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II - 이 음반의 커버 사진은 퀸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좀 색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니뎁의 '가위손' 시절을 정말 좋아한다.
백색으로 칠한 얼굴에 언제 상처를 입힐지 모르는 가위가 손에 박혀있는 가위손. 그 표정이 나를 아프게도 애절하게도 만들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토탈 이클립스' 시절이 내게 정말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랭보의 시를 다시금 유명하게 만든 영화이기 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이 좋지는 않았지만 디카프리오의 자유분방한 연기는 그 어떤 배역을 맡을 때 보다 연기에 몰입한 듯 느껴졌다.
또한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유명해지기 전에 나만 알고 좋아하게 되는 그런 재미도 있다. 그 희귀성 또한 짜릿하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와 조니 뎁은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호흡을 맞춘 적 있었다. 형과 골치 썩는 동생으로. 물론 이 당시의 풋풋한 연기를 가장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다. 조니 뎁도 멋있는 역할의 배역이 아니었고 디카프리오는 무려 백치를 연기했다. 그럼에도 배우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배역 속에 묻어난 연기만 볼 수 있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디카프리오의 최고의 전성기라면 '타이타닉'일 것이고. 조니뎁은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나 '캐리비안의 해적'을 최고로 뽑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의 최 전성기의 영화가 아닌 초창기의 작품이 더 뇌리에 박히게 되는 것인지도......
정상에 오르기 전,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시절의 연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래서 젊음이 좋다고 하겠지?
음악도 마찬가지다.
최절정으로 오른 시기의 음악보다 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던 초창기 음악들이 더 좋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객관적으로도 신인 시절 풋풋한 음악들이 나중에 명반으로 다시 회자되는 음반들이 많다.
아무래도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기획사의 입김 등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명해질수록 팬이나 관계자의 영향이 커지니까 말이다.
1.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
음악을 잘 안 듣던 시기가 있었다. 그저 일상을 살기 바빠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던 시기.
그런데 어느 날 그룹 Queen의 전기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 최종 예고편을 보고 그동안 감춰왔던 어떤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들이 풋풋했던 사진으로 봤던 모습이 영화 스크린으로 그려지자 나도 모르는 뜨거운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화 보헤미안랩소디를 보면 퀸 멤버들은 젊은 혈기에 음반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이동수단인 하나밖에 없는 밴을 팔고 음반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3개월 동안 공연 개런티와 맞먹는 돈을 지불하고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한적한 시간에 스튜디오를 빌려 음반을 녹음한다.
그들은 기존의 방식에 탈피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녹음을 하다 보니 '희한한 음악을 하는 학생 밴드'라는 소리를 듣는다.
녹음을 하면서 당시만 해도 꽤 획기적인 서라운드 기능, 그러니까 소리를 반으로 나누었다고 하나로 합쳐지며 터지도록 음원을 편집하고 이어 드럼에 동전등을 올려 소리를 새롭게 내는 장면 등. 당시 기성 음악인이 하지 못하는 참신한 방법으로 외부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보인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도중 가장 행복했던 장면이 아닌가 싶다. 퀸 팬 입장으로써는 마지막의 'Live Aid' 장면보다 순수했던 그 시절이 아릴 정도로 마음에 다가왔었다.
영화에서는 1집 음반을 만들고 있었지만, 영화의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2집의 'Seven Seas of Rhye'이다.
(사실 1,2 집 발표 시기가 얼마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영화에서는 서로 구분해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2. Queen II (1974)
"무덤으로 가져가고 싶은 단 한 장의 음반"
이 말은 Guns & Roses의 보컬 엑슬로즈의 말이었다.
건즈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의 비장미는 아마 퀸의 음악, 특히 Queen 2집의 격렬함과 화려한 슬픔에서 모티브를 따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음악을 멀리 하다가 다시 듣기 시작할 때 듣거나,
더 좁게 퀸의 음악을 멀리하다가 다시 들을 때는 항상 이 음반을 시작으로 듣기 시작한다.
이 음반은 Queen의 숨겨진 명반이라고 불린다. 물론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가 전 세계 대 히트를 치면서 '숨겨진'이라는 딱지는 떼어내게 되었다. 퀸은 비틀스보다 더 흔한 음악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Love of My Life'와 'Bohemian Rhapsody'가 들어있는 Queen의 4집 <A Night At the Opera>가 대중적으로는 가장 명반이라고 일컫지만 퀸의 골수팬들은 대부분 2집을 가장 좋아한다.
퀸 모든 멤버가 20대였던 풋풋한 청춘의 시기, 공중파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그들의 무명 시절에 만들어진 음반으로 신선한 느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당시 브라이언 메이는 천체물리학 박사과정 중이었는데,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를 중단하고 음악을 하겠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퀸의 2번째 음반을 들은 아버지는 비로소 브라이언과 퀸의 음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만약 퀸의 이 음반으로 음악을 그만두었다면? 퀸 2집은 그저 음악 역사에 숨겨진 명반으로 남았을 것이다.
예전 '시완레고드사'에서 숨겨진 명반 레퍼토리를 라이센스 했었는데, 대부분 혜성같이 나와서 걸작의 1~2장의 음반을 발표하고는 소리소문 없이 없어진 음악인들 음반이었다. 그들은 젊었기에 인기나 상업성에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고단하며 인기가 없는 삶은 생계유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많은 실험적인 밴드들은 단 몇 장의 음반만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다행히 퀸은 그러한 수순을 밟지 않고 세계 최고의 락 슈퍼스타가 된다. 그들에게 천운이 따른 것이다.
2집 음반의 특징은 LP A면 B면을 각각 White side, Black Side라고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A면은 "White Queen"이라는 곡이 있기 때문에 White Side로 불리고, B면은 'The March of the Black Queen'이 있기 때문에 Black Side라고 한다.
중세 기사의 전설을 스토리 텔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 가삿말은,
White Queen에 이어
Ogre Battle 가 벌여지고 The Fairy Feller's Master-Stroke-Nevemore-The March of the Black Queen으로 한숨같이 이어진다.
중세시대의 전설 같은 판타지 같은 내용으로 하나의 오페라를 듣는 기분이 든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의 이후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독특한 미성과 브라이언 메이의 클래식 주법의 오케스트레이션 기타는 가히 미쳤다고 할만하다.
위의 그림은 'The Fairy Feller's Master-Stroke'이란 제목으로 영국의 화가 Richard Dadd의 작품이며 퀸의 노래에 모티브가 되는 그림이다.
젊음이 얼마나 좋은가.
이제는 80이 다 되어가는 퀸의 멤버들을 보며 조금은 시름에 빠지게 된다.
순수함이 가득했던 시절. 그리고 도전이 무섭지 않았던 때, 그저 앞으로만 걸어가면 되는 시기이다.
그것을 우리는 '초심'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드디어 음악이야기가 30화로 완결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쓸 이야기가 많아서 매주 한 번의 연재임에도 불구하고 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한 주 2번씩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해지고 글도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어 설레던 순간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다음 연재부터는 초심을 갖고 시작할 수 있을까.
소설보다도 에세이보다도 쓰기 힘들었던 30화의 음악 이야기 연재를 끝내고 이제 당분간 글 쓰는 여유를 즐기려 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