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서 잠시 벗어난 어느 저녁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때가 떠오른다. 그 붉은빛이 하루의 고단함을 말없이 감싸주던 그 순간, 나는 참 행복했다.
또 하나의 기억. 어느 여름날, 우이동 계곡에 들렀다가 술 한잔 걸치고, 바위에 걸터앉아 책을 펼쳤던 순간, 바람은 시원했고, 물소리는 잔잔했다. 정적.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잊을 수 있었다. 그건 분명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순간들, 행복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하면, 마음속에서 쉽게 튀어나오는 장면이 없다. 억지로 끌어내야 겨우 하나 둘 떠오를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행복과는 조금 거리를 둔 채 살아온 사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이 많았다. 아니, 생각이 많다는 말조차도 무겁게 들리는 일상 속의 무게감이 있었다. 머릿속을 떠도는 것은 아름다운 시구(詩句)나 철학적인 문제 같은 고상한 사유가 아니었다. 그건 불안, 걱정, 초조, 나태, 죄책감 같은 잡생각들.
항상 무언가에 얽매여 있었다.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누군가에게 실수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 나는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이제 돌이켜 보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그런 모든 책임에서 잠시나마 벗어났던 때가 아니었을까?
누구도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나 역시 누군가를 실망하게 할까 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짧은 시간, 그런 순간이 나에게는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 나는 항상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고 느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심지어는 나 자신에게조차. 하지만 그 책임을 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은 거기서 시작되었고, 두려움은 곧 불안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 모든 책임을 나 혼자 감당해야 했던 걸까?
이제는 조금 편안하다. 퇴직 후의 시간은 불안의 강도를 줄여주었고, 스스로에게 조금씩 질문할 여유를 주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모르겠다.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편안해진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서다. 아무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내 속마음을, 비난이나 평가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다. 대화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내면을, 글이라는 통로를 통해 흘려보낼 수 있어서다.
행복은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나를 지탱했다.
책을 읽으며 바람을 맞던 계곡의 오후, 버스 창밖으로 스며들던 저녁노을, 책임에서 자유로웠던 그 순간들, 그것들이야말로, 내가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조용한 빛이었다.
이제 인생의 오후를 맞이해서 생각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추억의 파편 속에서 건져내는 것일 뿐이다. 행복은 순간이 아니고 추억의 한 때가 아닐까 한다.
여기 린위탕(린위탕) 선생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삶의 한 때가 아닐까 하는 것이 네 가지라고 했는데 그것을 읊어 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행복한 삶이란
하나, 자기 집 침상에서 자는 것.
둘, 부모님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 것.
셋,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는 사랑의 속삭임을 듣는 것.
넷, 어린 자녀를 발아래 가까이 두고 함께 노는 것.
幸福人生 無非四件事(행복인생 무비사건사), 一是睡在自家床上(일시수재자 가상상), 二是吃父母做的飯菜(이시흘부모주적반채), 三是听愛人給你說情話(삼시청애인급니설정화), 四是跟孩子做游戲(사시근해자주유희), //출처 굿맨님 블로그(https://m.blog.naver.com/bae12jm?ta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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