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랑
1년 전 맨손은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달타냥은 맨손의 죽음 이후 계속 깊은 고민에 잠겼다.
맨손이 사형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 그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수도원에 있는 아라미스를 내가 죽였다.”
그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아라미스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때 그의 곁에는 연인 콘스탄스가 있었고 그녀와의 결혼도 하려 했었다.
결혼 며칠 전.
달타냥은 아라미스를 찾아갔다. 동생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아라미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고 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아라미스는 힘껏 저항하는 대신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난 아토스를 사랑해. "
그 말에 달타냥은 충격을 받고 그녀의 옷을 풀려던 손을 놓았다. 아토스와 아라미스가 친구 이상의 감정이 오가는 것은 오래 전 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라미스의 입으로 아토스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었을 때 달타냥은 더 이상 그녀를 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콘스탄스와 결혼하며 자신의 마음을 묻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달타냥은 아라미스에 대한 마음을 거둘 수 없었다. 그녀가 총사대에 있을 때도 그리고 떠나기로 했다고 했을 때도 달타냥은 그녀를 끝까지 몰래 흠모했다. 하지만 아토스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의 감정을 꺼내 놓을 수 없었다. 아토스와 아라미스 모두 소중한 친구였다.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자신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맨손의 말이 그의 모든 마음을 흔들었다. 아라미스가 정말 죽었다면, 자신이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릴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살아 있다면 이번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라미스를 찾아 진심으로 고백할 것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조용한 곳으로 데려와 숨겨 줄 것이다. 파리에서는 결혼한 사람이 애인을 두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에 그는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수소문 끝에 그는 결국 아라미스가 머물렀다는 수도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르네 수녀의 묘지”라는 비석이었다. 묘비 앞에 선 달타냥은 숨이 막히는 듯한 슬픔에 온몸이 무너졌다. 그가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의미 없이 느껴졌고 아라미스를 떠나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졌다.
"나의 아라미스."
그는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감싼 채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한참을 울다가 그는 묘비 아래 새겨진 글을 발견했다.
“아라미스, 여기 잠들다.”
달타냥은 눈물을 닦으며 글을 바라봤다. 그 문구를 본 순간, 그는 멍하니 묘비를 응시하다가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아라미스가 이런 흔적을 남길 리 없었다. 흔적을 지우려는 자들이 굳이 “아라미스”라는 이름을 새겼을 리도 없었다.
그는 그제야 예전 일을 떠올렸다. 로슈포르 일당을 따돌리기 위해 가짜 무덤을 만들었던 아토스의 기지를 기억했다. 아라미스 역시 그 일에 깊이 관여했었다. 아라미스가 자신의 죽음을 가짜로 꾸며내는 데 가짜 무덤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너는 살아있구나.”
달타냥은 미소를 지었다. 아라미스는 절대 그렇게 쉽게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그녀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달타냥은 몇 주 동안 아토스의 영지와 라페르 백작의 저택의 위치를 알아냈다.
맨손의 말, 그리고 수도원의 묘비. 모든 단서가 머릿속에서 엉키면서도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는 아토스가 아라미스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점점 확신이 들었다.
'가자. 라 페르 영지로.'
달타냥을 말고삐를 힘껏 잡고 라 페르 영지로 달렸다.
끝.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