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018 우정의 의미

오래된 우정, 시든 줄 알았던 꽃

by 랑세

'우정'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쓰이는 말이라 오히려 조심스러워진다. 유명한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일상 속 대중가요 가사에서도 흔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치 너무 잘 알려진 노래처럼, 함부로 손대면 어딘가 어색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한 대중가요 가수가 인터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저는 어떤 무대든 주어진 노래를 제 나름대로 잘 소화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너무 유명한 노래를 신청받으면 참 곤욕스럽습니다.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러본 노래일수록 감정을 조금만 어긋나게 담아도 금세 알아차리거든요."


글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이들이 다룬 주제를 글로 쓰려 할 때면 스스로 위축된다. 아무리 잘 써보려 해도 이미 훌륭한 글이 즐비하고, 너무 쉽게 대충 쓰자니 '참 아무렇게나 썼구나'하는 핀잔을 들을 것만 같다.


이 글도 그런 고민 속에 쓰게 된 것이다. 쳇지피티가 제안한 키워드에 따라 하나씩 써 내려가고 있지만, 우정 같은 주제는 그냥 건너뛰고 싶어진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이렇게 마주 앉아 본다.


어릴 적에는 친구가 많았다. 동네 골목에서, 놀이터에서, 학교 교실에서 눈만 마주치면 장난치고, 치고받고, 울고 웃으며 정이 들었다.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러웠고, 티격태격 싸우다 금세 다시 웃으며 지내던 친구들, 그 시절의 우정은 계산도 조건도 없는 맨몸의 관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사는 곳도 멀어지고,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멀어졌다. 사람의 관계는 화초와 같아서 자주 가꾸지 않으면 시들 수밖에 없다. 가까이 지내지 않으면, 자연히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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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도 마찬가지다. 돈독하지 않으면 시간과 거리 앞에 무너지기 쉽다. 게다가 사회생활 속 인간관계는 대부분 이해관계 속에 머문다. 정보를 주고받거나, 식사나 술자리로 이어지는 관계일 뿐, 속마음을 터놓을 정도의 사이가 되긴 어렵다.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는 그래도 인정(人情)으로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다. 그러나 은퇴하고 '백수'가 되면 그 인정조차도 조금씩 끊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생활에 점차 익숙해진다.


가끔은 오래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어떤 이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고, 어떤 이는 어쩌다 통화가 되어 안부를 나눈다. "그동안 별일 없었지?"라는 짧은 인사에 수십 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 자주 보지 않아도, 사는 방식이 달라져도, 마음 한편에 남은 여운이 따뜻하게 스민다. 말은 없어도 서로의 마음 안에 우정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설령 소원해지고 우정이 시든 듯해도, 그것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뿌리는 남아 있다. 다시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날 수 있다.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우정이란 그런 것이었다.


인생의 어느 시기, 어느 자리에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친구 하나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 세상이 차갑고 외로울수록 우정의 따뜻함은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우정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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