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포르토스를 추억함

아토스의 질투

by 랜치 누틴 Apr 06. 2025

달타냥은 얼마 후 라울에게 선물을 주겠다면 다시 저택을 방문했다.

라울이 떠난 뒤, 아라미스는 저택의 정원을 거닐며 마음 한구석이 공허한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포르토스와 함께 보낸 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장에서의 치열한 순간, 서로의 검을 맞대며 훈련하던 시간, 그리고 저녁이면 술잔을 기울이며 카드놀이를 하며 웃고 떠들던 날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포르토스... 참 많이 보고 싶네. 그 덩치 큰 몸으로 눈물도 웃음도 많던 그 모습이 그리워.”

아토스는 멀찍이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섰다. 그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 이해해. 나도 포르토스가 보고 싶으니까.”

아라미스는 고개를 돌려 아토스를 바라보았다.

“달타냥이 떠나기 전에 말했잖아. 포르토스가 부인과 함께 신대륙으로 간다고. 우리가 이렇게 그리워하는데   우리가 행복하기 바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까?”

아토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건 너무 위험해. 포르토스는 어디에 있든 그의 자유를 누리며 잘 지낼 거야.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엇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도 그의 곁에 있다는 걸 알려줘야겠지. 그 녀석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아라미스는 아토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편지는 안 돼. 우리가 누구인지 드러나는 건 위험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해.”

그러던 중, 아토스는 옆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꺼냈다. 날이 날카롭고 손잡이에 세련된 문양이 새겨진 단검이었다.

“이걸 보내자.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야. 포르토스는 이 단검을 보면 우리가 보냈다는 걸 알 거야.”

아라미스는 그의 단검을 손에 들고 잠시 응시했다. 그러다 자신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도 뭔가를 보내야겠네. 내 머리카락 한 가닥을 잘라 함께 보낼게. 아무리 둔한 포르토스라도 이걸 보면 우리가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겠지.”

그녀는 가위로 금발 머리카락 한 가닥을 잘라 단검 손잡이에 조심스럽게 묶었다.

“그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물고 이해하겠지. 우리가 직접 찾아갈 수 없지만 항상 그리워한다는 걸.”

아토스와 아라미스는 단검과 머리카락을 소포로 싸서 신뢰할 만한 몇몇 사람들을 통해 포르토스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그들은 비록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그와의 추억과 마음을 이어갈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날 밤, 아라미스는 침대에 누워 포르토스와 함께한 날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포르토스, 너도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겠지. 부디 행복하길.”

아토스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담담히 속삭였다.

“그는 무사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날도 오겠지.”



포르토스는 아라미스와 아토스가 보낸 소포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신대륙으로 향하기 위해 배를 타고 있던 그는, 이 낯선 물건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채면서도 '설마?' 믿기 힘들었다.

그가 단검을 꺼내 들었을 때, 단번에 그것이 아토스가 평소에 아끼던 단검임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심장을 울린 것은 단검 손잡이에 묶인 한 줌의 가느다란 금발 머리카락이었다.

포르토스는 그 자리에서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아라미스! 이건 아라미스의 머리카락이잖아! 아라미스 무사하구나. 너희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어!”

그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단검을 손에 쥔 채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토스, 아라미스... 나를 생각해 주는군. 이 둘은 정말 내 형제와도 같은 사람들이야.”

포르토스는 단검을 조심스럽게 허리에 찼다. 그리고 아라미스의 머리카락을 품속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너희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는 너희가 무사하다는 걸 알겠어.  나도 너희를 잊지 않아.”

잠시 후 그는 그는 부인에게 단검과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웃으며 말했다.

“여보, 이걸 봐. 내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 나를 잊지 않았어.”

포르토스는 물건을 받으며 다시 한번 아토스와 아라미스와 함께한 모든 시간을 떠올렸다. 검을 맞대며 훈련했던 날들. 아라미스와 티격대격 거리며 말싸움 끝에 크게 웃었던 순간들. 그리고 아토스의 묵직한 위로와 충고.

배가 항구를 떠나자 포르토스는 아토스와 아라미스가 있는 프랑스 땅을 향해 술잔을 들고 혼자 속삭였다.

“우리가 신대륙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고 해도 나의 진짜 가족은 저 둘이야. 그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한 나는 어디서든 그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살 거야.”

그리고 그는 단검과 머리카락을 간직하며 앞으로도 그들의 우정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토스는 서재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달타냥의 얼굴을 떠올렸다. 라페르 저택을 방문했던 그의 모습은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지만 그가 아라미스를 볼 때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과거에도 가끔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묘한 질투심이 싹트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아라미스에게 직접 물었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금세 웃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달타냥이 결혼하기 전에도 그리고 그가 결혼한 후 내가 총사대를 떠나려고 할 때도 내게 고백했었어.”

아토스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표정을 숨기고 되물었다.

“그때 이미 콘스탄스와 결혼한 상태였는데도?”

아라미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근데 나랑 떠난다면 콘스탄스도 버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 녀석 정말 어리석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토스는 황당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분노와 질투가 섞인 감정을 느꼈다.

“그 녀석이 그랬단 말이지,” 아토스는 낮게 중얼거리며 와인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런 그의 모습이 웃겼는지, 아라미스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근데 달타냥이 그런 마음을 결국 접은 건 아토스 당신 때문이었어.”

아토스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 때문이라고?”

“응. 달타냥이 그러더라. ‘아라미스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지만,  아토스를 배신할 순 없다’고 말이야.”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 말에 아토스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달타냥의 고백과 마음을 들으니 그의 젊음과 매력에 대한 부러움 속에 묘한 질투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보다 열정적이고 솔직한 달타냥의 성격이 자신과는 정반대라는 점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그날 밤 아토스는 침실로 바로 향하지 않고 서재의 창가에 서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달빛 아래 정원은 고요했으나 그의 마음은 그와 반대로 요동쳤다. 달타냥이 아라미스를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그녀가 털어놓았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콘스탄스를 떠날 수 있다.”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토스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침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었을 때, 아라미스는 책상에 앉아 조용히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환히 웃으며 그를 맞았으나 아토스는 그 미소에 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뭘 그렇게 쓰고 있는 거야?”

“비용 쓴 것을 좀 정리하고 있었어.”

그녀의 태연한 대답에 아토스는 그녀의 손에서 펜을 빼앗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놀란 아라미스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진지하게 물었다.

“달타냥 너에게 했던 말은 내게 얘기했지.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내게 말하지 않았어.”

아라미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웃으며 대꾸했다.

“그게 중요한가? 그는 이미 그의 길을 갔고 나는 당신과 같이 있는데?”

“하지만 네가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지금 내게 중요하다.”

그의 단호한 말에 아라미스는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토스!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봐. 당신 곁에 있잖아. 당신과 라울 곁에.”

그녀의 말은 분명 진심이었으나 아토스의 마음에는 뭔가 부족했다. 아토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린 아라미스는 그의 손을 잡으며 웃어 보였다.

“질투하는 거야?” 그녀가 낮게 속삭였고 아토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질투하고 있어. 그 녀석이 그 잘난 얼굴로 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받아줄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게 신경 쓰였어. 그리고 그것이 느껴질 때마다 나 자신이 초라해졌지.”

그의 솔직한 고백에 아라미스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아토스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당신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사람이잖아. 내 실수와 흠까지 모두 포함해서......”

브런치 글 이미지 4

아라미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토스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길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아라미스는 그의 체온과 숨결을 느끼며  품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날 밤 아토스는 결혼 첫 달 신혼시절 이후로 가장 열정적으로 그녀를 안았다. 그의 손길과 입맞춤에는 질투와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이 뒤섞여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아토스는 달타냥에 대한 질투를 떨치고 아라미스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임을 마음속 깊이 되새겼다.  그의 손끝은 그녀의 몸을 따라 움직이며 과거와 상처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몸에 남아 있는 흉터 위로 입 맞추며 그녀가 겪었던 모든 고통을 느끼고 싶어 했다. 흉터는 그들 사이의 시간과 고난을 말해 주는 증표였다. 아라미스와 아토스는 서로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더없이 솔직하게 나누었다.


그 뜨거운 밤이 끝난 뒤, 아라미스는 아토스의 품 안에 안겨 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 어디선가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끝. 다음화 이어집니다.


이전 16화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