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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스의 출현

사라진 아라미스

by 랜치 누틴


임신 7개월이 된 아라미스는 배가 많이 불러와 조금씩 움직임이 불편해졌다. 그러나 가끔씩 느껴지는 태동으로 아라미스의 표정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 있는 아토스는 점점 더 불안한 마음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아미스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찼다.


특히 3개월 전 국왕을 접견했다는 달타냥이 그 이후로 어떤 소식도 전하지 않는 점이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달타냥은 명석하고 모든 것을 명확히 파악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침묵은 단순한 우연일 리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라미스가 불안해할까 봐 아토스는 그 모든 걱정을 숨기고 있었다.


때마침,

파리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달타냥이 최연소 총사대장으로 승진했다는 것이었다. 총사대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아토스는 달타냥에게 축하를 전한다는 명목으로 파리로 갈 준비를 하며 아라미스가 괜한 의심을 하지 않도록 애썼다. 그리고 떠나기 전 집안의 내부 장치들을 꼼꼼히 점검했다. 그들 부부가 설계한 비밀 통로와 요새화된 방어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혹시 닥칠지 모르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이건 네가 항상 곁에 두고 있어야 해.”

아토스는 아라미스에게 한 자루의 권총을 건네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라미스는 그 권총을 받아 들며 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진지해? 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야. 혹시 모르는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 "

"알았어. 파리에 다녀오는 것은 오래 걸릴까?"

"아니. 단지 총사대 축하를 전하러 갈 뿐이니까 금방 돌아올 거야.”


아라미스는 그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의 판단을 존중했고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토스는 전속력을 다해 말을 몰아 파리로 향했다. 그는 총사대로 곧장 가지 않고 비밀리에 파리시내에 머물며 달타냥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달타냥이 지난 3개월 동안 접촉했던 사람들, 방문했던 장소, 그리고 그가 3개월 전 국왕과 접견한 이후 있었던 사건 등을 몰래 알아보았다.

아토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그는 한때 자신이 자주 드나들던 술집에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흔적들을 찾았다. 아토스는 달타냥이 접촉한 몇몇 사람들의 이름과 장소를 확인하면서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달타냥이 국왕과 접견한 이후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총사대장이 된 배경에는 단순한 승진 이상의 무엇인가 뒷거래가 숨어 있음을 눈치챘다.

‘달타냥이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그가 나에게 숨긴 이유는 무엇일까?’


총사대는 파리에 “전설의 아토스”가 온다는 소문에 들썩였다. 젊은 총사대원들은 그를 보기 위해 훈련장을 서성이며 기다렸고 많은 이들이 그를 보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아토스가 총사대 본부에 들어서자 젊은 총사대원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전설의 총사였던 아토스의 등장에 모두가 흥분했고 아직 젊고 탄탄한 외모와 체격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저분이 전설의 삼총사 중 한 분이야!”

“30대 중반이라니! 저런 외모와 몸을 유지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해!”


그러나 아토스는 그들의 환호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존재가 여전히 기억되고 심지어 우상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총사대의 훈련장을 둘러보며 놀랐다. 그곳에 기념비처럼 세워져 있던 삼총사의 동상이 사라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역대 총사들의 명단에서 ‘아라미스’의 이름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토스는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달타냥이 그에게 다가와 반갑게 맞이했다.


“아토스! 오래간만이군요!”

달타냥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동료들에게 소개했다.

“여러분! 이분이 바로 전설적인 총사인 아토스입니다!”


아토스는 마음속의 분노가 차올랐지만 가깟으로 억누르며 정중히 말했다.

“총사대장님, 축하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요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달타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아토스는

“총사대장이 되신 기념으로 달타냥 대장님과 제가 검술 시합을 한번 해보고 싶군요.”


달타냥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총사대원들은 열렬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달타냥은 대원들의 환호와 기대를 눈치채고 결국 못 이기는 척 수락했다.

그의 내면에는 다른 감정이 숨어있었다. 아라미스를 차지한 남자 아토스. 달타냥은 본능적으로 그에게 경쟁심을 갖고 있었다. 그 또한 이 대결을 사뭇 기대하고 있었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총사대 최강이야. 5년 전 총사대를 떠난 아토스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어. '

달타냥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토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한 번 즐겨보죠.”

아토스와 달타냥은 대결 준비를 위해 총사대 훈련장 가운데로 나섰다. 아토스는 조용히 칼을 들어 올렸고, 달타냥도 예를 갖추며 자세를 취했다. 주변의 총사대원들은 숨죽이고 두 사람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달타냥은 마음속으로 아토스를 존경하면서도 한편 큰 질투심을 느꼈다. 자신이 열렬히 아라미스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차지 못했던 자신과 달리, 아토스는 아라미스를 차지한 남자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왔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비록 아토스라고 해도 이제는 내가 더 강하다. 이 시합은 금방 끝날 거야.


아토스는 시합이라는 명목 하에 달타냥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검에 실었다. 달타냥이 아라미스의 흔적을 모두 지운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검으로만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다.


검이 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칼의 거친 금속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토스의 검술은 전장에서 적을 상대할 때처럼 치밀하고 날카로웠다. 쉽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달타냥은 긴장했다. 저것은 아토스가 숨겨 놓았던 검술 기술이다. 시합이 아니라 전장에서 적을 죽이기 위해 내두르는 기술. 그의 검술에는 살기가 느껴졌다.


‘이건 단순한 시합이 아니야... 아토스는 나를 적으로 여기고 있어!’

달타냥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토스는 차갑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달타냥을 바라보며 계속 공격을 몰아갔다. 결국, 달타냥의 방어가 흐트러지는 순간, 아토스는 그의 검을 칼등으로 힘껏 내려쳐 달타냥의 손에 있는 검을 떨어뜨렸다. 달타냥은 손목이 꺾여 잠시 비틀거리며 칼을 놓쳤다. 주변에서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러나 달타냥은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들었다.

달타냥이 다시 검을 든 그 순간, 아토스는 자신이 쥔 검을 스스로 바닥에 떨어트렸다. 검이 바닥에 완전히 떨어지고 다시 잡지 않아 시합은 끝이 나버렸다. 아토스가 패배한 것이다.

주변 총사대원들은 잠시 놀란 듯 조용했지만 곧 상황을 판단하고 달타냥의 승리를 축하하며 환호했다.


“왜... 칼을 놓으셨습니까?”

달타냥은 일부러 칼을 떨어트린 아토스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했지만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왜 아라미스의 흔적을 지웠지?”

아토스는 달타냥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달타냥은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이 비쳤다.

아토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가 아라미스의 흔적을 지운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을 뿐이다.”

달타냥은 아토스의 눈빛에서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음을 느꼈다.


총사대원들은 박수를 치며 달타냥의 승리를 축하했다. 아토스는 달타냥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넨 후 조용히 총사대 본부를 떠났다. 그의 발걸음은 루브르를 향하고 있었다.

그가 루브르에 가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잃어버린 아라미스의 흔적과 그것을 지운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달타냥은 사라지는 아토스의 모습을 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루이 13세의 명령은 단호했다. 아라미스라는 이름은 총사대에서 완전히 지워졌고 흔적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세상은 단지 르네라는 한 여성이 수녀원에서 죽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었다.


달타냥은 이 사실에 안도했었다.

“아라미스는 이제 안전하다. 엘렌 라 페르 백작부인으로 살아가며 영지에서 편히 지내면 된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보호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총사대에 있는 아라미스의 흔적과 기록들을 모두 태우며 그것이 총사대의 명예를 지키고 그녀를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토스의 생각은 달랐다. 아라미스의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단순히 그녀를 숨기는 것을 넘어, 그녀가 겪은 모든 고난과 노력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아토스는 아라미스가 16세의 어린 소녀였던 시절, 남장을 하고 총사대에 들어온 순간을 기억했다. 아라미스는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비록 약한 체력이었지만 고된 훈련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냈다. 그녀가 흘린 땀과 피, 그리고 마침내 총사대원이 되었을 때 이루었던 눈부신 성취를, 아토스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아라미스의 명예는 그녀의 생명과도 같았다,” 아토스는 생각했다.

“그 흔적을 지우는 것은 그녀의 삶을 모두 부정하는 것과 같아.”

아토스는 아라미스가 총사대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잊을 수 없었다. 삼총사가 결성되고 함께한 시간은 그들에게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였다.

“달타냥은 모를 거야.” 아토스는 분노를 삼키며 생각했다.

“아라미스가 그 오랜 시간동안 얼마나 총사대에서 노력했는지. 삼총사로서 함께했던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아라미스는 삼총사로서 자신을 증명했고, 그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누구보다 빛났다. 그녀는 단순히 남장을 한 여성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은 전우였다. 아라미스의 웃음과 그가 본 그녀의 눈빛에는 항상 자신감과 동료애가 가득했다.


아토스는 아라미스의 이름과 명예를 되찾아줄 방법을 직접 찾기로 했다. 아라미스를 위해, 그리고 삼총사의 명예를 위해. 그는 파리의 거리로 나서며 다음 목적지인 루브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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