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들 딸과 함께 보낸 어버이날.
오늘은 그냥 일기나 써볼까 했습니다.
딱히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날엔 자판 앞에 앉는 것도 망설여지지만, 하루에 한 편쯤은 꼭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손을 움직이게 합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한 줄을 시작하면, 어느새 몇 단락이 되어 있고, 그만큼 마음도 조금은 정돈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내가 ‘어버이’로서 대접을 받는 날이었지요.
마침 아들이 안식월을 맞아 휴가 중이라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영종도로 내려왔습니다. 전날에는 딸도 도착해 있었고요.
이렇게 가족 넷이 모인 건 아이들이 결혼한 후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딸은 늘 손주나 사위를 대동하고, 아들도 며느리나 아이들과 함께 오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그래서 한자리에 모이면 어느새 여덟 명이 북적이는 게 익숙했는데, 이번에는 모처럼 조용하게, 네 사람만의 만남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버이날이라고 점심을 특별한 곳에서 대접하겠다고 하더군요.
인천공항 옆 ‘인스파이어 리조트’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해 놨다고 했습니다.
영종도로 이사 온 지 두 달 남짓, 이곳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지만 가볼 기회는 없었기에 조금은 설렜습니다.
뉴스나 광고에서는 웅장하다, 화려하다 말하지만, 직접 가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지요.
호텔 입구에서 발레파킹을 맡기고 로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놀라움이 터졌습니다.
찬란한 조명, 높은 천장, 거대한 기둥들과 대리석 바닥이 어우러져 마치 해외의 유명 리조트에 온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자연스레 휴대폰 카메라가 바빠졌습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내부 구조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양옆으로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늘어서 있고, 가운데는 넓은 통로가 시원하게 트여 있었습니다.
서울의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는 늘 오밀조밀하고 통로가 좁아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여기는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광장처럼 트인 공간에는 군데군데 벤치와 긴 소파도 놓여 있어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이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건 꽤 든든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예약한 레스토랑은 조용하고 정갈한 분위기였습니다.
천장이 높고, 테이블 간 간격도 널찍해서 대화하기 좋았지요.
오랜만에 아들, 딸과 마주 앉아 칼질도 좀 하고, 와인도 한 잔 곁들였습니다.
사실 제 체질에 와인은 맞지 않지만, 이런 자리에서 ‘소주 한 잔!’ 외치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가족과 함께하니 모든 게 맛있고 즐거웠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엔 2층으로 올라가 인스파이어 리조트의 명물, ‘오로라 쇼’를 감상했습니다.
천장 전체를 활용한 디지털 미디어 쇼인데, LED와 음향, 미디어 아트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합니다.
총길이 150미터, 높이 26미터에 달하는 공간을 가득 채운 영상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연출에 잠시 말이 없어졌습니다.
거대한 원통형 LED 샹들리에는 고장으로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다음 방문을 기약하게 되더군요.
좋은 음식, 좋은 구경.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건, 단출한 가족의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어버이날은 손주며 며느리, 사위까지 다 함께 모이는 북적이는 날이 되곤 했는데,
이번엔 네 식구만 만나니 오히려 조용히 대화도 나누고, 예전 이야기도 꺼낼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문득, 아이들이 어릴 적 어버이날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손으로 카네이션을 쥐고 "엄마 아빠 고마워요" 하며 웃던 얼굴들.
그때는 그저 귀엽고 흐뭇했는데, 이제는 그 아이들이 다 커서 나를 챙기고, 식사를 예약하고, 와인을 권하는 어른이 되어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구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습니다.
어버이날은 단지 대접받는 날이 아니라, 부모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해주는 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조금은 쓸쓸했고, 그래서 더 따뜻했던 하루였습니다.
만사는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라지요.
오늘을 '좋은 날'로 기억하기로 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ps ; 나도 어린이였고, 학부형이었고, 지금은 대접받는 어버이다. 그 사실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