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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Feb 28. 2023

내가 기준이 되는 삶

세상의 기준에 맞춘 불안정한 행복이 아닌 "나"의 존재로 완성되는 우주

"카톡"

전남 화순에서 황금눈쌀을 재배하고 있는 농부 피터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메시지 없이 나의 책 '공무원 라나언니(2021.10)'에 있는 한 단락을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 해서 보낸 것이다. 연두색 형광펜 아래에는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는 불안정한 행복이 아닌 나의 존재로 완벽히 행복한 삶, 이것이 독립적인 자아 "나"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나의 존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생각 없이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옳다는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며 지난 오십 년을 소모한 나에게 하는 말이자 앞으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주도적으로 남은 인생을 살겠다는 결의이다.


오십 년 넘게 살아온 인생의 방향을 틀어 다른 쪽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은 1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덤프트럭에 그 몇 배의 물리적 힘을 가하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거대하고 강력한 에너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크기의 나의 에너지 덩어리를 만들어야 한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본격적 글쓰기는 내 나이 51세인 2020년 하반기부터 시작했으나 그전에 토스트마스터즈, 영어학습동아리, 재즈합창단에 패션봉제까지 배운다고 시간을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인생 후반전에 대한 방향성 고민은 4~5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최근 갤럽에서 실시하는 5대 강점테스트 결과 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 사회 경제분야 최신 동향이나 트렌드를 쫒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5대 강점 중 하나인 존재감은 전문성을 가진 생산적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라 믿고 있으며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강점은 나를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도록 만들며 평범한 수준에서 탁월한 수준으로 이끌어주는 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지나친 강점 발현으로 인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뭐든 지나치면 부족한 만 못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요즘 나에 대하여 공부하는 중이다. 마흔 후반대에 이삼십 대에 배울 만한 것들을 배우다 이제는 결국 나에게로 오게 되었다. 어쩌면 모든 질문에 대한 시작이 "나"가 아닌가 싶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이론과 과학적 논리를 근간으로 하는 강점테스트, 애니아그램, 유전자지문학을 통한 대인다중지능분석, 유전자 키 등을 하면서 원래의 "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떠올리고 있다. 결과지를 읽으면서 세상을 살면서 잊어버렸던 나의 모습을 되새기고 있다. '그래 맞아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나는 누구일까. 나이가 오십 즈음에 다 달으면서부터 시작되었던 질문이다.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나의 스스로 발휘된 의지인가,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피동적인 삶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 길은 내가 원하는 것인가 아님, 세사에 밀려 걸어가고 있는 길인가? 내 삶 속에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남이 만들어 만들어 놓은 나로 살면서 본질의 나는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하는 나이가 되면 성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온전한 "나"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갇혀있는 알을 깨기 위한 발길질을 이제 시작했다고 하겠다. 갑자기 킬빌이 생각난다. 키도 우마 서먼이 산채로 관속에 갇혀 땅속에 매장된 장면이다. 절망감과 공포 속에 좁은 관 속에서 몸부림을 치지만 이내 스승님에게 배운 수련을 생각해 내며 침착하게 모든 기를 손가락 끝에 집중시켜 눈앞의 관 뚜껑을 타격하고 타격하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나무로 된 관 뚜껑이 부서져 지상으로 탈출할 때까지 타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홀로 선다


우리에게는 육체와 영혼이 있다. 육체적 세상 나옴은 어머니의 자궁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이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따듯하고 충분한 영양분이 제공되는 완벽한 보호처 자궁에서 열 달을 의존적으로 보낸 최초의 무의식적 기억을 우리는 평생 동안 가지고 가게 된다. 출산이라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세상에 나오고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태아기의 기억이 유아기에도 이어지고 육체적으로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행복해지고 평안을 찾는 습성이 우리 몸에 기록된다. 그러면서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는 육체적으로 상대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독립적이지 않고 미완의 존재로서의 나는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를, 성인이 되어서는 연인을, 그리고 가정을 꾸리면서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의지한다. 우리의 정신적 미완성을 다른 누군과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부족함을 채우려 한다.


이러한 허기는 내면적 성장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다. 나의 의지는 오롯이 정신적인 깨달음,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서만 다시 태어나고자 할 때 작용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하나의 존재로서의 의미 있는 탄생을 이루게 된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의지이다. 그러나 완전한 존재로 태어나지 못한다면 항상 세상의 흐름과 변덕에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지만 깨달음을 통해 내가 이 세상에 보내진 진정한 의미를 찾고 우리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미션을 발견하고 일생을 통해서 실천하는 것이 이번 생에서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체적인 나, 내가 기준이 되는 삶, 그리고 나 혼자 만으로도 두렵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살기 위해 외부로 향하던 관점을 내부로 돌려 나를 알아가야겠다. 자각을 통해 무궁한 에너지를 얻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 세상사는 매 순간이 경이롭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주에 가득한 사랑을 느끼면서 그렇게 잘 놀다가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나야겠다  


#주체적인삶 #내가기준이되는삶 #독립적자아 #자유의지 #내면적성장 #어린아이의눈 #라나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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