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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리오날 공작

몬테로가로 이주

by 랜치 누틴


한 달간의 긴 여정 끝에, 아토스와 아라미스는 몬테로 저택에 도착했다. 2층짜리 아담한 저택은 크진 않았지만, 깨끗하고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친구인 리오날 공작이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주고 있었다.


저택에 상주하는 집사 한 명이 도착한 아라미스와 아토스를 맞이했다.

4년 전, 몬테로 가문은 아라미스를 양녀로 받아들인 조건으로 양부모의 대부분의 재산을 친척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인정되었다. 단지 이 집만이 아라미스의 유산으로 남겨져 있었다.


집 안에 들어선 아라미스는 작은 거실과 따뜻한 분위기의 침실을 둘러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의문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라미스는 스페인으로 오는 여행 중 아토스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아토스는 총사대 시절부터 전장에 나가기 전 항상 같은 습관을 보였었다. 그는 자신의 칼을 반복적으로 닦고, 단도를 확인하며 총을 장전하는 흉내를 무의식적으로 취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는 마치 머지않아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라미스는 그가 전쟁에 곧 나갈 것이며 그 결심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아토스는 국왕과 협상 끝에 자신을 구하는 대가로 전장에 나가기로 약속했을지 모른다 짐작할 수 있었다. 아토스가 국왕과의 약속을 함부로 깰 수 없을 상황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날 밤, 아라미스는 부엌으로 가 아토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호박수프를 만들어 줄래?”

아토스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호박수프라니… 그게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데…”

“신참 시절, 내가 아팠을 때 당신이 만들어준 수프 기억나? 그 수프를 먹고 나서야 힘을 냈었지.”


아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아라미스와 라울을 위해 정성스럽게 수프를 만들었다. 아라미스는 따뜻한 수프를 한 숟가락 떠먹으며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

아토스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에도 먹으면서 울더니, 오늘도 울고 있네. 여전히 맛이 없나?”

아라미스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스프라 감동받아서 울었다고 했잖아. 과거에도, 지금도.”

아라미스의 말에 아토스는 잠시 멈춰 바라보다가 잔잔히 웃었다.

작은 식탁에 앉아 함께 호박수프를 먹은 두 사람은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행복을 느꼈다. 아라미스는 마음속으로 아토스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토스 역시 자신의 결심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지 마음 깊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말 없이 서로의 사랑을 느꼈다.


아라미스는 속으로 기도했다.

‘이 순간이 앞으로 계속되길 … 당신이 무사히 돌아오길.’



저녁노을이 물든 테라스에서 리오날은 책을 읽고 있었다. 리오날 옆에는 그의 애인인 듯 한 여자가 그의 어깨를 잡고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며 하루가 저물어가던 그때, 어디선가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책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 망토를 입고 모자를 쓴 모습이었지만 분명 저 걸음걸이는 익숙했다.


“아토스…?”


리오날은 놀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토스였다. 그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와 아토스를 맞이했다. 말에서 내리고 서 있는 아토스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얼굴에는 피로에 지쳐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이야?” 리오날이 묻자, 아토스는 말없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리오날은 아토스를 데리고 테라스로 돌아와 의자에 앉혔다. 그는 급히 와인을 가져와 건넸다.


“무슨 일이야? 네가 이렇게 황급히 달려올 정도면 심상치 않은 일이겠지.” 리오날이 말했다.

아토스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라미스 때문이야.”


리오날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는 아토스의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아라미스는 너를 선택하지 않은 게 너 때문이 아니야. 그녀는 정치적으로 너무 많은 문제에 얽혀 있어. 스페인 왕족인 너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리오날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라미스가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단지, 정말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토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리오날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라미스는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야. 널 더 사랑했기 때문이야.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어?”


아토스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글쎄.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겠지. 그녀가 내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그렇게 같이 부부의 인연을 맺었어. 하지만 난 그 일로 네가 상처받지 않길 바랬다. 그래서 정치적 이유라고 말하게 된 거야.”


리오날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와인잔을 굴리며 말했다.

“그래, 넌 항상 그런 식이었지. 하지만 둘려 말한다고 내가 상처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냐? 너희 둘 사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무력하게 느껴지는지 알아?”

아토스는 리오날의 솔직함에 피식 미소 지었다.

“그래.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아토스는 그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는 너라면 믿을 수 있어. 리오날, 내가 전장으로 나가는 동안 아라미스를 부탁한다.”

“전장이라고?”

리오날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왜 전장에 나가야 하는데?”

“국왕과 약속했어. 내가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오면, 아라미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고.”


리오날은 한참 아토스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진짜 미쳤다. 아토스. 목숨을 걸고 그런 약속을 왜 해? 네가 돌아오지 못하면, 아라미스와 아이들은 어쩌라고.”


아토스는 침착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너에게 온 거야. 네가 있다면 아라미스는 안전할 거야.”

리오날은 그 말을 듣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날 믿고 온 거겠지. 너희 아이들까지 맡긴다는 뜻이겠고.”

“리오날, 네가 아니면 안 돼. 넌 아라미스를 사랑하잖아. 나처럼.”


리오날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아라미스를 사랑해. 하지만 그녀가 너를 더 사랑한다는 걸 알고 나선… 난 더 이상 욕심낼 수 없었어.”


아토스는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리오날.”

리오날은 아토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긴. 네가 나를 믿어주는 게 더 고맙지. 하지만 약속해라, 무사히 돌아온다고.”

아토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말을 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리오날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도, 아라미스도… 내게 너무 벅찬 사람들이야.”


아라미스는 전장을 향하는 아토스에게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밝은 미소로 작별인사를 했다. 서로가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분명 서로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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