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위기
문이 살짝 열리는 순간 아토스는 설치해 둔 그물을 작동시켰다. 상대방을 덮친 그물이 잠입자를 단단히 묶어버렸다. 그는 빠르게 다가가 칼을 뽑아 잠입자의 목에 겨누며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용감하게 여기를 혼자 들어오다니!"
아토스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잠입자는 그물에 갇힌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아토스는 깜짝 놀랐다.
"달타냥?" 아토스는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물에 갇혀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달타냥이었다.
"아토스, 당장 칼을 내려!" 달타냥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토스는 칼을 내리며 재빠르게 그물을 풀어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 시간에 여기까지 몰래 들어오다니?"
달타냥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라미스도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몰라야 해요.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극도로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무슨 일이기에 이 정도로 신중한 거지?" 아토스가 물었다.
달타냥은 일어나며 답했다.
" 위그노들이 새로운 반란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들이 세력을 결집하고 주요 영지를 노리고 있죠. 더 중요한 건 그들 중 한 명이 과거 프랑소와와 긴밀한 관련자라는 정보를 얻었었죠."
아토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프랑소와와 연관된 자라고? 그게 무슨?"
달타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선왕의 총애를 받던 프랑소와는 과거 신교도 국가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들었어요.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측근과 함께 예전 반란을 모의했다고요. 그리고 그 자가 왕실에 밀정으로 들어가 반란을 도모했다는 소문도요. 그 측근이 프랑소와의 약혼녀라는 투고가 있었어요. "
아토스는 달타냥에 말에 격해지며 이야기했다.
"프랑소와 생전 아라미스는 겨우 16세였고 결코 그와 같은 계획에 동참한 적은 없어."
아토스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녀가 프랑소와의 약혼자였고 동시에 왕의 총애를 받던 총사대원이었다는 사실이 반란자들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에 빌미를 만들어 버렸군."
달타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맞아요. 특히 아라미가 국왕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후 메디시스와 접견했던 사실. 자신을 물러나게 할 중요한 조약 문서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점도 소문의 이유가 될 수 있죠. 국왕 루이왕 폐하와 메디시스 모후 폐하는 서로 원수처럼 잡아먹으려는 관계니까요. 지금은 비록 조용히 발톱을 감추고 있지만... 모후는 호시탐탐 다른 왕자로 왕을 갈아치우려 하는 계획을 세운다는 소문이 있죠... 만약 반란 세력을 생포하고 그들을 심문할 때 프랑소와의 이름이 나온다면...... 상상하기 싫지만 아라미스가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커요."
아토스는 그의 말을 듣고 조용히 방을 걸으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깊은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여기로 이렇게 온 것인가? 네 계획은 뭐지?" 아토스가 물었다.
달타냥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선 저는 그들의 동태를 확인하고 빠르게 진압해야 해요. 하지만 무엇보다 아라미스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에요. 그녀가 위험에 빠지는 건 절대 막아야 하니까요.
달타냥은 숨을 가다듬고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전에 아라미스가 날 구하기 위해 대신 총을 맞고 제 목숨을 지켜준 적 있어요.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지킬 차례예요."
아토스는 달타냥의 말에 친구에 대한 우정 어린 감정 외에 그녀에 대한 감춰진 욕망과 남자로서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아토스는 달타냥의 말을 들으며 그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아라미스를 이성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듯 보였고 그것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여전히 그의 속내를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현재는 왕실과 중앙 정부에 밀접한 달타냥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토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다. 함께 계획을 세우자. 하지만 네가 이런 방식으로 저택에 몰래 들어올 생각을 했다니!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니까 이해하도록 하지."
둘은 촛불 하나의 어두운 빛 속에서 긴밀히 대화를 이어갔다. 아토스는 루이 13세가 총사대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달타냥과 지속적으로 비밀 편지를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아라미스는 최근 아토스가 부쩍 자신에게 밝히지 않고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임신 때문에 안전하게 집을 방어하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행동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아토스를 봐왔기 때문에 그의 작은 변화도 세심히 감지할 수 있었다. 아토스가 굳이 말하지 않는 그 속내를 알고 싶어졌다.
입덧이 조금 가라앉은 어느 날 밤, 아토스는 아라미스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아라미스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찾아내야 해.'
아라미스는 아토스의 서재로 향했다. 그 순간 집 안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낌새가 아라미스의 동물적 감각을 자극했다. 뭔가 서재 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린 듯했다. 그녀는 칼을 챙기고 서재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자가 책상 옆에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라미스는 망설임 없이 그의 목에 칼을 겨누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들어왔지?"
남자는 깜짝 놀라 손을 들고 무릎을 꿇으며 급히 말했다.
"저는 단지 부대장님의 편지를 백작님께 전달하러 왔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남자의 말에 아라미스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책상 위에 놓여있는 봉합된 편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칼을 내리지 않고 봉인을 입으로 뜯어 편지를 꺼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편지를 읽는 순간 아라미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편지에는 국왕 루이 13세가 아라미스를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국왕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녀가 과거 신교도 세력을 규합하고 국왕의 동생 필립왕자를 가르쳤던 프랑소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혀 있었다. 편지에는 "아라미스와 프랑소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조사하고, 필요하면 방해되는 세력을 제거하라!"는 뉘앙스의 명령이 담겨 있었다.
아라미스는 손에 든 편지를 읽으며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자객을 향해 말했다.
"내가 이 편지를 백작께 대신 전달하겠다. 너는 달타냥 부대장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전하면 된다. 아무런 문제 없이 일이 처리되었다고 보고하도록."
남자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아라미스는 그의 행동을 주시하며 그를 저택 밖으로 내보냈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 혼자 남은 아라미스는 편지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국왕이 나를 의심하고 있다고?' 이 사실은 아라미스의 신분과 안전뿐만 아니라 가족들 그리고 삼총사의 명예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침이 되어 아토스가 일어나자, 아라미스는 말없이 그 앞에 편지를 내보였다. 아토스는 편지를 읽고 나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라미스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군.'
아토스는 조용히 말했다.
"아라미스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생각해 놓은 것이 있어. 최악의 상황이 올 경우 넌 스페인의 몬테로 집에 숨어있어. 리오날 공작이 널 보호해 줄 거야. 내가 이미 공작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
리오날 공작은 한때 아라미스를 사랑했었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라미스는 신분차이와 자신의 정치적 위험성을 이유로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오날 공작은 아라미스를 위해 몬테로 가문과의 인연을 주선하며 그녀가 그 집안의 양녀로 입적되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아토스와 새 신분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아라미스는 그에게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그리운 마음도 품고 있었다.
아라미스는 아토스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그 이후는?"
아토스는 잠시 침묵한 뒤 말을 이었다.
"달타냥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믿어보자. 그리고 나 또한 국왕과 직접 알현해서 너의 충성심을 증명할 거다. 국왕은 아직 나를 신뢰하니 너무 걱정하지 하지 마."
그는 아라미스를 살포시 안아주며 다독였다.
아라미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토스를 믿지만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리오날 공작이 보낸 전령이 전 속력을 다해 편지를 가져왔다. 아토스는 편지를 읽고 나서 안도하며 말했다.
"최악의 상황일 경우, 넌 아이들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가는 게 가장 안전할 거야."
아라미스는 그런 아토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리오날 공작을 떠올리며 아토스에게 전해진 편지에 답신을 썼다. 그녀는 전령에게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
"이 편지를 리오날 공작님께 전달해 줘. 그리고 공작님께 내가 감사하게 여긴다고 꼭 인사를 전해줘."
아라미스의 편지에는 리오날 공작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의 헌신과 배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마음속 깊이 담아둔 그리움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또한 그녀는 아토스 옆에서 그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편지에 담았다.
아라미스는 며칠을 고민했다. 아토스와 달타냥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의 희생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날 밤, 그녀는 자고 있는 아토스를 뒤로하고 조용히 침실에서 일어나 단정한 남자의 옷을 입었다. 출산과 다시 임신을 한 상태라 여자의 몸이 예전처럼 남장으로 가려지지 않았다. 아라미스는 임신 중인 자신의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이 일을 빨리 끝내야만 한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불안한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준비를 마치고 작은 가방에 필요한 돈과 검, 휠락 총 한 자루를 챙겼다.
아라미스는 라울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깊은 잠에 빠진 그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잘 자라 라울. 엄마는 너를 위해 꼭 이 일을 끝낼 거야.”
그리고 아토스의 서재로 가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을 남겼다.
그녀는 몰래 마구간으로 향했다. 말을 준비하며 주변을 살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아라미스는 말을 타고 천천히 라페르 영지를 빠져나갔다.
파리에서 달타냥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라미스는 단지 왕을 만나 자신을 향한 의심을 거두게 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프랑소와와 연결된 모든 진실을 왕에게 직접 설명해야 했다. 그래야만 아토스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라미스는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할지 알면서도 두려움을 떨치고 물러서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새벽의 공기가 서늘하게 감돌았다. 숲은 고요했고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은은하게 비췄다. 아라미스는 말에게 물을 주기 위해 호숫가에 자리를 잡았고 본인도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아라미스는 모닥불 옆에서 잠시 눈을 감았지만 임신한 몸이라 피곤함은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녀는 의식이 멍해진 상태로 짧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았다. 동 떠오르기 직전의 새까만 어둠 속에서 갑작스러운 기척에 눈을 떴다. 몸이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차가운 검의 칼날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누구냐?” 아라미스는 침착하게 물었다. 손은 천천히 검으로 향했지만 상대의 칼날은 그녀를 더욱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움직이지 마.”
낯익은? 하지만 그 순간 아라미스를 소름 돋게 만든 낮은 톤. 바로 아토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