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미학?
양가감정이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동시에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의미한다.. 즉,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때는......)
89년 1월, 시장통에서 짝퉁 최신가요 테이프를 사 온 그날.
박남정의 '널 그리며'를 듣기 위해서 샀지만 그 곡 뒤 들어있던 '그대에게'는 내 인생을 흔들어 놨다.
이후 TV에서 무한궤도가 나오면 정신없이 몸을 흔들었고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공 테이프에 녹음해서 늘어질 때 까지 들었다.
"신해철이 누구야?"
국민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그의 이름은 너무나 낯선 존재였다. 아마도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특이한 연예인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신해철의 집 주소를 알고 처음으로 펜레터를 보냈다. 그리고 무한궤도 1집이 처음 나왔을 때 내 용돈을 모두 모아 레코드 가게로 갔다. 아마 내 돈으로 산 첫 정식 테이프였을 것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무한궤도의 '조금 더 가까이'를 들으며 산수 문제집을 풀었다. 무한궤도 덕분인지 몰라도 그 해 기말고사 산수 점수는 100점을 맞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무한궤도 1집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예인 마약 사건이 터졌다. 신해철은 대마초 흡입으로 구속되었고 방송가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이상한 애가 이상한 놈을 좋아하는군. " 당시 내가 반 아이들에게 들은 소리였다.
신해철을 좋아한 나까지 도매급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몰렸던... 참으로 우울한 시기였다.
밴드는 해체되고 다행히 신해철은 솔로 1집을 발표하며 재기하였다. 그는 곱상하고 단아한 외모와 당시에 한국에서 보이지 않았던 색다른 음악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대마초의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졌고 지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만 남게 되었다.
신해철은 솔로로 재기한 그 해. 1990년, 최고의 라디오 방송이었던 '밤의 디스크쇼를' DJ를 맡게 된다.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이상은의 바통을 이은 것이었다.
방송은 1년간 큰 호응을 얻었지만 신해철은 1991년, 1년 만에 하차하게 된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속 사정이 어떤 것일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 접는다. 더 나이 들어 성숙해진다면 다시 찾고 싶다.'라는 말을 마지막 멘트로 방송을 막을 내렸다.
아래의 곡들은 <밤의 디스크쇼>에서 마지막 방송의 1시간을 남기며, 그 동안의 소회를 밝히며 틀어 주었던 음악이다. 내 기억력을 들추어서 적었는데 한 곡이 빠진 것 같다. 수십 년간 생각했어도 그 나머지 한 곡이 무슨 곡이었는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영상은 구글 매인 영상을 참조하였습니다.
1. Old And Wise Alan Parsons Project
신해철의 청소년 시기에 가장 좋아했던 곡이었다 했다. 그리고 나도 가장 좋아했던 곡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빚보증으로 신해철은 힘든 시기를 거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이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특히 노래 가사의 'Remeber that your a friend of mine'이라는 가사에서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고 마지막의 색소폰 연주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방송 끝에 다시 이 곡의 가사를 이야기하며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애청자들보다 자신이 나이가 들고 더 성숙해지면 다시 방송을 하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방송을 듣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평생 다시 못 볼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처럼......
2. Stevie B - Because I Love You
이 곡은 신해철에 의해 알게 되었는데 Stevie B는 이곡 외로 특별한 활동을 보여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방송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당시 유행했던 곡도 틀어주지 않았나 싶다.
피아노 전주가 멋진 곡이다. 당시에는 얼굴을 몰라 이 사람이 흑인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3. Long Goodbye - Camel
2007년 전영혁의 음악세계 마지막 방송에도 나왔지만 <밤의 디스크쇼> 마지막에도 이 곡이 나왔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지고 그로 인해 헤어지게 된 연인의 이야기로 알고 있다.
Backing 보컬인 크리스 레인보우의 목소리도 좋지만 곡 중반에 앤디 레이튜머의 기타 연주는 언제나 너무 좋다.
4. Empty Room - Gary Moore
게리 무어 솔로시절. 아직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되기 전에 발표한 솔로음반의 곡이 방송에 나왔다.
내가 게리 무어를 좋아하게 된 것은 방송이 끝났던 (1991년) 시기에서 한 참 지난 후였다.
가장 공연이 보고 싶었던 기타리스트였던 게리 무어. 한국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5. Gammapolis - OMEGA
헝가리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그룹인 OMEGA. 냉전시대였으므로 이들의 음반이 공개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1992~3년도에 <Time robber> 음반이 국내에 라이센스 되기도 하였다.
6. Adagio-New Trolls
신해철이 방송 마지막에서 'Adagio'를 설명하며 자신이 방송을 진행하고 있을 때 이 음반이 라이센스로 공개되어서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다.
뉴틀롤즈에 대해서는
07화 21세기 최고의 음반 New Trolls 콘체르토 3
7화에 자세히 다루었다.
30년의 넘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방송에서 틀어준 음악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인생에 대단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II. 그가 알려 주었던 음악은 나의 등불이 되었지만 그의 존재는 점점 작아졌다.
무한궤도와 신해철 1,2집 그리고 Next 1,2집까지 음반을 들었을 때는 그가 정말 최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역설적이게도 그가 방송에서 소개해 준 음악들을 들으며 세상의 음악은 '그게 다가 아니구나.'라고 느꼈다. 비로소 신해철의 음악이 방송에서 그가 소개했던 절정의 음악인들과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Ozzy Osbourne(feat. Randy Rhoads), YES(feat. Rick Wakeman) 등도 신해철에 의해 알게 된 음악이었다. 무한궤도가 추구했던 '프로그레시브'한 음악. NEXT가 추구했던 Rock 음악들도 모두 세상의 위대한 음악들에 비해서는 작은 모래알뿐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어버렸다.
III. 알 수 없는 반감.
NEXT 3집 이후. 그의 음악에서 뭔가 어색함. 뭔가 과장된 듯한 조금씩 불편함이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의 모든 것처럼 느껴졌던 신해철. 특히 라디오에서의 신해철의 말은 더 이상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조금은 오버한다, 아니면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도 2000년 신해철의 <음악도시> 방송까지는 큰 거리감 없이 들었었다. 그런 것 즈음이야 무시하면서.
당시 NEXT 공연을 가면 가장 앞자리 스탠딩을 사수 할 정도로 좋아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2004년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서브 헤드라이너로 NEXT가 출연했었다. 그때 무대에서 신해철은 모여있던 팬들에게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NEXT 다음으로는 스티브 바이, 빌리 시언, 토니 매켈파인. 등의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들과 팬을 향한 조소 섞인 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다음 무대의 출연진들은 신해철도 존경했던 뮤지션들 아닌가? 왜 저렇게?'
그날 신해철의 조소에 나도 상당히 불쾌했다.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되듯, 이 균열이 신해철에 대한 이제까지의 나의 마음의 탑이 무너지게 된 계기가 되어버렸다.
IV 싫어하다가 무관심해지고.... 그리고 그의 죽음.
2000년대 이후 신해철은 시트콤 출연, 정치적인 발언은 물론 백 분 토론에 출연하여 "간통죄 폐지를 찬성한다."라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반감이 들기 시작했을까. 그때부터 나는 그의 음악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고 <밤의 디스크쇼>에서 느껴졌던 순수함과 열정은 사라졌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마왕'이라며 더 열정적으로 열광하는 팬들이 늘어났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거리감이 생길 뿐이었다.
그렇게 신해철을 듣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해철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2014년 10월 27일.
공교롭게도 이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나도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사망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미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생전에 이루었던 것을 저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를 대중적으로 알린 공이 있고, 프로듀서로도 대한민국에 남을 만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방송인으로서, 라디오 DJ로서는 누구보다 큰 재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NEXT 2집은 내가 대한민국 역대 음반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조금은 생뚱맞은, '날아라 병아리'는 음반 콘셉트와 분위기 상 어울리지 않아서 빼고.)
그를 기억하며, 그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간직했던 최고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신해철이 총괄 프로듀싱을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슈퍼공연 이었다.
한국의 "Live Aid" , 'We are the world'였던 <내일은 늦으리> 음반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https://youtu.be/p0p6Io5tUv8?si=BEKO8gAWFAVoEC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