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s & Roses 공연 후기
공연을 보러 가기 전까지 많은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비싼 티켓을 살 때부터 그렇다.
20대 한창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아니 20대까지 갈 필요도 없이 코로나 이 전 시기까지만 해도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공연을 갈 수 없었지 공연 자체를 가기 싫어하지는 않았다.
코로나 시기 4년은 나를 뭘 그리 많이 바꿔 놓은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귀찮아진 것일까.
건즈 앤 로지스 공연 티켓을 구입하고 가는 순간까지 내면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아 귀찮아. 비도 오고.'
티켓 값이 24만 원이 넘었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송도 달빛공원 전철역에 내리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공연 시작 시간은 7시인데 나는 5분 전에 전철역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아 늦은 사람이 나 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가슴졸이며 인천 송도까지 갔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가했다.
적어도 백여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전철역에 내려서 나와 같이 어디론가 같은 길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다행이다.'
이때부터 뭔가의 동질감이 느껴졌고 공연장으로 가는 길이 가벼워졌다. 나만 늦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표로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이때부터 '그래 역시 올 만 했어'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공연장 입구에 들어섰다. '오프닝 밴드인가?' 둥둥거리는 드럼과 베이스의 진동이 흘렸고 조금씩 전율이 흘렀다.
"와~~~~~~"
2만여 명의 사람들이 함성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며 조금씩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공연장 흙의 질퍽한 땅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7시 15분경에 VIP 좌석 F 구역 13열에 앉았다. 무대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형 스크린 영상은 잘 보였다.
2009년 슬래쉬가 빠진 건즈 앤 로지스 공연을 했을 때는 무려 2시간이나 늦었다고 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공연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공연을 할 듯 말 듯 관중들을 괴롭히다가 7시 40분 경 갑자기 조명이 꺼지며 무대 화면이 바뀌었다.
둥. 둥둥.
"우와~" 함성과 함께 멤버들이 나왔다.
찌링 찌링 찌링. 찌링 찌링 찌링.
아니 이 곡은 "Welcome to the Jungle"이었다. 첫 곡으로 하기엔 반칙 아닌가.
분명 3시간 전까지 공연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했던 나의 마음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는가.
"우악. 우악. 우악. " 나는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흥분의 도가니(탕)가 되었다.
'죽어도 좋아!!!!!'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왔다. 30년 전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 청춘의 시간이 잠시 나에게 다가온 듯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의 눈물이 정신없이 흘러내렸다.
'엑슬 로즈의 보컬은 전혀 기대할 것이 못된다.'라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들었기 때문에 아예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60대 중반이 되어 간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대 매너에 보컬 또한 상당히 훌륭한 것이 아닌가? (후반기로 갈수록 막장으로 가긴 했지만 중저음부는 무대 끝까지 안정적이었다.)
엑슬로즈는 90년대 공연장에서 보여주었듯 마이크 잡고 옆으로 춤추기. 360도 회전, 샤우팅을 몸이 부서지라 하는 것을 보고 '역시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은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의 연주는 이제까지 국내 내한했던 밴드들 공연 통틀어서도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다.
특히 Slash(슬래쉬)와 Duff McKagan(더프 맥케이건), Dizzy Reed(디지 리드) 전성기 시절 멤버들의 연주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다. 슬래쉬가 기타 잘 치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그 어떤 슈퍼 기타리스트 못지않았다. 특히 기타로 돌고래의 울음을 표현한 'Estranged', 온몸에 닭살을 만들어 준 'November Rain'의 후반부 기타 솔로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엑슬 로즈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November Rain 노래를 불렀다.
반항끼 많던 미국 최대의 악동이었던 그도 나이를 먹으니 인자함이 물씬 풍긴다.
더프는 시종일관 무대를 돌아다니며 관중들의 호흡도 맞춰주고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음반이나 라이브 영상에서는 베이시스트의 중요도를 크게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런 락 밴드의 공연을 보면 조용하기만 했던 베이시스트가 모든 공연의 호흥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된다.
처음 보는 드러머 Isaac Carpenter(아이작 카펜터)와 멜리사 리즈(여성 키보디스트?)와 리듬기타에 리처드 포터스가 있다. (이 두 명의 멤버에 대해서는 특별한 자료가 없어서 생략.)
관중들과 가장 호흡이 좋았던 Knockin' on Heaven's Door. 밥 딜런이 부른 것 보다 건즈 앤 로지스가 부른 것이 더 유명한 것 같다.
관중들 모두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상당히 놀라운 것은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연 티켓이 오프닝 되었을 때 이 공연은 취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VVIP 는 50만원이 넘었었고 그 어마무시한 비싼 티켓 가격에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난 과거의 퇴물을 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전성기를 같이 보낸 40대 후반 50대 이상의 관중들보다 30대, 아니 20대와 10대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단지 영화 '토르'로 역주행했던 'Sweet Child O' mine' 정도 알겠지?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곡들을 즐기고 따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전 세계 인구에 10분의 1은 은 알 수 도 있을 Sweet Child O' mine.
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공연을 보게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도파민을 한계치 이상 분출하게 했던 이번 공연을 보며 가능한 살아 숨 쉬는 순간 최대한 많은 공연을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말이다.
참고로,
<<Set list는 아래와 같다. >> Face Book 친구인 베이시스트 송상희 님이 적어주신 리스트.
붉은 글씨로 적은 노래들은 공연 중 정말 좋았던 곡 들이다.
Welcome to the Jungle
Bad Obsession
Mr. Brownstone
Chinese Democracy
Live and Let Die
Slither
Perhaps
Estranged
Double Talkin' Jive
Coma
Sorry
Better
Knockin' on Heaven's Door
It's So Easy
Rocket Queen
Hide away (슬래쉬의 기타 솔로)
Sweet Child o' Mine
November Rain
Wichita Lineman
Patience
Nightrain
Paradise City
*
마지막 Paradise City를 불렀을 때 30년 전 영상으로 봤던 엑슬로즈를 떠올렸다. 붉은 두건과 짧은 하얀 반바지를 입고 나와 마이크를 삐딱하게 잡고 허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자신만만하게 불렀던 그의 모습. 오늘은 목이 한참 쉬어서 겨우겨우 부르는 모습.
이제 마지막이구나.
앵콜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앵콜을 부르짖었지만 멤버들의 마지막 인사로 공연장의 불은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