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부모님, 꽃보다 아들'

아들은 가이드, 짐꾼, 여행 기획가.

by 랑세

올해 초, 아들이 말했다.

"안식월이라 한 달 휴가를 받게 됐는데, 이 기회에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볼까 해요. 어떠세요?"

3월에 새 아파트로 이사도 앞두고 있어 마음이 분주했지만, 모처럼의 기회 아닌가. 망설이던 찰나, 아내가 먼저 나섰다.

"좋지! 지중해 크루즈,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아내의 눈빛이 이미 여행길에 올라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대여섯 번쯤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에 지중해까지 다녀오면 크루즈 여행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아들이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그간의 여행은 대부분 패키지로, 언어 장벽과 빡빡한 일정 탓에 뭔가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들이 가이드와 짐꾼, 예약과 일정 조율까지 모두 맡아주겠다고 나섰다. 그 말에 마음이 확 놓였다.


그 사이 우리는 이사를 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꾸려야 했다. 하자 점검, 옵션 설치, 가구 정리와 새 장만까지, 아내와 나는 신혼살림 준비하듯 분주히 뛰어다녔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들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여행이 코앞에 다가왔다.


아들의 안식월은 5월로 정해져 있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처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달이다. 아들은 틈틈이 우리 의견을 물었다.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씀 주세요”, “어떤 나라 음식이 괜찮으세요?” 등등. 나는 늘 그렇듯 “알아서 해라” 한마디면 끝이지만, 아내는 아들과 다정하게 주고받으며 여행 계획을 조율해 나갔다.

msc그란디오사.png

여행의 주 코스는 지중해 서부 크루즈였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를 도는 일정. 선사는 18만 톤급 MSC 그란디오사. 아들은 우리가 예전에 더 큰 배를 탄 적 있다며 자꾸 ‘이번 배는 좀 작다’며 걱정을 했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막상 승선해 보니 규모 차이는 약간 있었지만, 시설이나 호화로움은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일정은 이렇게 구성됐다.

로마 도착 → 1박 관광 → 7박 8일 크루즈 → 로마 귀항 후 1박 → 아부다비 경유 귀국 + 사막투어 1박

비행기에서의 숙박까지 합치면 총 14일의 긴 여정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아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앞장서서 모든 예약과 이동을 도맡고, 짐도 들고, 시간도 철저하게 관리했다. 여행사 패키지보다 더 정확한 일정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이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젊다고는 하지만 중3 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추진력과 책임감이 대단했다.


다만 문제는 우리의 체력이었다.

아내는 아들과 발맞추어 잘 따라갔지만, 나는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시차 적응도 쉽지 않았고, 평소보다 지형이 험하거나 계단이 많을 때면 “나는 여기 카페에 앉아 있을게. 다녀와.” 하고 손짓할 수밖에 없었다. 이삼일이 지나면서 겨우 몸이 회복되긴 했지만, 나이 들어서 하는 여행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는 것이겠지. 선내에선 마음껏 쉬고 먹을 수 있지만, 기항지에서 내릴 땐 필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들은 오랜만의 휴가인 만큼 더 많이 보고 즐기고 싶었을 터. 그런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에 무리해서라도 따라가려 했지만,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여행은 걸을 수 있을 때 자주 다녀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절감하게 되었다.


예전에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짐꾼 역할을 자처한 젊은 배우가 대선배들을 모시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우리 아들이 딱 그랬다. 그래서 이번 여행, 이름을 붙이자면 ‘꽃보다 부모님’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비용 문제는?

아들은 자신이 전부 부담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대충 계산해서 삼분의 이는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대신 가이드와 짐꾼 역할에 대한 수고비는 따로 주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할 거 같았다.

어쨌든, 고맙고도 한편으론 힘들었던—그런 참 고미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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