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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밤

함께 하는 이유

by 랜치 누틴

한밤중 아토스는 살며시 눈을 떴다.

아라미스의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아 그런지 잠을 깊이 잘 수 없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손을 뻗어 침대 옆을 만졌다.

그런데 옆에 아라미스가 없다.

아토스는 불길한 예감이 일어나 방을 살펴보았다.

'어디 있지?'

그리고 서재로 급하게 향했다.

서재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토스는 급하게 촛불을 켜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토스는 서랍 속에 있던 총자루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남겨진 편지가 있었다.



아토스에게

이 모든 문제를 당신과 달타냥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국왕폐하를 직접 만나 나의 충성심을 직접 보이겠어.

당신은 나를 막으려 하겠지.

하지만 제발 나를 믿어줘. 이건 나의 과거고 모든 것은 나의 과오에서 비롯된 일이야.

전부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야.

라울을 잘 부탁해. 그리고 나를 원망하지 않길 바래.

당신을 믿고 사랑해.


아라미스


아토스는 그 편지를 들고 몸이 굳어버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라미스..."

아토스는 아라미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깊은 슬픔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그는 서둘러 라울의 방으로 가서 라울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아토스는 잠시 라울을 지긋이 내려다보다가 로잔 부인에게 맡길 것을 결심했다.

아토스의 머릿속은 계속 아라미스가 어디로 향했을지 급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아라미스는 임신 중이다. 그 몸으로 먼 길을 떠났다면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숲길을 이용해 은밀히 파리로 향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아토스의 마음은 서둘러 아라미스를 뒤쫓아야 한다는 다급함은 물론 아라미스가 자신에게 말도 안 하고 위험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화가 나는 마음 사이에 갈팡질팡했다.


아토스는 말을 타고 어두운 밤길을 전력 질주했다. 그는 전장에서 캠프를 차리던 경험을 떠올리며 아라미스가 멈출 만한 장소를 하나하나 머릿속에 그렸다. 아마 아라니스는 임신한 몸이었으므로 무리하게 계속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라미스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 것에 그의 마음은 분노로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의 마음을 휩싸는 것은 그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 혹여나 아라미스가 반역세력으로 잡혀 혹독한 고문이 행해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삼키고 앞으로 나아갔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아토스는 숲길 옆 물가에서 작은 불빛을 발견했다.

“여기다...”

아토스는 숨을 고르지 않고 급하게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닥불 옆에 앉아 졸고 있는 아라미스를 발견했다. 아라미스의 뒷모습은 매우 고단해 보였다. 그녀는 앉은 상태로 등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 번에 보더라도 아라미스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토스의 마음에 가장 큰 감정은 치솟는 분노였다.

아라미스를 말리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이 아라미스에게 닥친 일을 미연에 차단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아토스는 칼을 뽑아 아라미스의 목에 겨눴다.

"움직이지 마."

아라미스는 목에 서늘한 차가움에 눈을 떴고 목을 겨누어져 있는 칼을 보며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그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아라미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토스...”

“이게 무슨 짓이야 아라미스?” 그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렸다.

“네가 날 두고 혼자 위험한 일을 하러 떠난다니. 너는 나를 이렇게 배신하는 거냐?”


아라미스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목에 닿은 칼날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것보다 아토스의 눈빛이 더 차가웠다.

“아토스 진정해. 이건 배신이 아니야. 이건 온전히 나의 책임이야.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내가 해결해야 해.”

“책임?” 그는 칼을 조금 더 깊이 눌렀다.

“책임을 다한다는 이름으로 네 목숨을 던지겠다는 거냐? 네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아라미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라미스는 그저 아토스를 응시했다. 그의 분노와 속에 숨겨진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라미스 대답해.”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라울을 두고 나를 두고 떠나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아라미스는 숨을 크게 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가 국왕의 마음을 돌린다면 라울과 당신은 안전해질 거야. 혹여나 국왕이 내 목숨을 가져간다 해도 왕은 더 이상 당신과 라울까지 위험하게 두지 않을 거야.”

아라미스는 잠심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라면... 나만 사라지면... 당신과 라울은......”

“닥쳐.”

아토스는 칼을 거두며 아라미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네가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당신이 떠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 라울은 또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그리고 뱃속의 아이는? 넌 가족이 뭔지 모르는 거냐?”


아라미스는 그의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면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토스 나는...” 아라미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아라미스. 넌 혼자가 아니야.” 아토스는 칼을 내팽기고 아라미스의 어깨를 잡았다.

“너는 내 전부야. 너 없이 라울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러니 부탁해. 나를 떠나지 마.”

아라미스는 그의 손을 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라미스. 혼자 짐을 지려고 하지 마. 내가 널 막으려는 게 아니고 그저 같이 해결하자는 거야. 달타냥과 의논하자. 그는 왕을 설득할 방법을 알지도 몰라."


아토스는 아라미스를 데리고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영지 근처 작은 별장으로 향했다.

아토스는 자신의 앞에 아라미스를 태우고 말을 움직였다. 아라미스의 말을 같이 끌었다.

아라미스는 임신한 상태로 먼 길을 달려 대단히 피곤해 보였다.

이른 아침에 별장은 고요했다. 이 별장은 아토스의 소년시절부터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한 번씩 머무르던 곳이다. 별장은 2층으로 된 작은 집이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주기적으로 관리해서 깔끔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아토스는 피곤한 아라미스를 침대로 옮겼고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포르토스가 예전 욱신욱신하게 하던 농담 생각나?"

아라미스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포르토스야 항상 농담을 많이 했었지. 갑자기 왜?

아토스는 이어 말했다.

"포르토스가 신대륙에 가서 부자가 되면 저택도 여러 개 구입해서 우리랑 다 같이 살자고 했던 거 기억나?"

아라미스는 허풍이 심했던 포르토스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런 적 있었어."

"얼마 전 포르토스가 달타냥에게 편지했데. 정말로 그는 우리를 위해 집을 마련을 했나 봐. 위협에 빠질 때 언제든지 도망쳐서 신대륙으로 피할 수 있게 말이야. "

아토스는 아라미스를 부드럽게 쳐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도 포르토스에게 편지를 보냈어. 아마 포르토스가 우리를 도울 거야. 만약 국왕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라울과 뱃속의 아이까지 데리고 신대륙으로 도망치겠다는 계획도 해 뒀어.”

“신대륙으로 도망간다니...... 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야. 정말로 모든 걸 잃게 될 상황이라면......"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아토스는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으며 말했다.

“달타냥과 의논하자. 그리고 포르토스가 우리를 도울 수 있다면 그에게도 기대 보자. ”

아라미스는 아토스의 결의에 찬 모습에 응답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낮이었지만 흐리고 어둑한 날이었다. 서늘한 공기가 둘 사이를 감쌌다. 아라미스는 그동안 자신을 지키려 애쓰고 늘 곁에서 묵묵히 함께해 준 아토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토스.” 아라미스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늘 당신에게 고마웠어. 당신이 없었더라면 난 오래전에 무너졌을지도 몰라.”

아토스는 아라미스의 눈빛이 뭔가 더 깊은 말을 하려는 듯 보였다.

아라미스는 목소리에 감정을 담았다.

“고마움이 전부가 아니야. 아이들보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야.”

평소 직접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라미스의 입에서 나온 이 고백은 아토스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사랑해, 아토스.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앞으로도 당신이 내 삶의 전부야.”

“아라미스......”

아토스와 아라미스는 별장의 어둠 속에서 눈물 젖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토스는 조심스럽게 아라미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라미스! 내가 널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

그의 말에 아라미스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토스 나도 알아. 이렇게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요즘은 더욱더 절실해.”

아토스는 자연스럽게 아라미스의 배에 손을 얹었다.

“너와 아이가 무사하다는 게 내겐 가장 중요한 일이야. 그래서 나는 더 조심스럽다.”

아라미스는 그의 손을 잡고 설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을 거야. 그리고 지금 만큼은 걱정하지 말고 나만 바라봐 줘.”

아라미스의 말에 아토스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침대 가운데에 눕혔다. 손끝으로 아라미스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었다.

“널 다치게 하지 않을게. 천천히... 조심할 거야.”

아라미스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난 괜찮아. 지금은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어.”


그들의 입맞춤은 처음엔 부드럽고 느리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더욱 간절히 원했고 마침내 한 몸이 되어 사랑을 나누었다. 아토스는 아라미스의 모든 움직임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아라미스는 그의 따뜻한 사랑에 몸을 맡겼다.


별장의 벽난로에서 오는 따듯한 빛은 그들의 몸을 감쌌다. 이 순간 그들은 모든 걱정에서 벗어나 오직 서로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의 품에서 숨을 고르며 잠시 눈을 마주쳤을 때 아라미스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토스 당신은 내가 살아갈 이유야.”

아토스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너도 내 전부야, 아라미스.”

어두운 방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사랑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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