유학 등 나의 지난날에 자유의지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십이 가까울수록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책을 내게 되었다.
“안 본 사이에 별걸 다 했네. 뭘 아직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
오랜만에 만난 한때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며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내가 책을 낸 것을 알고는 하는 말이다.
깔깔대고 웃다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미가 없어서 그래. 그래서 쥐어 짜내고 있는 거야. 뭐 재미있는 거 찾을까 싶어서”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 말한다.
“너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벌이는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나이 오십이 지나도록 일하고 공부하고 글 쓰고 운동하고는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쓰러지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어느 하나도 대충대충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가능한 게 아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뜨겁다. 내 주위의 중년들을 보면 현실에 순응하며 자신이 나이 먹었음을 인지하며 그냥 살아온 대로 앞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지난 오십 년의 시공간 속에서 나라는 물성으로만 존재했지 혼이 담기지 않았기에 잃어버린 것, 놓쳐 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이 가득하다. 내가 다른 차원으로 갈 때 후회만 남기고 싶지가 않다.
지천명이 된 지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은 무엇을 확인하기 위함일까. 인간이라는 여타 다른 영장물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능력과 축복을 받고 태어난 우리가 식물처럼 살아간다면 그건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희노애락오욕정을 다 누리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자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자문자답을 하며 나는 그렇게 홀로서기를 결심하였다.
이 거대한 우주는 내가 존재함으로써 의미가 부여되고 나를 자천축으로 돌고 있다. 주위에 의해 만들어진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길이 되는 주인 된 삶을 살아야겠다. 나의 의지가 동하는 대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울고 짜고 동정심에 호소하는 신파극이 아닌 새로운 모험극을 만들어 봐야겠다. 어차피 인생은 정글이고 그 속은 모험의 연속이기에 나는 죽을 때까지 가슴 뛰는 삶을 살아야겠다.
밖에서 이는 파도는 막을 수 있지만, 내면에서 터지는 봇물은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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